대규모 아파트 입주가 이뤄진 경기 성남 분당구 전셋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입주한 분당구 대장동 ‘힐스테이트 판교엘포레’.  /이혜인 기자
대규모 아파트 입주가 이뤄진 경기 성남 분당구 전셋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입주한 분당구 대장동 ‘힐스테이트 판교엘포레’. /이혜인 기자
“판교 대장지구 입주가 시작되면서 전세 매물이 배로 늘고 호가도 5000만~1억원씩 떨어졌습니다.”(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S공인 대표)

30일 찾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일대 중개업소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전셋집을 찾는 문의가 빗발쳤지만 최근 들어선 뚝 끊겼다.

신분당선 판교역 인근에 있는 삼평동은 분당구 대장동 판교대장지구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올해 3000가구가량의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쏟아지는 대장지구가 분당구 일대 전세 수요를 흡수하면서 품귀 현상을 빚던 매물이 늘고 호가도 떨어지고 있다.

입주 늘자 맥 못추는 분당 전세

삼평동 ‘봇들마을1단지 판교신미주’ 전용 83㎡는 지난 12일 7억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작년 10월 기록한 신고가(9억1000만원)보다 2억원 넘게 낮아졌다. 작년 11월 7억4000만원까지 올랐던 삼평동 ‘봇들3단지 휴먼시아’ 전용 59㎡ 전세 실거래가도 지난달 6억3000만~6억5000만원으로 떨어졌다. 삼평동 C공인 관계자는 “삼평동 아파트에 살다가 전세를 놓고 대장지구 새 아파트로 이주하려는 집주인이 꽤 있다”며 “일부 집주인은 전셋값을 종전보다 5000만원 넘게 낮춰 내놨는데도 들어오려는 세입자를 찾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장지구와 맞닿아 있는 백현동 ‘백현2단지 휴먼시아’ 전용 84㎡의 전세 실거래가도 지난 4월 9억2500만원에서 6월 7억3500만원까지 내렸다.

대장지구에선 올해 총 3000가구에 육박하는 대규모 아파트 입주가 줄줄이 이어진다. 5월 ‘더샵 판교포레스트’(990가구)와 ‘판교퍼스트힐 푸르지오’(974가구)가 준공된 데 이어 지난달엔 ‘힐스테이트 판교엘포레’(836가구)가 입주했다. 오는 11월에는 ‘성남판교대장지구 제일풍경채’(1033가구)가 집들이를 한다. 분당구 백현동에서도 지난달 ‘판교 더샵 퍼스트파크’(1223가구)가 입주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작년 10월 300여 건에 불과하던 분당구 전세 매물은 대장지구 입주가 시작된 5월 2300건을 넘어섰다.

풍부한 새 아파트 공급 덕분에 전국적인 전세 대란에도 분당 전셋값은 올 들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2.05%(월간 기준)까지 치솟았던 분당 전셋값 상승률은 지난 4월 -0.13%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후 5월 -0.07%, 6월 -0.14%를 기록하는 등 줄곧 하락세다.

“공급 못 늘리면 규제라도 풀어야”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서도 7월 넷째 주 분당 전셋값은 전주 대비 0.17% 내렸다. 이 기간 전국에서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한 곳은 분당과 세종시 두 지역뿐이다. 서울과 인접한 고양(상승률 0.37%), 하남(0.25%), 용인(0.22%) 등이 상승세를 이어간 것과 대조적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난의 유일한 해법은 대규모 주택 공급이라는 것을 분당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매물이 늘면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수요·공급 법칙’을 재확인해준 사례”라며 “수요를 억제하기보다 아파트 공급을 지속적으로 늘려야 ‘매물 증가→매매가 하락→전셋값 하락’이란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내년에도 전세시장 불안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정부는 지난 12일 ‘전세시장 안정화’를 이유로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 규제를 전면 백지화했다. 하지만 전셋값 상승세를 꺾으려면 1주택자 실거주 요건이나 ‘임대차 3법’ 등 전·월세 시장을 왜곡하는 규제도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다주택자는 물론 1주택자에게 거액의 양도세를 물린 탓에 전셋집 공급 부족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단기간에 새 아파트 공급을 늘릴 수 없다면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는 규제라도 먼저 풀어야 전세난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