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생태계 만들자" TV·가전·무선 사장 뭉쳤다
“삼성전자 내 사업부장(사장)들은 실적에 따라 우열이 가려졌기 때문에 무한 경쟁관계였습니다. 요즘은 이런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삼성전자 관계자가 삼성전자의 한종희, 이재승, 노태문 사장이 정기적인 회의를 열고 협업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붙인 설명이다. 한 사장은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을, 이 사장은 생활가전사업부장을 맡고 있다. 노 사장은 스마트폰 등을 담당하는 무선사업부장이다.

최근 삼성전자 사장단 간 강력한 협업시스템이 구축됐다. 치열한 실적 경쟁을 벌이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사물인터넷(IoT)과 홈네트워크시스템의 발달 등으로 세탁기와 냉장고, TV와 스마트폰 등 전자 기기 간 생태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세 사장의 모임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다. 보통 2주에 한 번씩 만나고 있다. 이 사장과 노 사장이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장단 모임이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얘기가 잘 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정보도 많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정기모임 제안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삼성전자 관계자는 “세 사람 모두 거시적인 안목과 디테일까지 챙기는 꼼꼼함을 같이 갖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사장단의 맏형 격인 김현석 사장과 경영지원실장을 맡고 있는 최윤호 사장의 측면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은 전체적인 전략의 방향을 점검해 주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전방위적인 지원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품 출시에 대한 협의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의 트렌드도 공유한다. 가전과 TV, 스마트폰의 각 경쟁사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고, 이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어떤지 실시간으로 나누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장단의 협업은 ‘삼성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최근 몇 년간 ‘MDE’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MDE’는 ‘multi device experience’의 약자다. 모바일과 가전·TV 등을 모두 아우르는 삼성전자가 소비자에게 이들 기기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다.

MDE를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 기술이 사물인터넷(IoT)이다. 집 외부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로봇청소기나 공기청정기를 작동하거나 멈춘다거나, 침실에서 빨래 건조기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같은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면 소비자가 삼성전자 TV를 산 뒤에 에어컨과 냉장고를 바꿀 때도 삼성전자 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핵심 전략이다.

MDE를 가장 성공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기업은 애플로 평가받는다. 기기 간 효율적인 연동시스템으로 한 번 iOS 생태계에 진입하면 다시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는 분석이다. 제품에 대한 고객 충성도가 높아지면서 애플 서비스 플랫폼 가치도 올라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애플 TV+’ ‘애플 아케이드’ ‘애플 피트니스+’ 등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구독자 수가 전 세계 6억2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제품을 통해 어떤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며 “공개할 순 없지만 사장단 협업을 통해 다양한 제품군이 탄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