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만남, 정채봉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만남, 정채봉
만남

정채봉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입니다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참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닳아 없어질 때에는 던져 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입니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태헌의 한역]
相會(상회)

最誤相會如生鮮(최오상회여생선)
逢頻魚腥亦多傳(봉빈어성역다전)
最戒相會如花房(최계상회여화방)
開則歡呼枯則攘(개즉환호고즉양)
最慘相會如電池(최참상회여전지)
有力帶持無力遺(유력대지무력유)
最虛相會如擦子(최허상회여찰자)
今方對面瞬息止(금방대면순식지)
最美相會與巾比(최미상회여건비)
勞時拭汗悲時淚(노시식한비시루)

[주석]
* 相會(상회) : 서로 만나 봄, 만남.
最誤(최오) : 가장 잘못되다, 가장 그릇되다. / 如(여) : ~과 같다. / 生鮮(생선) : 생선.
逢頻(봉빈) : 만남이 잦다, 자주 만나다. / 魚腥(어성) : 물고기 비린내, 비린내. / 亦(역) : 또한, 역시. / 多傳(다전) : 많이 전해지다. 원시의 “비린내가 묻어”라는 표현을 역자가 나름대로 한역한 표현이다.
最戒(최계) : 가장 경계해야 하다, 가장 조심해야 하다. / 花房(화방) : 꽃송이.
開(개) : (꽃이) 피다. / 則(즉) : ~을 하면. / 歡呼(환호) : 환호하다. / 枯(고) : 시들다. / 攘(양) : 물리치다, 던져 버리다.
最慘(최참) ; 가장 참혹하다, 가장 비참하다. / 電池(전지) : 건전지, 배터리(Battery).
有力(유력) : 힘이 있다. / 帶持(대지) : 가지고 있다, 데리고 있다. / 無力(무력) : 힘이 없다. / 遺(유) : 버리다.
最虛(최허) : 가장 헛되다, 가장 허망하다. 원시의 “가장 시간이 아까운”을 역자가 나름대로 해석하여 한역한 표현이다. / 擦子(찰자) : 지우개. 조호익(曺好益) 선생의 ≪지산집(芝山集)≫이나 유장원(柳長源) 선생의 ≪상변통고(常變通攷)≫ 등의 책에서는 지우개의 뜻으로 ‘솰자(刷子)’를 쓰고 있으나, ‘刷子’는 달리 ‘솔’의 뜻으로도 쓰이기 때문에 오늘날 중국에서 쓰이고 있는 ‘擦子’를 지우개의 한역어로 선택하였다.
今方(금방) : 금방, 방금. / 對面(대면) : 얼굴을 마주하다, 만나다. / 瞬息(순식) : 순식간에. / 止(지) : 그치다, 중지되다.
最美(최미) : 가장 아름답다. / 與巾比(여건비) : 수건과 가깝다, 수건과 근사하다. 앞에서 한역한 방식대로 하자면 ‘如手巾(여수건)’으로 한역하는 것이 무난하겠으나 압운자 선택의 제약이 있어 ‘與巾比’로 한역하였다.
勞時(노시) : 수고할 때, 힘이 들 때. / 拭汗(식한) : 땀을 닦다. / 悲時(비시) : 슬플 때. / 淚(누) : 눈물이라는 뜻이지만 이 구절 전체가 대칭을 이루는 시구(詩句)이기 때문에 이 글자 앞에 ‘拭’자가 생략된 것으로 보아 ‘拭淚(식루)’로 이해해야 한다. ‘拭淚’는 눈물을 닦는다는 뜻이다.

[한역의 직역]
만남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습니다
만남 잦으면 비린내도 많이 전해지니까
가장 경계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습니다
피어나면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참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습니다
힘이 있을 땐 간수하고 없을 땐 버리니까
가장 허망한 만남은 지우개와 같습니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그쳐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비슷합니다
힘들 땐 땀 닦아주고 슬플 땐 눈물 닦아주니까

[한역 노트]
시인이 이 시를 통하여 언급한 만남의 종류는 도합 다섯 가지이다. 이 다섯 가지 만남이 인생의 모든 만남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혹은 어쩌다 겪게 되는 ‘만남’의 중요한 유형임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평생토록 전혀 겪을 일이 없는 만남 또한 있을 것이다. 이제 시인의 생각의 길을 따라가면서 시인이 얘기한 ‘만남’의 유형과 거기에 어울리는 실례 등을 추정해 보기로 한다.

시인이 얘기한 생선과 같은 '잘못된 만남'으로는, 도덕은 물론 법마저 금하는 어떤 일의 시행이나 물건 거래를 위하여 서로 만나는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다. 비밀스러운 일이나 물건이 서로를 멀어지지 못하게 엮어, 점점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게 하여, 종국에는 서로를 망가뜨리게 하는 만남의 예로는, 떼도둑들의 만남이나 마약거래상들의 만남만한 것도 없을 듯하다.

꽃송이 같은 '조심해야 할 만남'은, 어느 일방(一方)이 주도하여 정열적으로 만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상대방이 자기가 중시하는 모종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여겨 더 이상 만남을 이어가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용가치가 떨어졌다는 측면에서는 후술할 ‘건전지와 같은 만남’과 유사하나 어느 일방이 추구하는 대상과 그 가치가 다르다는 것이 중요한 차이로 이해된다. 제왕의 후궁에 대한 사랑 같은 것이 기본적으로 여기에 속할 것이다.

건전지와 같은 '비참한 만남'은 이용 가치가 다하면 버려지는 만남, 곧 만남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만남은, 고의적으로 접근한 일방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그 일방에 의해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서로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일종의 거래와 같은 경우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정보가 필요하여 우월한 외모를 앞세워 경쟁회사의 핵심 담당자를 유혹해서 인위적인 연애에 빠진다는 스토리나, 자기가 가진 조직의 정보를 미끼로 정보가 필요한 자에게 접근하여 모종의 거래를 요구한다는 스토리가 드라마의 진부한 소재가 된지도 이미 오래인 듯하다.

지우개 같은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이른바 1회용 만남으로 이해된다. 한 순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만나는 이 경우는 시인의 말처럼 시간낭비일 뿐만 아니라 금전의 낭비, 감정의 낭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세상에서 자주 목도되는 만남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손수건과 같은 “아름다운 만남”은 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장 이상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육체적으로 힘이 들면 땀이 나고, 정신적으로 힘이 들면 눈물이 난다. 바로 이러한 때에 손수건이 되어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과의 만남이 아름다운 만남이라는 것이다. 그 만남의 대상은 연인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으며, 친척일 수도 있고 그저 편한 지인일 수도 있다. 손수건 한 장, 심지어 티슈 한 장이라도 내밀어줄 수 있는 사람만 있어도 세상살이는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두려움은, 따뜻하게 나를 만나줄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과 그 절망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사람과 사람은 물론 사람과 동물, 사람과 사물의 만남 등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만남에는 내게 득(得)이 되는 만남도 있고 실(失)이 되는 만남도 있다. 실이 되는 만남은 득이 되는 만남으로 바꿀 수가 없다면, 과감하게 정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만남의 끝자락 어디쯤에 있을 헤어짐에 대해서는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것은 내리지도 않는 소나기를 쫒아가서 미리 맞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나기를 피할 수 없다면 소나기를 맞는 것이 순리이다. 헤어짐이 무서워 만나지 못하겠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헤어짐보다도 더 아플 수 있는, 슬픈 단절을 뜻하는 ‘끝남’ 또한 거기에 있다 하여도, 우리는 결코 만남을 포기할 수가 없다. 만남이 없다면 그것은 적막(寂寞)의 상태, 바로 죽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역자는 5연 18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10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한역시는 매구에 압운하였으며 읊는 대상이 달라지는 2구마다 운을 달리 하였다. 그러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鮮(선)’·‘傳(전)’, ‘房(방)’·‘攘(양)’, ‘池(지)’·‘遺(유)’, ‘子(자)’·止‘(지)’, ‘比(비)’·‘淚(루)’가 된다.

2021. 8. 3.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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