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대로 된 경제성장론 없이 지난 4년을 보냈다. 문재인 정부가 아직도 집착하고 있는 듯한 소득주도성장론은 성장 정책이 아니라 어설픈 복지 정책이었다. 지원금을 무차별로 뿌려서 성장하겠다는 정책은 성장 정책이 아니라 그저 더 많은 표를 획득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무려 220조원을 투입한다는 ‘뉴딜 2.0 재정투자계획’은 그 서류를 작성한 공무원조차 진짜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지 의심스럽다.

지금은 이미 2%대 초반으로 떨어진 잠재성장률이 머지않아 1%대로 추락할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대선이 불과 7개월 남은 상황에서 아직도 대선후보들의 성장정책이 무엇인지 불명확하다. 어떤 사람은 공정을, 어떤 사람은 혁신을 강조한다. 공정하면 성장한다는 화려한 성장론은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무엇이 공정인가를 이야기하다가 결국 더 강한 규제 왕국론으로 끝날 것이다. 혁신을 해본 적도 없고, 혁신을 위해 무엇 하나 희생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혁신 주장은 허무한 메아리에 그칠 것이다.

이 엄중한 상황을 반전시킬 성장론이 되려면 진정성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모든 국민에게 돈을 균등하게 나눠주는 게 성장 방법이라면 이것처럼 진정성 없는 성장론이 없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어떤 정부라도 어디서인가 돈을 마련해 그 돈을 똑같이 나눠주는 산타클로스가 되면 모든 성장 문제가 해결된다. 세상에 그런 나라는 없다.

성장론이라고 치더라도 소비 성향이 높은 사람에게 더 많이 나눠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무조건 집 근처에서만 밥을 사 먹으라고 제한하는 것보다 사용처와 용도를 많게 해주는 게 더욱 효과가 크다. 더욱이 가장 핵심적 질문인 ‘나눠준다는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해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는 대답이 나올 때 더는 전문성을 따지는 건 무의미해진다.

혁신은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유효한 방법이다. 혁신성장론이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온갖 혁신 저해 구조를 타파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야 한다. 혁신을 억압하는 온갖 규제는 그대로 둔 채 혁신을 이야기한다면 이는 진정성이 없다는 첫 번째 증거이다. 혁신과는 따로 노는 교육 시스템, 혁신을 배척하는 노동 시스템을 개혁하는 대안이 없는 경우 이는 가짜 혁신성장이다. 현 정부의 혁신성장론을 아무도 믿지 않는 이유이다.

혁신성장도 전문성이 필요하다. 일본을 이기기 위해 소재·부품·장비(소부장)를 혁신해야 한다는 방식은 전문성은 없고 감정은 있다는 자기 고백이다. 청와대에서 회의를 열고 온갖 종류의 뉴딜을 선전하는 방식은 시장의 혁신을 저해하는 자기 핍박 행위이다. 대기업을 혁신생태계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문성이 없다는 고백이고, 대학인을 이렇게까지 구차하게 만들어놓고 대학을 산학연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정책도 무지의 고백이다.

진정성과 전문성이 있는 진전된 성장론은 조건이 필요하다. 지금은 ‘민생의 핵심이 먹고사는 문제’라는 표현이 마치 내 편의 국민만이 잘 먹고 잘살아야 한다는 소리로 들리는 상황이다. 진전된 성장론은 퍼센트로 국민을 갈라치기 하지 말아야 한다. 86% 국민은 토지가 없으므로 국토보유세를 부과해도 되고,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무려 88% 국민은 코로나 지원금을 받아야 하며,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2% 국민은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한다는 퍼센트 논리를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진전된 성장론은 자유에 대한 존중, 시장과 기업활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통스러운 시스템 개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진전된 성장론은 재정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재정이 폭풍처럼 확대돼도 청해부대 장병은 백신을 맞는 대신 고래밥을 먹었다. 재정은 원래 그런 것이다.

현재까지의 성장론은 진정성과 전문성의 진전은 없는 희망고문으로 보인다. 지금의 공정성장은 동그란 네모를 그리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의 혁신성장은 네모를 그리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새로운 도형도 못 그릴 것처럼 보인다. 성장이 공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역발상과 고통스러운 구조개혁이 혁신성장의 선결 조건임을 인식하는 것이 진정한 성장론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