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데…'잠수타기'로 결별하는 남양유업 [차준호의 썬데이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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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사이트]
언론사 입사 시험의 핵심은 단연 글쓰기인데, 글쓰기는 논술과 작문으로 나눠집니다. 개인적으론 유독 글쓰기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문에 자신이 없다보니 다른 진로를 찾아야 할 지 고심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던 동료가 언론인인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위원에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라는 칼럼을 필사해 보는 것은 어떻냐 추천받아 처음 접했습니다. 무척 아름다운 글입니다. 저는 그 해 입사 시험에 '작문'을 보지 않는 언론사에 합격해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인연이 깊다면 깊을 칼럼 제목이 떠오른건 금요일 슬슬 퇴근을 기다리던 시점에 터진 남양유업의 '노쇼' 사태 때문입니다(도대체 몇 번째 '사태'라 불러야 할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투적으로 기업 간 M&A를 ‘결혼’에 비유해왔지만, 사실 매각측 입장에선 이별의 순간과도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별 순간 상대가 본모습을 드러나는 사례도 우리는 충분히 봐왔습니다.
M&A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이 망하는 한이 있어도 (계열사 코웨이를) 다른 곳엔 못 보내겠다며 법정관리를 신청한 웅진그룹 사례는 시간이 지나도 두고두고 회자됩니다. 수년 여만에 가까스로 재회했지만, '집안 반대'(?)로 100일도 채 되기 전에 다시 이별해야 했던(코웨이 재인수 후 다시 넷마블에 매각) 스토리까지 더하면 한 편의 드라마가 따로 없습니다. 상대에 흠이 있었다며 연일 폭로전을 펼쳐온 아시아나항공 M&A 사례도 흥미진진했죠.
사실 M&A는 어디까지나 사적 계약인 만큼 계약 막바지 개인 지분 몫을 더 받아내기 위해 몽니를 부리고, 때론 여론전과 소송전을 펴는 모습에 '도덕적인 비난' 이상의 책임을 묻긴 어렵습니다. 계약서에 따라 법정에서 서로 다툴 일이죠. 하지만 회사를 인수하고 매각하는 일을 단순히 전자공시상 '타법인주식및출자증권처분결정' 한 줄로 마무리짓기엔 개운치 않은 건 회사를 함께 키워온 임직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회사와 무관한 제 개인 의견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지점이 ‘예의’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협상장에 등장하지 않기로 한 회장 일가들의 의사결정 속엔 신발끈을 다시 묶으려던 임직원들에 대한 고민이 조금이라도 있었을까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 일가가 매각 결정 직후 임직원에 대한 어떤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점이 이같은 몽니의 ‘예고’ 였던 것 아닌지 생각도 듭니다.
개인적으로도 ‘예의’가 아쉬웠던 사례를 몇 가지 접했습니다. LS오토모티브는 당시만 해도 공개적으로 상장(IPO)을 추진 중이었습니다. 회사 규모가 크지 않아 월요일마다 사장과 임직원이 모두 참여하는 조회시간이 있었는데, 조회가 끝난 오전만 해도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우리사주를 얼마나 신청해야하나 격론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당일 오후 직원들은 상장 대신 글로벌 사모펀드(PEF) KKR로 매각이 성사됐다는 기사를 접해야 했습니다.
CJ그룹도 과거 CJ푸드빌 매각 과정에서 임직원에게 “(매각 여부에 대해)부인 공시를 해도 되니 일단 몇 일만 버텨달라” 통보해놓고 지주사에선 매각 협상을 진행했었죠. 수많은 중견‧중소기업 대주주들이 M&A 기사를 두고 '허위보도'라 법적대응에 나서겠다는 통보야 이제 익숙해졌지만, “기사 대신 직원들에게 최소한 제 목소리로 이야기할 시간은 달라”는 사장님들의 이야기엔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렇다면 이별에 예의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는 결국 ‘돈’ 아닐까 싶습니다. 국내에선 통상 M&A 대상이 되는 임직원들에 절차가 끝난 후 위로금(보로금)을 분배하는 게 관행입니다. 국내에만 있는 조항이라며 ‘적폐’ 취급을 받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직원들에 주식을 나눠주기 극도로 꺼려하는 국내 기업 정서상 해당 조항이라도 있어야 균형이 맞춰지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이 역시 회사의 의견과는 무관합니다).
두 번째는 결국 진솔한 메시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론 최근 M&A를 앞둔 인터파크가 임직원에 남긴 메시지가 ‘모범 정답’이란 생각이 듭니다. 김선주 언론인은 ‘슬프지만 인정하고 떠날 때를 아는 것’이 예의 있는 이별이라 정의했는데, 이에 딱 걸맞는 사례라 생각합니다.
강동화 인터파크 대표는 매각 소식이 기사로 전해진 직후 임직원에 직접 이메일을 남겼습니다. "쿠팡의 IPO(기업공개)와 이베이의 매각을 전후해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커머스 시장의 게임룰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라 매각 추진 이유를 밝히고, "현재와 같이 바뀐 게임룰이 작동하는 경쟁상황에서는 우리 역시 혼자의 힘이 아닌 연대와 결합을 통해 자본력과 경쟁력을 보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라고 인터파크의 현 상황을 진솔히 설명했습니다. 이어 "적합한 파트너가 찾아지게 될 경우에는 새로운 공간에서 직원 여러분들의 고용안정이 담보될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입니다."라고 임직원의 동요를 최소화 하겠다는 약속을 덧붙였습니다. 모범답안도 있으니 조금 더 예의 있는 이별을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임직원 여러분께서 접하신 갑작스러운 소식에 대하여 그 배경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쿠팡의 IPO(기업공개)와 이베이의 매각을 전후해 e커머스 시장에서는 사업자들간의 합종연횡이 본격화되고 있고 시장에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커머스 시장의 게임룰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철학에 기반해 사업을 진행해 왔지만, 현재와 같이 바뀐 게임룰이 작동하는 경쟁상황에서는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장의 관점에서 더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혼자의 힘이 아닌 연대와 결합을 통해 자본력과 경쟁력을 보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타진하고 있는 매각을 포함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치열한 경쟁환경 속에서 20년 넘게 우리가 일궈온 서비스를 지속시킬 뿐만 아니라 더 크게 도약시킬 수 있는 힘을 갖추기 위한 최적의 대안을 찾기 위함입니다. 우리 인터파크 서비스가 소멸되지 않고 더욱 파괴력을 갖춘 새로운 모습으로 시장에 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변화의 가장 중요한 방향이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선택하는 최우선 기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사업과 서비스를 보다 큰 폭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파트너를 찾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입니다. 적합한 파트너가 찾아지게 될 경우에는 새로운 공간에서 직원 여러분들의 고용안정이 담보될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기준을 충족하는 파트너가 없다면 그 때는 다시금 우리의 모습을 재정비하고 호흡을 가다듬어 우리만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어수선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답답함이 느껴지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모색하는 변화는 우리 인터파크 서비스의 지속을 전제로 하며 동시에 서비스를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기에, 현재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용할 고객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일체의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주시기 바랍니다.
고객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여러분들께서 하고 계시는 각자의 일도 변함없을 것임을 잊지 말아 주시고 현재 하시고 계신 일 그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해주기를 부탁 드립니다.
코로나19의 위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임직원 여러분들 모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기사는 08월02일(10:3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인연이 깊다면 깊을 칼럼 제목이 떠오른건 금요일 슬슬 퇴근을 기다리던 시점에 터진 남양유업의 '노쇼' 사태 때문입니다(도대체 몇 번째 '사태'라 불러야 할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투적으로 기업 간 M&A를 ‘결혼’에 비유해왔지만, 사실 매각측 입장에선 이별의 순간과도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별 순간 상대가 본모습을 드러나는 사례도 우리는 충분히 봐왔습니다.
M&A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이 망하는 한이 있어도 (계열사 코웨이를) 다른 곳엔 못 보내겠다며 법정관리를 신청한 웅진그룹 사례는 시간이 지나도 두고두고 회자됩니다. 수년 여만에 가까스로 재회했지만, '집안 반대'(?)로 100일도 채 되기 전에 다시 이별해야 했던(코웨이 재인수 후 다시 넷마블에 매각) 스토리까지 더하면 한 편의 드라마가 따로 없습니다. 상대에 흠이 있었다며 연일 폭로전을 펼쳐온 아시아나항공 M&A 사례도 흥미진진했죠.
사실 M&A는 어디까지나 사적 계약인 만큼 계약 막바지 개인 지분 몫을 더 받아내기 위해 몽니를 부리고, 때론 여론전과 소송전을 펴는 모습에 '도덕적인 비난' 이상의 책임을 묻긴 어렵습니다. 계약서에 따라 법정에서 서로 다툴 일이죠. 하지만 회사를 인수하고 매각하는 일을 단순히 전자공시상 '타법인주식및출자증권처분결정' 한 줄로 마무리짓기엔 개운치 않은 건 회사를 함께 키워온 임직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회사와 무관한 제 개인 의견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지점이 ‘예의’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협상장에 등장하지 않기로 한 회장 일가들의 의사결정 속엔 신발끈을 다시 묶으려던 임직원들에 대한 고민이 조금이라도 있었을까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 일가가 매각 결정 직후 임직원에 대한 어떤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점이 이같은 몽니의 ‘예고’ 였던 것 아닌지 생각도 듭니다.
개인적으로도 ‘예의’가 아쉬웠던 사례를 몇 가지 접했습니다. LS오토모티브는 당시만 해도 공개적으로 상장(IPO)을 추진 중이었습니다. 회사 규모가 크지 않아 월요일마다 사장과 임직원이 모두 참여하는 조회시간이 있었는데, 조회가 끝난 오전만 해도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우리사주를 얼마나 신청해야하나 격론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당일 오후 직원들은 상장 대신 글로벌 사모펀드(PEF) KKR로 매각이 성사됐다는 기사를 접해야 했습니다.
CJ그룹도 과거 CJ푸드빌 매각 과정에서 임직원에게 “(매각 여부에 대해)부인 공시를 해도 되니 일단 몇 일만 버텨달라” 통보해놓고 지주사에선 매각 협상을 진행했었죠. 수많은 중견‧중소기업 대주주들이 M&A 기사를 두고 '허위보도'라 법적대응에 나서겠다는 통보야 이제 익숙해졌지만, “기사 대신 직원들에게 최소한 제 목소리로 이야기할 시간은 달라”는 사장님들의 이야기엔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렇다면 이별에 예의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는 결국 ‘돈’ 아닐까 싶습니다. 국내에선 통상 M&A 대상이 되는 임직원들에 절차가 끝난 후 위로금(보로금)을 분배하는 게 관행입니다. 국내에만 있는 조항이라며 ‘적폐’ 취급을 받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직원들에 주식을 나눠주기 극도로 꺼려하는 국내 기업 정서상 해당 조항이라도 있어야 균형이 맞춰지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이 역시 회사의 의견과는 무관합니다).
두 번째는 결국 진솔한 메시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론 최근 M&A를 앞둔 인터파크가 임직원에 남긴 메시지가 ‘모범 정답’이란 생각이 듭니다. 김선주 언론인은 ‘슬프지만 인정하고 떠날 때를 아는 것’이 예의 있는 이별이라 정의했는데, 이에 딱 걸맞는 사례라 생각합니다.
강동화 인터파크 대표는 매각 소식이 기사로 전해진 직후 임직원에 직접 이메일을 남겼습니다. "쿠팡의 IPO(기업공개)와 이베이의 매각을 전후해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커머스 시장의 게임룰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라 매각 추진 이유를 밝히고, "현재와 같이 바뀐 게임룰이 작동하는 경쟁상황에서는 우리 역시 혼자의 힘이 아닌 연대와 결합을 통해 자본력과 경쟁력을 보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라고 인터파크의 현 상황을 진솔히 설명했습니다. 이어 "적합한 파트너가 찾아지게 될 경우에는 새로운 공간에서 직원 여러분들의 고용안정이 담보될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입니다."라고 임직원의 동요를 최소화 하겠다는 약속을 덧붙였습니다. 모범답안도 있으니 조금 더 예의 있는 이별을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인터파크 임직원 메시지 전문
임직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표이사 강동화 입니다.임직원 여러분께서 접하신 갑작스러운 소식에 대하여 그 배경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쿠팡의 IPO(기업공개)와 이베이의 매각을 전후해 e커머스 시장에서는 사업자들간의 합종연횡이 본격화되고 있고 시장에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커머스 시장의 게임룰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철학에 기반해 사업을 진행해 왔지만, 현재와 같이 바뀐 게임룰이 작동하는 경쟁상황에서는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장의 관점에서 더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혼자의 힘이 아닌 연대와 결합을 통해 자본력과 경쟁력을 보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타진하고 있는 매각을 포함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치열한 경쟁환경 속에서 20년 넘게 우리가 일궈온 서비스를 지속시킬 뿐만 아니라 더 크게 도약시킬 수 있는 힘을 갖추기 위한 최적의 대안을 찾기 위함입니다. 우리 인터파크 서비스가 소멸되지 않고 더욱 파괴력을 갖춘 새로운 모습으로 시장에 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변화의 가장 중요한 방향이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선택하는 최우선 기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사업과 서비스를 보다 큰 폭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파트너를 찾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입니다. 적합한 파트너가 찾아지게 될 경우에는 새로운 공간에서 직원 여러분들의 고용안정이 담보될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기준을 충족하는 파트너가 없다면 그 때는 다시금 우리의 모습을 재정비하고 호흡을 가다듬어 우리만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어수선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답답함이 느껴지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모색하는 변화는 우리 인터파크 서비스의 지속을 전제로 하며 동시에 서비스를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기에, 현재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용할 고객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일체의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주시기 바랍니다.
고객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여러분들께서 하고 계시는 각자의 일도 변함없을 것임을 잊지 말아 주시고 현재 하시고 계신 일 그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해주기를 부탁 드립니다.
코로나19의 위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임직원 여러분들 모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기사는 08월02일(10:3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