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위기의 한국 레슬링 '코로나 쓰나미'에 무너졌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류한수·김민석, 16강에서 탈락하며 '노메달' 최악의 성적
1976년 몬트리올 대회부터 이어오던 '메달 행진'에 마침표 특별취재단 = 한국 선수단의 올림픽 메달밭 역할을 해왔던 레슬링이 반세기 동안 이어가던 올림픽 메달 획득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레슬링 대표팀은 3일 류한수(삼성생명)가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그레코로만형 남자 67㎏급 16강에서 탈락하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한국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건 1972년 뮌헨 올림픽 이후 처음이다.
레슬링은 한국 선수단 메달 사냥의 선봉에 서왔던 전략 종목이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장창선이 2위를 차지하며 첫 메달을 수확했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가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올림픽 도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후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마다 1~2개의 금메달을 꼬박꼬박 따냈다. 레슬링은 2000년대 중반 힘든 운동 환경과 열악한 지원 속에 선수층이 얇아지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1982년부터 2012년까지 300억원에 달하는 지원을 했던 삼성이 레슬링 회장사 지위를 포기하면서 지원을 중단했는데, 이후 한국 레슬링은 새 후원자를 찾지 못하면서 무너졌다.
레슬링 종목의 올림픽 퇴출 움직임까지 맞물리면서 한국 레슬링은 큰 타격을 받았다.
삼성이 떠나자 레슬링인들은 파벌싸움을 벌였고, 현장의 국제 경쟁력은 계속 떨어졌다.
이런 분위기는 올림픽 성적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국 레슬링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내리막길을 걷던 한국 레슬링은 이번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 쓰나미에 초토화됐다.
레슬링 대표팀은 올해 초 올림픽 쿼터 획득을 위해 대규모 선수단을 꾸려 국제대회에 파견했는데, 현지 방역에 실패하면서 수십 명의 선수와 코치들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됐다.
대다수 선수는 경기조차 뛰지 못하고 귀국했다.
도쿄올림픽을 은퇴 무대로 삼고 이를 갈았던 한국 레슬링의 간판 김현우(삼성생명)도 코로나19에 확진돼 그대로 돌아왔다.
김현우와 '쌍두마차'로 꼽히던 류한수도 코로나19에 감염됐는데, 다행히 확진 전에 올림픽 쿼터를 획득해 힘겹게 도쿄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은 이번 대회에 류한수, 김민석(울산남구청·그레코로만형 남자 130㎏급) 등 단 두 명의 선수만 내보냈다.
이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2명 출전)과 더불어 한국 레슬링 역사상 올림픽 선수단 최소 규모다.
류한수와 김민석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번 올림픽을 뛰었다.
파트너 선수 없이 체급 차이가 큰 두 선수가 서로의 훈련 상대가 됐다.
두 선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한국 레슬링의 자존심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짐을 싸게 됐다.
/연합뉴스
1976년 몬트리올 대회부터 이어오던 '메달 행진'에 마침표 특별취재단 = 한국 선수단의 올림픽 메달밭 역할을 해왔던 레슬링이 반세기 동안 이어가던 올림픽 메달 획득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레슬링 대표팀은 3일 류한수(삼성생명)가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그레코로만형 남자 67㎏급 16강에서 탈락하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한국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건 1972년 뮌헨 올림픽 이후 처음이다.
레슬링은 한국 선수단 메달 사냥의 선봉에 서왔던 전략 종목이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장창선이 2위를 차지하며 첫 메달을 수확했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가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올림픽 도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후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마다 1~2개의 금메달을 꼬박꼬박 따냈다. 레슬링은 2000년대 중반 힘든 운동 환경과 열악한 지원 속에 선수층이 얇아지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1982년부터 2012년까지 300억원에 달하는 지원을 했던 삼성이 레슬링 회장사 지위를 포기하면서 지원을 중단했는데, 이후 한국 레슬링은 새 후원자를 찾지 못하면서 무너졌다.
레슬링 종목의 올림픽 퇴출 움직임까지 맞물리면서 한국 레슬링은 큰 타격을 받았다.
삼성이 떠나자 레슬링인들은 파벌싸움을 벌였고, 현장의 국제 경쟁력은 계속 떨어졌다.
이런 분위기는 올림픽 성적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국 레슬링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내리막길을 걷던 한국 레슬링은 이번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 쓰나미에 초토화됐다.
레슬링 대표팀은 올해 초 올림픽 쿼터 획득을 위해 대규모 선수단을 꾸려 국제대회에 파견했는데, 현지 방역에 실패하면서 수십 명의 선수와 코치들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됐다.
대다수 선수는 경기조차 뛰지 못하고 귀국했다.
도쿄올림픽을 은퇴 무대로 삼고 이를 갈았던 한국 레슬링의 간판 김현우(삼성생명)도 코로나19에 확진돼 그대로 돌아왔다.
김현우와 '쌍두마차'로 꼽히던 류한수도 코로나19에 감염됐는데, 다행히 확진 전에 올림픽 쿼터를 획득해 힘겹게 도쿄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은 이번 대회에 류한수, 김민석(울산남구청·그레코로만형 남자 130㎏급) 등 단 두 명의 선수만 내보냈다.
이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2명 출전)과 더불어 한국 레슬링 역사상 올림픽 선수단 최소 규모다.
류한수와 김민석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번 올림픽을 뛰었다.
파트너 선수 없이 체급 차이가 큰 두 선수가 서로의 훈련 상대가 됐다.
두 선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한국 레슬링의 자존심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짐을 싸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