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주도 개발로 2028년까지 서울·수도권에 13만여 가구를 공급하겠다던 지난해 ‘8·4 부동산 대책’이 당초 우려대로 성과없이 표류하고 있다. 공급 확대를 호언장담하며 대책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사업이 가시화된 물량은 808가구로 계획 대비 1.6%에 불과하다. 태릉, 용산 등 서울에 3만3000여 가구를 공급하는 신규 택지개발의 경우 택지확보(지구지정) 사업지가 한 곳도 없을 정도다.

‘규제 위주’에서 ‘공급 확대’로의 정책 전환이라는 의미를 지닌 ‘8·4 대책’이 길을 잃은 이유는 너무 간명하다. 정부가 땅주인과 주민 여론, 지역특성을 무시한 즉흥·탁상 정책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신규 택지후보 중 최대 규모인 태릉골프장은 노원구까지 반대하고 있고, 용산 캠프킴 부지는 서울시의 상업지역 개발계획과 배치돼 진행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상암 DMC 미매각 부지, 여의도 LH(한국토지주택공사) 부지 등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과천청사 일대에 4000가구를 공급하는 방안은 주민 반대에 밀려 아예 백지화됐다.

공공주도 개발에 대한 집착도 ‘예견된 실패’를 불렀다. 정상추진이 가능한 민간개발을 행정력으로 틀어막은 뒤 ‘공익’을 빙자해 공공개발을 강요하다보니 사업성 맞추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5만 가구 공급을 공언했지만 지난 1년간 공공재건축 확보물량이 1537가구로 목표 대비 3%에 불과한 이유다. 강남권을 포함해 서울 재건축 추진 단지 5곳 중 1곳꼴로 참여할 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론이 혼란만 키운 셈이다.

8·4 대책 1년의 초라한 성과는 부동산 정책의 신뢰를 바닥도 모자라 지하로까지 추락시켰다. 투기사태에 휘말리며 불신이 커진 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를 앞세워 무리한 ‘공공참여형 고밀도 개발’을 추진한 당연한 귀결이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동력인 개발이익의 대부분을 공공이익으로 환수한다는데 누가 선뜻 땅을 내놓겠나. 정부가 시장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공급 부족에 따른 혼란과 서민의 주거고통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서 손 떼고 민간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서민을 위한다’며 무리한 공공개발을 밀어붙이는 것은 더 큰 파국을 부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