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연속'에도 쿠팡이 비판받는 이유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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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김범석, 야놀자 이수진 창업자에 대한 '손정의 관리설'
3년 전 쯤이다. 당시 김범석 쿠팡 대표는 국내 유망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여럿 만났다. 패션, 뷰티, 여행, 신선식품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쿠팡이라는 거대 e커머스 플랫폼이 당시 갖고 있지 못했던 버티컬 커머스(vertical commerce) 혹은 전문몰들을 인수하기 위한 행보였다는 게 당시 김범석 대표를 만나본 사람들의 ‘증언’이다.
소프트뱅크비전펀드로부터 조 단위 투자를 받으며 실탄이 넉넉한 쿠팡의 창업자가 다가왔으니, 스타트업들은 내심 ‘엑싯(exit, 기업 매각 등을 통한 출구 전략)’의 기회가 왔다는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쿠팡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간다면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김 대표는 단 한 건의 M&A도 진행하지 않았다. 쿠팡의 이런 행보에 스타트업 업계에선 “김범석 대표가 직접 나서 기업 비밀을 염탐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흘러나왔다.(당시 쿠팡과 접촉한 스타트업 대표들은 좀 더 심한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글로 옮기기 적절치 않아 생략한다) 쿠팡이 앞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영역에 대한 사전 조사 차원에서 스타트업의 젊은 창업자들을 면담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를 둘러싼 비판 여론이 극에 달한 건 덕평 쿠팡물류센터 화재 때다. 화마(火魔)는 그동안 누적돼 있던 김범석에 관한 비판적인 인식을 ‘먹튀 프레임’에 완전히 가둬놨다. 미국 기업이면서 한국에서 엄청난 부를 얻고 있다는 질투심, 한국 기업인임을 자처하면서 정작 ‘총수 지정’ 등 국내 규제 그물망에서 빠져 나갔다는 비난이 비등했다. 당시 쿠팡을 향한 비난이 어느 정도였는 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는 고장난 화장실 사건이다. 쿠팡의 한 물류센터에서 화장실이 고장나면서 출입구를 테이프로 막아놓은 사진 한 장이 유포됐는데, 민주노총 등 쿠팡의 물류 노동에 칼을 갈아 온 이들은 이를 쿠팡의 고의라고 주장했다. 건물 주인과 세입자인 쿠팡 간에 화장실 수리 비용을 누가 댈 것이냐를 두고 갈등이 빚어지면서 수리가 늦어졌다는 게 ‘팩트’였지만, 이 사건은 쿠팡 물류 노동이 얼마나 가혹한 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되고 말았다. 덕평 화재 이후 일련의 쿠팡에 대한 비난 여론에 대해 책임을 지고, 쿠팡의 홍보 채임 임원이 결국 사표를 썼다.
하지만 김 대표는 신기할 정도로 대외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한 무지 혹은 무례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가 하버드 MBA를 수료한 이후에 첫번째 뛰어든 창업 시장이 미디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無)전략에 가까운 그의 미디어 전략은 상당히 특이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쿠팡의 국적에 관한 대응 방식이다. 지난해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에 가입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쿠팡은 한국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던 김 대표는 최근 이와 관련한 전략을 180도 선회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대외 커뮤니케이션팀에서 ‘쿠팡=한국 기업’을 강조하던 움직임도 사라졌다.
이와 관련해 김범석은 쿠팡그룹의 최정점에 있는 기업인 미국 쿠팡Inc 대표(겸 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이달 초 워싱턴D.C.에 있는 미국상공회의소를 방문했다. 물류센터 화재 이후 두문불출했던 김 의장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비춘 것은 한 달여 만이다. 이 자리에서 김범석 대표는 마이클 브릴리언트 미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을 만나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성공한 쿠팡의 사례를 적극 소개했다고 한다. 김 대표의 최근 행보는 쿠팡그룹의 리스크 관리와 무관치 않다. 얼마 전 니혼게이신문은 김 대표의 탈(脫)한국 행보에 대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지지 기반으로 둔 문재인 정부가 통과시킨 중대재해처벌법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물류센터 화재 직전인 5월31일에 쿠팡 한국법인 내 모든 직위에서 사임했다.
‘김범석의 크루’들이 입증하고 있는 쿠팡의 혁신은 국내 비즈니스 업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김 대표는 다른 어떤 기업인보다 플랫폼의 위력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사업화하는데 성공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도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시킴으로써 파워를 갖는 플랫폼의 정수를 이해하고 있지만, 사업 범위가 한국에 집중돼 있다. 이에 비해 쿠팡은 한국 비즈니스의 성공만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최초로 상장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비젼펀드로부터 수조원을 투자받는 등 해외에서 유치한 자금은 글로벌 자본의 한국 내 분배라는 관점에서 ‘애국적인 행위’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물론이고, 쿠팡에 2012년에 합류한 박대준 대표 등은 한국의 플랫폼을 해외로 수출한다는 지금껏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기업가로 평가받을만하다. ‘쿠팡의 미디어 전략 부재가 유일한 리스크는’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쿠팡의 엄청난 성장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에 대한 터무니없는 부정적인 인식이 추가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손정의 회장이 김 대표의 대외 메시지를 ‘관리’하고 있을 것이란 추정도 제기되고 있다. 김 대표가 상장 직후 미국 언론에 나와 인터뷰를 할 때 여러 질문에 거의 똑같은 답변을 하는 등 어눌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던 것도 이런 관리 탓이라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소비자들은 창업자와 기업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크다. 유니콘, 데카콘 등 신생 기업일수록 연결의 강도가 강하다.
여담 하나. 이수진 야놀자 창업자(총괄대표) 역시 최근 비젼펀드로부터 약 2조원을 투자받았다. 그 역시 언론 노출 등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일절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범석의 길’을 따라 걷는 셈인데, 이쯤되면 ‘손정의 관리설’이 유력한 듯 싶기도 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소프트뱅크비전펀드로부터 조 단위 투자를 받으며 실탄이 넉넉한 쿠팡의 창업자가 다가왔으니, 스타트업들은 내심 ‘엑싯(exit, 기업 매각 등을 통한 출구 전략)’의 기회가 왔다는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쿠팡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간다면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김 대표는 단 한 건의 M&A도 진행하지 않았다. 쿠팡의 이런 행보에 스타트업 업계에선 “김범석 대표가 직접 나서 기업 비밀을 염탐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흘러나왔다.(당시 쿠팡과 접촉한 스타트업 대표들은 좀 더 심한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글로 옮기기 적절치 않아 생략한다) 쿠팡이 앞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영역에 대한 사전 조사 차원에서 스타트업의 젊은 창업자들을 면담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김범석 창업자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부재
김범석 대표에 관한, 소문에 근거한 평가들 중에선 허무맹랑한 것들도 꽤 많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눈물을 흘릴 수 있을 정도로 연기에 뛰어나다’는 얘기가 대표적이다. 2010년 소셜커머스를 표방하며 쿠팡을 창업했던 시절의 ‘30대 김범석’을 잘 아는 이들 사이에서 나오는 김범석론(論) 중 하나다. 이런 얘기가 나올 때면 으례 김 대표가 하버드대학 재학 시절에 연극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발히 활동했다는 ‘팩트’가 보태지곤 한다. 그의 연극 활동 경력까지 끄집어내는 화자들의 화법은 김 대표가 얼마나 투자자들을 잘 설득하는 지를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로 해석하고 싶은 심정과 연결돼 있다.김범석 쿠팡 창업자를 둘러싼 비판 여론이 극에 달한 건 덕평 쿠팡물류센터 화재 때다. 화마(火魔)는 그동안 누적돼 있던 김범석에 관한 비판적인 인식을 ‘먹튀 프레임’에 완전히 가둬놨다. 미국 기업이면서 한국에서 엄청난 부를 얻고 있다는 질투심, 한국 기업인임을 자처하면서 정작 ‘총수 지정’ 등 국내 규제 그물망에서 빠져 나갔다는 비난이 비등했다. 당시 쿠팡을 향한 비난이 어느 정도였는 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는 고장난 화장실 사건이다. 쿠팡의 한 물류센터에서 화장실이 고장나면서 출입구를 테이프로 막아놓은 사진 한 장이 유포됐는데, 민주노총 등 쿠팡의 물류 노동에 칼을 갈아 온 이들은 이를 쿠팡의 고의라고 주장했다. 건물 주인과 세입자인 쿠팡 간에 화장실 수리 비용을 누가 댈 것이냐를 두고 갈등이 빚어지면서 수리가 늦어졌다는 게 ‘팩트’였지만, 이 사건은 쿠팡 물류 노동이 얼마나 가혹한 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되고 말았다. 덕평 화재 이후 일련의 쿠팡에 대한 비난 여론에 대해 책임을 지고, 쿠팡의 홍보 채임 임원이 결국 사표를 썼다.
쿠팡, 미 상의에 정식 가입하나
‘100조 쿠팡’의 신화를 단숨에 만들어낸 김범석 대표는 고도의 전략가다. 연초면 임직원들을 강당에 모아 놓고, 5년 뒤 혹은 10년 뒤 막연한, 누구나 말하는 미래를 얘기하는 리더와는 차원이 다르다. ‘전략가 김범석’은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으로 조직원들의 영감과 열정을 자극하는 리더십을 갖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가 갖고 있는 자원을 매우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활용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 간의 성과만으로도 그가 말하는 ‘100년 기업 쿠팡’이 허황된 얘기가 아님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쿠팡은 올 2분기에 창립 이래 처음으로 매출 5조원을 넘겼는데, 전분기 대비 성장률이 71%에 달했다. 네이버, 이마트 등 경쟁사들을 훨씬 뛰어넘는 실적이다. 기하급수적인 이 같은 성장세는 조만간 한국의 리테일 산업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이다.하지만 김 대표는 신기할 정도로 대외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한 무지 혹은 무례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가 하버드 MBA를 수료한 이후에 첫번째 뛰어든 창업 시장이 미디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無)전략에 가까운 그의 미디어 전략은 상당히 특이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쿠팡의 국적에 관한 대응 방식이다. 지난해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에 가입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쿠팡은 한국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던 김 대표는 최근 이와 관련한 전략을 180도 선회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대외 커뮤니케이션팀에서 ‘쿠팡=한국 기업’을 강조하던 움직임도 사라졌다.
이와 관련해 김범석은 쿠팡그룹의 최정점에 있는 기업인 미국 쿠팡Inc 대표(겸 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이달 초 워싱턴D.C.에 있는 미국상공회의소를 방문했다. 물류센터 화재 이후 두문불출했던 김 의장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비춘 것은 한 달여 만이다. 이 자리에서 김범석 대표는 마이클 브릴리언트 미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을 만나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성공한 쿠팡의 사례를 적극 소개했다고 한다. 김 대표의 최근 행보는 쿠팡그룹의 리스크 관리와 무관치 않다. 얼마 전 니혼게이신문은 김 대표의 탈(脫)한국 행보에 대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지지 기반으로 둔 문재인 정부가 통과시킨 중대재해처벌법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물류센터 화재 직전인 5월31일에 쿠팡 한국법인 내 모든 직위에서 사임했다.
‘김범석의 크루’들이 입증하고 있는 쿠팡의 혁신은 국내 비즈니스 업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김 대표는 다른 어떤 기업인보다 플랫폼의 위력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사업화하는데 성공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도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시킴으로써 파워를 갖는 플랫폼의 정수를 이해하고 있지만, 사업 범위가 한국에 집중돼 있다. 이에 비해 쿠팡은 한국 비즈니스의 성공만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최초로 상장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비젼펀드로부터 수조원을 투자받는 등 해외에서 유치한 자금은 글로벌 자본의 한국 내 분배라는 관점에서 ‘애국적인 행위’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물론이고, 쿠팡에 2012년에 합류한 박대준 대표 등은 한국의 플랫폼을 해외로 수출한다는 지금껏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기업가로 평가받을만하다. ‘쿠팡의 미디어 전략 부재가 유일한 리스크는’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쿠팡의 엄청난 성장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에 대한 터무니없는 부정적인 인식이 추가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손정의 회장이 김 대표의 대외 메시지를 ‘관리’하고 있을 것이란 추정도 제기되고 있다. 김 대표가 상장 직후 미국 언론에 나와 인터뷰를 할 때 여러 질문에 거의 똑같은 답변을 하는 등 어눌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던 것도 이런 관리 탓이라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소비자들은 창업자와 기업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크다. 유니콘, 데카콘 등 신생 기업일수록 연결의 강도가 강하다.
여담 하나. 이수진 야놀자 창업자(총괄대표) 역시 최근 비젼펀드로부터 약 2조원을 투자받았다. 그 역시 언론 노출 등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일절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범석의 길’을 따라 걷는 셈인데, 이쯤되면 ‘손정의 관리설’이 유력한 듯 싶기도 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