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홍정욱 올가니카 회장 SNS 캡쳐
사진=홍정욱 올가니카 회장 SNS 캡쳐
# "고기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든다. 육식가를 위한 채식."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이 자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대체육 제품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이다. 홍 회장은 직접 제품을 먹는 사진을 올리고 "비건이 아닌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는 식물성 푸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비건)를 위한 식재료로 간주되던 대체육이 유통업계 화두가 됐다. 주요 소비 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소비하는 '미닝아웃' 소비에 나섰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안팎에서 다양한 대체육 시도가 쏟아지고 있다.

어디까지 먹어봤니…대체육 샌드위치부터 두부텐더까지

사진은 롯데리아 대체육 버거 '스위트 어스 어썸버거'. 사진=롯데GRS
사진은 롯데리아 대체육 버거 '스위트 어스 어썸버거'. 사진=롯데GRS
대체육이란 단어는 낯설 수 있지만 '콩고기'를 생각하면 쉽다. 식물성 단백질 등을 활용해 모양과 식감을 고기와 유사하게 만든 식재료를 부르는 말이다. 예전에는 채식식당에서나 맛보던 메뉴였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가 지난달 선보인 '플랜트 베이스드 푸드' 제품군이 대표적 사례다.

사진=신세계푸드
사진=신세계푸드
식물성 재료로만 맛을 낸 이 메뉴는 총 4종으로, 홍 회장이 세운 올가니카의 대체육 밀박스가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올가니카는 식물성 대체육으로 만든 함박스테이크와 대체육 라구소스로 만든 파스타를 담았다.

신세계그룹 계열 신세계푸드가 선보인 대체육 브랜드 '베러미트' 제품으로 만든 플랜트 햄&루꼴라 샌드위치도 스타벅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베러미트의 첫 제품인 돼지고기 대체육 햄 콜드컷(슬라이스 햄)이 든 샌드위치다.

신세계푸드는 2016년부터 대체육 연구개발을 진행한 끝에 베러미트를 선보였다. 닭고기에 이어 돼지고기 대체육 시장을 공략한 것. 앞서 신세계푸드는 자사 햄버거 프랜차이즈 '노브랜드 버거'에서 대체육 치킨너겟을 출시, 30만개를 완판했다. 이마트를 통해 미국 식품기술 스타트업 벤슨힐바이오시스템에 투자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대체육 사업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유통 거물 롯데그룹도 대체육 시장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롯데푸드는 2019년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엔네이처 제로미트'를 선보였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롯데리아를 운영하는 롯데GRS는 지난해 대체육을 넣은 버거를 출시했다. 벤처 지원을 맡고 있는 롯데액셀러레이터도 식음료 관련 아이디어·기술을 보유한 푸드테크 스타트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한 '미래식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19년 이스라엘 방문 후 연 회의 자리에서 푸드테크 분야 투자를 지시한 결과다.

식품업계에선 두부 1위 기업인 풀무원의 공격적 행보가 눈에 띈다. 지난 3월 '식물성 식품 전문기업'을 선언한 데 이어 4월 두부를 이용한 대체육 '두부텐더', 고단백 두부로 고기 식감을 구현한 '두부크럼블' 등을 내놨다.

'짜파게티' 등 제품을 통해 드러나지 않게 대체육을 활용 중이던 농심도 적극 공세를 펼치고 있다. 비건 브랜드 '베지가든'의 만두 제품에 독자개발한 대체육을 넣은 점을 내세우며 신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농심은 독자적으로 고수분 대체육 제조기술(HMMA) 공법을 개발한 바 있다. 현존하는 대체육 제조기술 중 가장 진보한 공법으로 실제 고기와 유사한 맛과 식감은 물론, 고기 특유의 육즙까지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비욘드미트. 사진=한경 DB
비욘드미트. 사진=한경 DB
해외에서 주목받는 대체육 브랜드도 이미 국내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동원F&B가 2018년 12월 미국 대체육 전문기업 '비욘드미트'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국내에 해당기업 대체육 제품을 들여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시장에 초점을 맞춘 기업도 있다. 대상은 엑셀세라퓨틱스와 손잡고 세포공학 기술로 생산하는 인공고기인 배양육 제품을 추진하고 있다.

유통업계 밖에서도 대체육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NS에 대체육을 비롯한 대체식품 사진을 올린 점이 대표적이다. 최 회장은 SK가 지난해 투자한 미국 퍼펙트데이의 아이스크림을 비롯해 비욘드미트의 대체육 등 다양한 대체식품을 모아 사진을 찍었다. SK는 올해 미국 대체 단백질 개발사 네이처스 파인드에 투자를 집행했고, 중국의 조이비오그룹과는 대체식품 투자펀드 조성 관련 투자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다.

식품업계 밖에서도 관심…가치소비·ESG 바람

사진=홍정욱 올가니카 회장 SNS 캡쳐
사진=홍정욱 올가니카 회장 SNS 캡쳐
기업들이 대체육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수요와 명분을 갖춘 신사업이기 때문이다. 건강과 환경에 관심이 높은 MZ세대가 이른바 가치 소비, 착한 소비에 나서기 시작하며 수요가 늘었다. 재계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바람이 거세다.

'대체육이 왜 착한 소비와 관계가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면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가축 사료용 작물 재배와 소 방목을 위해 대규모의 열대 삼림 벌채가 이뤄지고, 가축의 트림과 방귀로 나오는 탄소 배출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세계산림감시(GFW)에 따르면 아마존 열대우림은 지난해 서울 면적의 20배에 달하는 170만 헥타르가 파괴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6.5%에 달한다.
사진=최태원 SK그룹 회장 SNS
사진=최태원 SK그룹 회장 SNS
반려동물 인구가 늘면서 비윤리적 사육과 도축에 대한 인식이 확산한 점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를 계기로 인수공통전염병과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대체육을 선택하려는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

식품업계에서 추산하는 국내 대체육 시장 규모는 지금은 약 200억원 수준이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대체육은 2030년 전 세계 육류 시장의 30%, 2040년에는 60% 이상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일부 선진국에선 대체육이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미국 시장에서 대체육 판매량은 2018~2020년 연평균 31%나 증가했다. 코로나19로 미국 축산업계가 공장을 폐쇄하면서 육류 대란이 터진 점도 현지 대체육 시장 성장에 불을 붙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글로벌 대체육 시장 규모는 2019년 5조2500억원에서 2023년 6조7000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식품으로 여겨졌던 대체육이 착한 단백질로 소비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건강과 식품안전, 동물 복지, 지구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강화되면서 대체육을 찾는 소비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