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정유사 엑슨모빌이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배출량-흡수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사의 탄소중립에 회의적이었던 엑슨모빌마저 궤도 수정에 나선 것이다. 세계적으로 에너지 기업들에 기후변화에 대응하라는 압박이 커지면서다. 앞으로 탄소중립 대열에 동참하는 글로벌 에너지 업체가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회의론자가 달라진 이유

헤지펀드 공세…엑슨모빌도 '탄소제로' 나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데런 우즈 엑슨모빌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당초 엑슨모빌은 탄소중립 방안에 미온적이었다. 지난해 3월 유럽 석유회사들이 잇따라 탄소중립 목표를 공개하자 우즈는 이를 ‘미인 대회(beauty competition)’에 비유하며 평가 절하했다.

앞서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로열더치셸은 네덜란드 법원으로부터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의 45%로 감축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스페인 렙솔은 2030년까지 1.6GW(기가와트) 규모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모두 현실성이 떨어지는 계획이라는 게 우즈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 헤지펀드 엔진넘버원이 주주 표결을 통해 엑슨모빌 이사회에 3명의 이사를 진출시킨 이후 탄소배출에 대한 접근법에 변화가 생겼다. 엔진넘버원은 미국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의 경영진에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해 투자자들의 미래 가치를 보장하라”며 전략 수정을 압박했다.

엑슨모빌이 검토 중인 탄소중립 방안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우즈는 지난 3월 정유사들이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석유와 가스 자산을 매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사는 환경 문제와 관련한 전략적 수정 내용을 연내 발표할 예정이다.

강화되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

엑슨모빌이 변화를 꾀한 배경에는 점점 강해지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도 한몫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민주당의 크리스 밴 홀런 연방 상원의원이 대형 정유사 등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대규모 세금을 물리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가안에 따르면 과세 대상은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전체 온실가스 중 0.05% 이상을 배출한 회사다. NYT는 미국의 양대 정유사인 엑슨모빌과 셰브런을 비롯해 최소 25~30개 기업이 징수 대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과세 대상이 되면 기업당 최대 60억달러(약 6조8600억원)를 정부에 납부해야 한다. 액수가 큰 만큼 10년에 걸쳐 분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법제화되면 미국 정부는 10년간 최대 5000억달러(약 571조7500억원)를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이 돈은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와 산불 등 자연재해 대처를 비롯해 화석연료 절감을 위한 연구에 쓰이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 법안은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등 상원 내 개혁파 의원들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밴 홀런 의원은 “이 법안은 민주당 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홀런 의원은 민주당이 여름 휴회에 앞서 예산조정 절차를 통해 처리할 예정인 3조5000억달러 규모의 별도 예산안에 이 법안을 첨부하겠다고 했다.

■ 탄소중립

탄소 순배출량(배출량-흡수량)을 제로(0)로 만드는 것. 여기서 ‘탄소’는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가리킴.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움직임의 하나.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