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 7년, 땅 위 한 달…'맴맴' 애절한 세레나데 [고두현의 문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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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가객' 매미의 사생활
생애 99.9% 땅밑 애벌레로 '대기'
허물 벗고 4주 살며 짝짓기 집중
울음 소리는 암컷 향한 사랑歌
수컷끼리 구애 경쟁…오디션 방불
복부 진동막 울리는 '북소리 원리'
열대야·조명 탓 밤에도 '고성방가'
고두현 논설위원
생애 99.9% 땅밑 애벌레로 '대기'
허물 벗고 4주 살며 짝짓기 집중
울음 소리는 암컷 향한 사랑歌
수컷끼리 구애 경쟁…오디션 방불
복부 진동막 울리는 '북소리 원리'
열대야·조명 탓 밤에도 '고성방가'
고두현 논설위원
매미의 일생은 한 달이다. 아니, 7년이나 된다. 땅속에서 평균 83개월을 지내고 지상에서 1개월 남짓 산다. 애벌레 시절 나무 아래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낸 뒤 땅 위로 나온다. 그러니까 생애의 99.99%가 미성년 시기다.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 가지나 잎 뒤에 붙은 채 2~3시간 허물 벗는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어른이 된다.
어른의 시간은 대부분 짝을 찾는 데 보낸다. 짝짓기 이후 암컷은 나무껍질 속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그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다시 땅속으로 들어간다. 암수 모두 새끼를 보지 못하고 죽으니 슬프고도 장엄한 일생이다.
짝을 찾는 과정의 비밀은 소리에 있다. 소리는 수컷만 낸다. 목에서 내는 게 아니라 배에서 낸다. 수컷 배에는 여러 겹으로 주름진 진동막과 소리를 울리는 공명실이 있다. 진동막은 하얀 갈빗대처럼 생겼다. 여기에 연결된 발음 근육을 길게 당겼다 놓으며 공명실을 울린다.
생물학자들은 이를 ‘북소리 원리’로 설명한다. 북을 치면 팽팽한 가죽이 진동하며 텅 빈 공간에 소리를 가득 채운다. 북이 크고 내부 공간이 넓을수록 북소리가 크듯이 공명실이 넓을수록 매미 소리도 커진다. 몸집이 큰 매미의 소리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 사는 매미 13종 가운데 가장 큰 종은 말매미다. 몸길이 4~5㎝에 날개 길이가 6~7㎝나 된다. 소리도 그만큼 크다. 다른 수컷들과 경쟁하기 위해 최대한 힘껏 소리를 낸다. 최대 음역이 80데시벨(dB)을 넘는다. 진공청소기나 믹서기 소음보다 높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대형 트럭과 맞먹을 정도다.
워낙 소리가 커 자기 청각이 상할 수도 있지만, 이를 막는 방음 장치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한창 소리를 낼 때는 다른 소리를 못 듣는다. 근처에서 축포용 대포를 쏘는데도 끄떡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암컷은 공명실이 산란기관으로 채워져 있어 소리를 내지 못하고 듣기만 한다.
암컷을 위해 내는 매미의 소리는 사실 ‘울음’이 아니라 ‘노래’다. 암컷 고막은 같은 종 수컷이 내는 소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구성돼 있다. 사랑의 ‘세레나데’가 들리면 그쪽으로 가까이 가 앉고, 눈빛을 주고받은 뒤 짝짓기를 한다.
이들은 주로 낮에 미팅을 한다. 신방도 대낮에 차린다. 기온이 높고 빛이 있어야 사랑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심에서는 시도 때도 없다. 열대야 현상이 잦고 가로등 같은 조명 때문에 밤낮 구별이 사라진 탓이다. 이들이 좋아하는 벚나무와 플라타너스가 도로변이나 정원에 많은 것도 한 요인이다.
매미의 의식주는 어떨까. 옷은 굼벵이 통치마에서 얇고 투명한 시스루 패션까지 다양하다. 애벌레 시절의 헌옷을 벗고 난 뒤부터는 ‘천사의 날개’를 단다. 먹이는 유충 때의 뿌리즙과 성충 때의 나무즙이 주식이다. 맑은 수액과 이슬만 마시니 청정 식단이다. 주거도 소박하다. 미성년 때 지하셋방에서 오래 살다 허물 벗은 성년기에도 무주택자로 지낸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매미를 청렴하고 덕이 많은 곤충으로 여겼다.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은 매미가 다섯 가지 덕을 갖췄다고 했다. 곧게 뻗은 긴 입이 선비의 갓끈 같다고 해서 문(文), 이슬과 수액만을 먹어 맑다고 해서 청(淸), 곡식·과일을 해치지 않아 염치가 있다 해 염(廉), 제 살 집조차 없이 검소하다고 해 검(儉), 오고 갈 때를 안다고 해 신(信)이라고 했다.
학자들은 매미 그림을 방에 걸곤 했다. 오랫동안 땅속에서 견디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매미처럼 언젠가는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칠 날을 꿈꾸었다. 임금은 매미 날개 모양을 본뜬 익선관(翼善冠)을 머리에 썼다. 매미의 날개 문양은 현대에 와서 잠자리 날개처럼 속이 비치는 시스루 룩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매미는 오랜 세월 인간과 함께해왔다. 7년간의 땅속 생활을 거쳐 고작 한 달 살다 가는 매미의 길고도 짧은 삶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그 기구한 여정에 비해 미성년 시절보다 훨씬 긴 ‘어른의 시간’을 살아야 하는 우리 인생은 또 얼마나 짧고 긴가.
그는 장 드 라퐁텐이 이솝 우화를 프랑스어로 옮길 때 북부 프랑스에서 잘 볼 수 없는 매미 대신 베짱이(여치과 곤충)로 번역했다고 지적했다. 또 매미가 먹지도 못할 곡식이나 죽은 벌레를 구걸하는 등의 오류를 꼬집으며 게으름뱅이로 낙인찍힌 매미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한편으로는 터키어로 매미와 베짱이가 비슷한 단어여서 북유럽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잘못 번역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매미라는 단어는 라틴어에도 있고, 고대 그리스 문헌에도 등장한다. 매미는 지중해 지역과 동아시아에 흔하지만 알프스산맥 넘어 유럽 북부에선 낯선 곤충이다. 그래서 베짱이나 여치로 와전됐다는 것이다.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우화에도 ‘개미와 베짱이’ ‘개미와 여치’ 가 혼용돼 있었다. 그러나 베짱이는 한국, 일본, 중국 등에 주로 살기 때문에 그리스 사람인 이솝의 우화에 등장하기 어렵다. 베짱이가 겨울에 굶어 죽게 돼 개미에게 양식을 청했다는 얘기도 앞뒤가 안 맞는다. 베짱이는 겨울까지 살지 못한다.
어른의 시간은 대부분 짝을 찾는 데 보낸다. 짝짓기 이후 암컷은 나무껍질 속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그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다시 땅속으로 들어간다. 암수 모두 새끼를 보지 못하고 죽으니 슬프고도 장엄한 일생이다.
짝을 찾는 과정의 비밀은 소리에 있다. 소리는 수컷만 낸다. 목에서 내는 게 아니라 배에서 낸다. 수컷 배에는 여러 겹으로 주름진 진동막과 소리를 울리는 공명실이 있다. 진동막은 하얀 갈빗대처럼 생겼다. 여기에 연결된 발음 근육을 길게 당겼다 놓으며 공명실을 울린다.
생물학자들은 이를 ‘북소리 원리’로 설명한다. 북을 치면 팽팽한 가죽이 진동하며 텅 빈 공간에 소리를 가득 채운다. 북이 크고 내부 공간이 넓을수록 북소리가 크듯이 공명실이 넓을수록 매미 소리도 커진다. 몸집이 큰 매미의 소리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 사는 매미 13종 가운데 가장 큰 종은 말매미다. 몸길이 4~5㎝에 날개 길이가 6~7㎝나 된다. 소리도 그만큼 크다. 다른 수컷들과 경쟁하기 위해 최대한 힘껏 소리를 낸다. 최대 음역이 80데시벨(dB)을 넘는다. 진공청소기나 믹서기 소음보다 높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대형 트럭과 맞먹을 정도다.
워낙 소리가 커 자기 청각이 상할 수도 있지만, 이를 막는 방음 장치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한창 소리를 낼 때는 다른 소리를 못 듣는다. 근처에서 축포용 대포를 쏘는데도 끄떡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암컷은 공명실이 산란기관으로 채워져 있어 소리를 내지 못하고 듣기만 한다.
암컷을 위해 내는 매미의 소리는 사실 ‘울음’이 아니라 ‘노래’다. 암컷 고막은 같은 종 수컷이 내는 소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구성돼 있다. 사랑의 ‘세레나데’가 들리면 그쪽으로 가까이 가 앉고, 눈빛을 주고받은 뒤 짝짓기를 한다.
이들은 주로 낮에 미팅을 한다. 신방도 대낮에 차린다. 기온이 높고 빛이 있어야 사랑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심에서는 시도 때도 없다. 열대야 현상이 잦고 가로등 같은 조명 때문에 밤낮 구별이 사라진 탓이다. 이들이 좋아하는 벚나무와 플라타너스가 도로변이나 정원에 많은 것도 한 요인이다.
매미의 의식주는 어떨까. 옷은 굼벵이 통치마에서 얇고 투명한 시스루 패션까지 다양하다. 애벌레 시절의 헌옷을 벗고 난 뒤부터는 ‘천사의 날개’를 단다. 먹이는 유충 때의 뿌리즙과 성충 때의 나무즙이 주식이다. 맑은 수액과 이슬만 마시니 청정 식단이다. 주거도 소박하다. 미성년 때 지하셋방에서 오래 살다 허물 벗은 성년기에도 무주택자로 지낸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매미를 청렴하고 덕이 많은 곤충으로 여겼다.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은 매미가 다섯 가지 덕을 갖췄다고 했다. 곧게 뻗은 긴 입이 선비의 갓끈 같다고 해서 문(文), 이슬과 수액만을 먹어 맑다고 해서 청(淸), 곡식·과일을 해치지 않아 염치가 있다 해 염(廉), 제 살 집조차 없이 검소하다고 해 검(儉), 오고 갈 때를 안다고 해 신(信)이라고 했다.
학자들은 매미 그림을 방에 걸곤 했다. 오랫동안 땅속에서 견디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매미처럼 언젠가는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칠 날을 꿈꾸었다. 임금은 매미 날개 모양을 본뜬 익선관(翼善冠)을 머리에 썼다. 매미의 날개 문양은 현대에 와서 잠자리 날개처럼 속이 비치는 시스루 룩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매미는 오랜 세월 인간과 함께해왔다. 7년간의 땅속 생활을 거쳐 고작 한 달 살다 가는 매미의 길고도 짧은 삶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그 기구한 여정에 비해 미성년 시절보다 훨씬 긴 ‘어른의 시간’을 살아야 하는 우리 인생은 또 얼마나 짧고 긴가.
'개미와 베짱이' 원제는 '개미와 매미'
프랑스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는 30여 년에 걸쳐 《파브르 곤충기》(전 10권)를 완성했다. 이 중 5권에 나오는 ‘매미’ 편에서 그는 “이솝 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원제는 ‘개미와 매미’였다”며 매미가 베짱이로 와전된 이야기를 들려줬다.그는 장 드 라퐁텐이 이솝 우화를 프랑스어로 옮길 때 북부 프랑스에서 잘 볼 수 없는 매미 대신 베짱이(여치과 곤충)로 번역했다고 지적했다. 또 매미가 먹지도 못할 곡식이나 죽은 벌레를 구걸하는 등의 오류를 꼬집으며 게으름뱅이로 낙인찍힌 매미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한편으로는 터키어로 매미와 베짱이가 비슷한 단어여서 북유럽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잘못 번역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매미라는 단어는 라틴어에도 있고, 고대 그리스 문헌에도 등장한다. 매미는 지중해 지역과 동아시아에 흔하지만 알프스산맥 넘어 유럽 북부에선 낯선 곤충이다. 그래서 베짱이나 여치로 와전됐다는 것이다.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우화에도 ‘개미와 베짱이’ ‘개미와 여치’ 가 혼용돼 있었다. 그러나 베짱이는 한국, 일본, 중국 등에 주로 살기 때문에 그리스 사람인 이솝의 우화에 등장하기 어렵다. 베짱이가 겨울에 굶어 죽게 돼 개미에게 양식을 청했다는 얘기도 앞뒤가 안 맞는다. 베짱이는 겨울까지 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