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늘어난 수명과 변이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들이 창궐하면서 방역 전선의 상황이 급속히 악화됐다. 인류가 치러야 할 고통과 손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런 재앙을 더욱 위협적으로 만드는 것은 변이의 창궐이 사람들의 늘어난 수명과 본질적으로 관련있다는 것이다.

개체의 죽음은 유성생식의 산물이다. 무성생식을 하는 종의 개체는 죽지 않는다. 분열, 싹 또는 처녀생식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과 똑같은 복제(clone)들을 만들어내 무한정 살아간다. 그러나 유성생식을 하면 자신의 유전자 반을 지닌 자식들을 만들어내 대를 잇게 함으로써 생명을 이어간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세대를 낳은 개체는 죽게 된다.

이런 죽음은 세포들에 내장돼 ‘내장 세포사(programmed cell death)’라 불린다. 세포사 과정의 작동을 막는 브레이크는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단백질 하나다. 이 단백질이 다른 세포들로부터 계속 신호를 받지 못하면 죽음을 막는 브레이크가 풀려 세포가 죽는다. 우리의 생명은 필연적 죽음 위에 설계된 셈이다.

동물의 죽음은 6억5000만 년 전에 나온 것으로 추산된다. 유성생식에 죽음이 따르는 데는 두 가지 사정이 있다. 하나는 이미 생식과 육아의 임무를 마친 개체가 자식들과 자원을 놓고 경쟁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정이다. 잉여 자원이 있다면 손주 세대에 투자돼야 한다. 그렇게 해야 생명의 계통(lineage)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어진다. 사람의 체력이 30대 중반을 고비로 급격히 줄어드는 데서 이 점이 확인된다.

다른 하나는 생식과 육아의 임무를 마친 개체가 오래 살면 그만큼 병균이 숙주의 몸에 적응할 기회가 많아지는 사정이다. 생식 임무를 마친 개체들이 늙어서 면역력이 줄어들기 전에 죽어야 병균이 자연선택을 통해 독성이 강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현대에 사람의 수명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병균이 사람 몸속에서 적응해 살 수 있는 기간이 크게 늘어났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면역력이 약해져 병균을 퇴치하지 못하고 만성적인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변이가 나오기 좋은 터전이 되는 셈이다. 이것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갑자기 창궐한 근본적 이유다.

작년 여름 영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역질이 2차 유행할 때, 70대 남성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집에서 한 달간 치료해도 완치되지 않자 그는 케임브리지대병원에 입원했다. 다른 중증 환자들처럼 그의 면역력이 약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의사들은 그에게 치료제를 투여했다. 그렇지만 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의사들은 회복된 환자의 항체까지 투여했다. 결국 그는 코로나19 확진 102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조직검사를 통해 그가 항체 치료를 받은 뒤 바이러스가 빠르게 진화했음을 알게 됐다. 면역력이 극도로 약화된 숙주의 몸속에 살면서 세포에 침투하는 능력과 항체에 저항하는 능력을 갖춘 변이들이 나온 것이다. 돌연변이는 보통 하나나 둘이 나오는데, 이처럼 진화에 좋은 환경에선 10개나 20개의 돌연변이를 구비한 변이가 나왔다.

이것이 첫 ‘요주의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인 알파 변이다. 현재 4개의 요주의 바이러스가 유행하는데, 변이에 돌연변이들이 나와서 더 무서운 변이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우리가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세포 차원에서 설계된 죽음을 거부하고 목숨을 늘려 자연의 질서를 깨뜨린 데 대해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의 창궐이라는 형태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가 어떻든 우리는 자신이 오래 살기를 바라므로, 인간의 수명은 무한정 늘어날 것이다. 치러야 할 대가도 늘어날 것이다.

양립이 어려운 이 조건들을 조화시키려면 바이러스 변이들의 빠른 출현에 대응할 능력을 길러야 한다. 아쉽게도 생화학 산업을 육성해 백신 제조 능력을 키우려는 장기 계획이 우리에게는 없다.

때마침 내년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 나올 후보들이 공약을 내걸기 시작했으니 이 중대한 일에 대한 청사진이 나와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정치와 경제 분야의 엇비슷한 공약보다는 후보의 자질을 검증하는 데도 도움이 될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