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소중립은 '좁은 가시밭길'
유럽연합(EU)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고 2026년부터 본격 시행키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공약에서 2025년부터 탄소국경세 시행을 예고했다. 이에 대해 중국, 브라질, 인도 등 개발도상국은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기후대응실현 방안을 두고 점차 세계가 대립 구도로 가고 있다.

탄소중립에 이르는 길은 각국이 처한 경제 상황(선진국과 개도국)과 에너지 여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재 기술 여건을 감안하면 방안은 어느 정도 일반화돼 있다. 한국도 2030년까지의 탄소 저감을 위한 국가 계획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할 시나리오를 마련 중이다.

우선 온실가스 배출의 40%를 차지하는 전기와 열 생산에서 석유,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태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바꿔야 한다. 배출량의 13.5%인 자동차나 선박 같은 수송 부문은 내연기관의 사용을 줄여 나간다. 33% 이상을 차지하는 제철, 시멘트 등 산업 공정도 탄소 발생이 최소화된 청정수소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건물이나 가정은 에너지 효율을 최대화하고 도시가스도 필요하면 전기나 수소로 대체해야 한다. 여기에 탄소를 포집해 저장 또는 활용(CCUS)하는 기술 등이 보완적으로 고려된다. CCUS 기술이 보편화된다면 그만큼 화석연료를 사용하고도 탄소중립이 가능하게 돼 훨씬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계획을 작성할 때 미래의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큰 과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첫째, 전력 사용량 증가 여부다. 많은 나라가 미래의 에너지 소비를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 전기로 충당해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까지 전 세계의 전력 수요가 지금에 비해 2.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본다. 우리도 장기적으로 전력 수요 증가가 불가피한데 발전소나 송전선로 등 설비 확장이 만만치 않다. 둘째, 원전을 대체할 실효성 있는 대안에 의문이 계속 제기된다. 셋째, 제철이나 시멘트를 제조하는 공정을 수소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 기술은 세계적으로 아직 실험실 수준이다. 넷째, 수소가 탄소중립의 핵심적 역할을 하려면 궁극적으로 청정하게 경제성 있는 가격으로 대량 공급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전해 등 기술의 상용화, 국제 수소 거래 시장의 형성과 과감한 인프라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이런 까닭에 IEA도 2050년 탄소중립은 기술개발과 국제 공조로 달성이 가능하나 ‘매우 좁은(narrow, but achievable) 길’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각국은 올 11월 전까지 유엔에 2016년에 제출했던 것보다 강화된 목표와 실행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달성해야 할 기술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실현 여부가 아직은 유동적이지만, 2030년까지 감축 방안은 이제 국제 사회에서 의무에 준하는 약속으로 여겨질 것이다. 한편 11월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미국과 유럽은 개도국에 의욕적인 탄소 감축 요구와 함께 탄소국경세 도입을 위한 명분 쌓기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사용이 많은 제조업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가 유럽처럼 탄소세를 도입하거나 탄소 거래를 강화하면서 탄소국경세를 조기에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치를 대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도 최대한 줄이면서 미국, 유럽 등 주요 시장의 탄소국경세 시행에 대비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다.

최근 정치권에서 에너지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에너지부’ 신설 같은 공약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조직 개편이 정책 과제를 해결하는 만능은 아니다. 전력 수급이 어려우면 안정 공급이 최우선이 되는 것처럼 에너지 안보와 환경은 조화되기 어려운 경우도 다반사다. 오히려 탄소중립 과제에 종합적으로 대응하도록 미국처럼 청와대 내에 ‘기후특보’를 두고 각 부처에 담당 조직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 역량을 모으는 효과적 대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