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놓지 못한 무대에 대한 갈망…연극 '분장실'
안톤 체홉의 '갈매기'가 공연 중인 극장의 분장실. 화장대 앞에 앉은 배우 A와 B가 분장을 하고 있다.

배우 C는 작품 속 '니나'의 독백을 연습하다 무대로 향하고, A와 B는 '갈매기', '맥베스' 등 고전의 주요 배역을 연기한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C의 언더스터디(주연배우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신 투입되는 배우)이자 프롬프터(배우에게 대사·동작을 일러 주는 사람)인 D가 나타난다.

최근까지 병원에 입원했던 D는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C에게 갑자기 니나 역이 자신의 것이니 돌려달라고 한다.

둘은 한참 동안 말다툼을 벌이고, D는 분장실을 떠난다.

이어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

죽어서도 놓지 못한 무대에 대한 갈망…연극 '분장실'
지난 7일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분장실'은 배우들의 무대와 배역에 대한 갈망을 다룬 작품이다.

올해 4월 타계한 일본 극작가 시미즈 쿠니오(1936∼2021)의 대표작으로, 동시대에 맞게 각색돼 무대에 올랐다.

사실 배우 A와 B는 분장실을 떠도는 귀신이다.

생전 A는 프롬프터나 남자 단역을 맡아 여자 역을 원했던 인물이고, B는 니나 역으로 무대에 서고자 했던 배우다.

A·B와 C·D는 서로 볼 수 없지만, 무대와 배역에 대한 열정에 있어서는 한마음이다.

결국 작품은 죽은 뒤에도 무대에 서지 못하고 분장실에서 역할극만 하는 A와 B, 배역을 놓고 다투는 C와 D를 통해 무대에 서고자 하는 이들의 아픔과 더 나은 연기를 보여주고자 하는 배우의 고민을 엿보게 한다.

지난 8일 공연에서 A와 B 역은 베테랑 배우 정재은과 황영희가 각각 맡았다.

특히 황영희는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코믹 연기로 극의 윤활유 역할을 하며 객석을 웃음으로 채웠다.

또 연극 '와이프', 드라마 '비밀의 숲2'의 손지윤은 C 역을, 영화 '완벽한 타인'의 지우는 D 역을 맡아 흡인력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죽어서도 놓지 못한 무대에 대한 갈망…연극 '분장실'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극중극에 있다.

배우 4명은 각자의 사연들을 풀어놓으며 체호프의 '갈매기'와 '세 자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등 고전 명작의 주요 장면과 대사를 선보인다.

연기파 배우 서이숙(A 역)과 배종옥(B 역),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우정원(C 역),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의 이상아(D 역)가 보여줄 무대도 기대가 된다.

'분장실'은 여자 버전 공연을 9월 12일까지 진행한 후 9월 17일부터 10월 31일까지는 남자 버전 공연을 선보인다.

남자 배우로만 구성한 무대는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