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페라가모·프라다 등 명문장수기업의 비결…'주식 신탁'
가업승계란, 중소기업이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상속이나 증여를 통해 그 기업의 소유권 또는 경영권을 친족에게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중소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0호)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87.7%를 담당하고 있고, 전체 사업체의 99.9%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경제의 핵심이다. 가업승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국가경제가 발전할 수 있고, 고용도 안정될 수 있다.

가업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첫째가 세금이고, 둘째는 공동분할상속의 문제다. 이 중 공동분할상속의 원칙은 가업의 지배권을 후계자에게 승계시켜 가업을 유지시키는 것에 장애를 초래한다. 상속인이 여러 명인 경우에 후계자 한 명에게 주식을 집중시켜주어야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데, 공동분할상속과 유류분제도로 인해 이것이 어렵게 돼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주식신탁이다. 구찌, 페라가모, 프라다 등 명문장수기업들이 수백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주식신탁이다. 가업의 창업자는 주식을 패밀리오피스에 신탁을 해둔다.

주식의 의결권은 패밀리오피스가 위탁자의 유지(有旨), 신탁계약의 취지, CEO나 이사회와의 협의 등에 기초하여 통일적으로 행사하고, 배당수익은 수익자인 상속인들에게 분배해준다. 이것이 바로 상속이 거듭되더라도 경영권에 문제가 생기지 않아 명문장수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다.

유언대용신탁을 이용한 주식신탁의 구조는 이렇다. 경영자가 위탁자가 되어 수탁자에게 주식을 신탁한다. 생전수익자는 위탁자 본인이 되고, 후계자를 사후수익자로 지정한다. 그리고 수탁자에게 의결권행사를 지시하는 의결권행사지시권을 위탁자 내지 수익자에게 유보시킴으로써 경영권 유지한다. 위탁자 생전에는 위탁자가 의결권행사지시권을 가지고, 사후에는 후계자에게 의결권행사지시권을 부여한다. 의결권과는 별개로 배당수익은 신탁계약에 따라 수탁자가 공동상속인들에게 배분한다.

유언대용신탁의 방식을 이용하여 주식을 신탁할 경우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다. 첫째, 생전에 가업승계를 위한 사후설계를 미리 체계적으로 세울 수 있다. 둘째, 상속인들에게 배당수익을 분배해줌으로써 유류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셋째, 채무자의 강제집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넷째, 이혼시 주식에 대한 재산분할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에 대하여 주식의 의결권과 배당권을 분리시키는 것은 ‘주식 불가분성’에 위반돼 허용될 수 없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엄밀히 말해서 의결권과 배당권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다. 의결권과 배당권은 어디까지나 주식의 소유자인 수탁자가 가지고 있다. 다만 의결권을 행사할 때 의결권행사지시권이 유보되어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제한을 받는 것이고, 배당 역시도 신탁계약에 따라 정해진대로 상속인들에게 수익을 나눠줄 뿐이다.

문제는 수탁자가 신탁업자일 경우 발행주식 총수의 15%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금지시킨 자본시장법의 규정이다.(동법 제112조 제3항 제1호) 이 규정이 사실상 주식신탁을 못하게 막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이 규정은 유언대용신탁 방식을 이용한 주식신탁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 아니다. 금산분리원칙에 따라 금융이 산업을 지배하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위탁자가 의결권행사지시권을 유보하고 있는 유언대용신탁에 있어서는 이 규정을 적용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현재 학계나 실무계에서는 이 규정의 폐지 내지 적용제한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유언대용신탁 방식에 의한 주식신탁에 있어서는 이러한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마땅하다.

법률이 개정되기 전까지 현상태에서는 결국 신탁업자 아닌 사람에게 주식을 신탁하거나, 신탁업자에게 주식을 신탁한 경우에는 의결권을 행사하기 전에 잠시 신탁을 해지했다가 다시 신탁을 하는 수밖에는 없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명문장수기업이 될 수 있도록 불합리한 규제들을 하루빨리 해결해줘야 한다.

김상훈 <법무법인 가온 대표변호사(법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