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처 못찾은 시중자금 쏟아져
'0% 금리'에도 600조원 뭉칫돈
"Fed, 의도적으로 시장 팽창시켜
유동성 회수해 금리하락 통제"
금융시장 흔들 '뇌관'될 가능성
조기 테이퍼링 시그널 될 수도
미 월스트리트에서는 이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3년 도입된 이후 유명무실했던 역RP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예상치 못한 시장 변동성을 불러오는 ‘뇌관’이 될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반면 미 중앙은행(Fed)이 시중 유동성 및 금리를 관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역RP를 이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올 들어 103만 배 불어난 美 역RP
9일 Fed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일 미국에서 역RP의 하루 거래대금은 9521억달러(약 1088조원)에 달했다. 지난달 30일엔 1조393억달러로 Fed가 역RP를 도입한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1월 4일(100만달러)에 비해 7개월 만에 103만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마크 카바나 애널리스트는 “10월 말에는 1조5000억달러를 넘길 것”이라고 전망했다.역RP는 Fed가 일시적으로 보유 채권을 매각하는 것을 말한다. 역RP 시장에서 Fed는 채권을 은행 등에 팔아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한다. 은행 등은 역RP 계약 만기일에 해당 채권을 되팔면서 Fed로부터 연 0.05%의 수익을 받는다.
월가에선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 자금이 역RP로 몰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Fed가 거래 상대여서 안전하면서도 연 0.05%의 수익률이라도 챙길 수 있다는 점이 투자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뜻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역RP 시장의 팽창 속도를 홍수에 비유하며 “시중에 과도하게 자금이 풀려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보도했다. WSJ는 “국채나 기업 채권 대신 역RP로 단기 투자처를 전환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지적했다.
월가도 모르는 역RP ‘나비효과’
Fed가 시중의 과도한 유동성 및 금리를 관리하기 위해 역RP 시장을 의도적으로 키우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Fed는 지난 6월 17일 역RP 수익률을 연 0.05%로 정했다. 발표 전날에는 역RP 수익률이 연 0%였는데도 이미 하루 거래대금이 5209억달러였다. 수익률까지 제시되자 한 달여 만에 시장 규모가 1조달러를 돌파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최근 “역RP가 금리 안정에 기여하고 있어 별다른 우려 요인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Fed가 역RP를 활용해 시중의 유동성을 거둬들이며 금리 하락을 통제하고 있다는 의미다.하지만 월가에서는 역RP 팽창이 Fed의 의도대로만 흘러갈지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WSJ는 “시장 일각에선 역RP 등 단기 금융시장이 취약하고 붕괴 위험성도 높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며 “RP와 역RP 시장이 규모에 비해 거래자 등에 대한 정보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역RP의 영향력에 대한 분석이 시장에서 거의 이뤄지지 않은 점도 우려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단기 자금시장의 급격한 팽창이 미 국채시장과 증시 등 자산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마이클 디패스 시타델증권 국채시장 전문가는 “RP 시장은 단기 채권시장을 가늠하는 지표”라며 “단기 자금시장 움직임이 향후 전체 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역RP에 자금이 빠르게 몰려드는 현상이 투자처를 찾지 못할 만큼 시중에 유동성이 과잉 공급됐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어 Fed가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통해 잉여 유동성을 흡수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