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해바라기의 마음
태양을 사랑했던 빈센트 반 고흐는 태양을 닮은 해바라기를 많이 그렸다. 해가 지더라도 여전히 태양처럼 빛나는 모습을 간직하고자 그렸다는 얘기도 있고, 남프랑스 아를의 노란 집으로 이사한 후 친구인 고갱과 함께 쓸 작업실을 꾸미기 위해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해바라기가 국화인 페루의 잉카족은 예전부터 이 꽃을 무척 신성하게 여겼다. 그들에게 해바라기는 태양의 꽃 혹은 황금꽃이었다. 신전에서 봉헌하는 여인에게 황금으로 만든 해바라기관을 씌웠다. 영어권에서 선플라워(sunflower)라 부르는 해바라기. 나는 이 꽃 이름을 무척 좋아한다. 그리움,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지닌 해바라기는 끊임없이 뭔가를 그리워하고 기대하고 열망하는 인간의 마음을 생각하게 한다.

대체로 인간은 마음속에서 원하고 바라는 것을 향해 변화되기 마련이다. 마음속 깊은 갈망이 그렇게 이끈다. 못된 마음을 먹으면 못된 쪽으로, 선한 마음으로 갈망하면 선한 쪽으로 바뀐다. 단순하지만 심오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예부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특성은 내면의 실상을 대변하기 마련이다. 마음속에 담긴 것이 겉으로 드러나 표현된다. 동일한 현상이나 사물도 바라보는 사람의 내면속 갈망의 프리즘에 의해 달리 보이기 일쑤다.

수도자인 나는 검소하게 살고자 애쓴다. 쉽게 무엇을 버리거나 사지 않는다. 그러니 뭐 하나 장만할 일이 생기면 거기에 집중하는 편이다. 가령 안경을 새로 마련하기로 했으면 주위 사람들의 안경 스타일을 계속 관찰한다. 안경만 눈에 들어온다. 내 마음의 눈, 갈망의 구조가 그런 프리즘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놀라우면서도 무서운 일이다. 붉은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온통 붉고, 노랑 안경을 쓰면 온통 노랗다. 세상이 그런 게 결코 아니다. 바라보는 내 마음의 눈이 그럴 뿐이다. 또 누가 나를 해치거나 속이지 않을까 걱정하면, 순간 마음의 지옥에 빠질 수도 있다. 주변 사람이 모두 그런 사람처럼 보여 경계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 안의 선한 지향은 남의 마음속에 깃든 선함을 바라보게 한다. 그 마음속의 선함이 마주 보며 공명할 때 자연스레 상호이해와 행복의 지평이 열린다. 일방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남과 교감하면서 마주 본다는 것, 이 ‘마주보기’를 통해 우리는 상생상락(相生相樂)에 접근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내 마음속 열망을 정리하고 비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부지불식간에 스며들어온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무질서한 열망을 비우고, 좀 더 세상을 아름답게, 주변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기여하고 싶은 선한 마음의 열망을 지니도록 말이다. 서로의 마음속에 깃든 선한 마음의 지향들이 마주 보며 공명을 일으키고,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작은 파동들이 해바라기처럼 빛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