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진보진영 인사들과 그에 동조하는 이들은 “요즘 간첩이 어딨냐”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이 최근 적발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의 기막힌 체제전복 활동을 보면 그 말은 이제 “간첩은 곳곳에 있다”로 바꿔야 할 듯싶다.

피의자들은 여전히 “국정원의 조작”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에서 직접 지령과 공작금을 받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 ‘원수님의 충직한 전사로 살겠다’는 충성 혈서까지 나온 마당이라 대형 간첩단 사건으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찬양·고무, 잠입·탈출, 금품수수와 같은 온갖 이적행위 외에 제4조 ‘목적 수행’이 포함됐다. 목적 수행은 흔히 ‘간첩죄’로 불리는 것으로,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반(反)국가 중대범죄다.

문재인 정부가 북에 정상회담을 구걸하다 보니 간첩이 활개치는 세상이 된 것 아닌가 하는 국민 의혹이 한껏 커졌다. 피의자들이 국내 정치 최일선에까지 깊숙이 침투한 정황도 역력하다. 문 대통령의 대선캠프에서 특보로 활동했고, 불과 1년 전에도 당시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과 대북사업까지 논의했다. 더불어민주당, 민중당 등 인사들과의 빈번한 접촉은 물론, ‘중도파’ 안철수 진영에서도 감투를 쓰는 등 정치판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녔다. 어처구니없는 사태 전개에 대해 최소한 문 대통령과 송 대표는 모르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군 스텔스 전투기 F35 도입 반대 등 체제전복 활동까지 했다니 더욱 경악하게 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F35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추경을 편성한 과정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노동계와의 밀접한 관련성도 드러났다. 피의자들은 민주노총에서 조직국장, 여성연맹 사무처장 등의 중간간부를 지냈다. 수많은 정부 위원회에 참여해 국사를 논하는 최대 노동단체라면 진상을 조사하고 사과해야 할 일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혼란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피의자들의 직업(언론인, 대기업 직원, 간호사 등)을 보면 평범한 이웃이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민단체 활동 경력자라는 점도 진보진영에 대한 실망감을 키운다. 여권이 적극 수사로 실체를 밝히는 데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색깔론’이라며 뭉개려고 한다면 더 큰 충격파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