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급심 "무면허 사고도 업무상 재해"
법원, 업무상 재해 범위 넓게 인정하는 추세
먼저 지난달 15일 울산지방법원은 사망한 근로자 B의 유족 A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취소 소송에서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망인 B는 2020년 2월, 의무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50cc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신호등이 없는 T자형 교차로에서 좌회전 하다 직진하던 트럭과 충돌해 사망했다.
유족은 출퇴근 재해이므로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했지만 공단은 "산재보험법 37조 2항에 따라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산재보험법에서 규정하는 '범죄행위로 인한 사망'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망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며 "무면허가 사고의 직접 원인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안전 수칙을 위반한 B에게도 과실이 있다"면서도 "트럭을 운전하는 교차로에서는 속도를 줄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는 점, 보험사에서 트럭의 20%의 과실을 인정한 점에 비춰보면 망인의 중과실로 인한 범죄행위가 사고의 원인이 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에서는 근로자가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근하던 중 신호를 위반해 사고를 일으킨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지난달 7일 근로자 C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요양불승인 처분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C는 2019년 11월 경 무면허 상태로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근길에 나섰다. C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보행신호 녹색등이 깜박이는 시점에 무리해서 진입했다가 주행 신호를 받고 움직이던 화물트럭과 충돌했다. 좌측 경골이 골절되는 등 큰 부상을 입은 C는 지난해 1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이 사고는 C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상 중과실(신호위반)을 저질러 발생한 사고"라며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승인을 거절했다. 앞서 사건과 마찬가지로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됐다는 이유다.
법원은 "C에게 과실이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된다"면서도 "신호위반 운전행위가 산재보험 보호대상에서 배제돼야 할 정도로 위법하거나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화물차 운전자도 녹색등 점멸 도중에 횡단하는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 운전자가 흔하므로 두루 살피면서 운전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며 "오로지 C의 중과실로 인한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사고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판단해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근로복지공단은 "특례법 상 무면허 운전"에 해당한다고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범죄행위로 인한 부상'이란 범죄가 부상의 '직접 원인이 된 경우'만을 의미한다"며 공단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두 판결을 종합하면 교통사고 특례법 상 중과실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더라도, 그 사유가 비난가능성이 심한 범죄행위에 해당하며, 그 범죄행위가 부상이나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정도에 이르러야만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법원이 가급적 근로자의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업무상 재해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