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있지만 안지킨다…최저임금위는 '치외법권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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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동안 한번도 수용 안된 이의제기
법정 결정시한 있지만 누구도 신경안써
매년 달라지는 최저임금 결정기준
구분적용 가능하지만 사실상 사문화
법정 결정시한 있지만 누구도 신경안써
매년 달라지는 최저임금 결정기준
구분적용 가능하지만 사실상 사문화
정부가 지난 5일 내년도에 적용할 최저임금으로 시간당 9160원을 고시했습니다. 올해 대비 시간당 440원 오른 금액으로 인상률은 5.05%입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주40시간 근무하는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는 주휴수당을 포함해 191만4440원 이상의 급여를 지급해야 합니다. 위반 시 징역 3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집니다.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8년입니다. 근로자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최저임금법 제1조)이었습니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과 결정 시한, 효력 범위, 구분 적용, 이의제기 절차 등을 법에 명시해놓았습니다.
하지만 제도가 도입된 이래 33년간의 결정 과정을 보면 최저임금제도는 '무법지대' 또는 '치외법권 영역'에 가까울 정도로 법과는 관계없이 운영돼왔습니다. 사실상 사문화된 이의제기 절차(제9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결정시한(제8조), 매번 달라지는 결정기준(제4조), 있으나마나한 구분적용 조항(제4조) 등이 대표적입니다.
○사실상 사문화된 이의제기 절차
최저임금법 제9조는 노사 대표는 정부가 고시한 최저임금안에 대해 이의가 있으면 고시일로부터 10일 이내에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의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 자체가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이기에 거의 매년 이의제기는 있어왔습니다.
올해 심의 이후에도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사용자단체 3곳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사용자단체 대표격인 경총의 이의제기는 2018년 이후 3년 만이었습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취약계층 근로자들의 고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답변은 '재심의 이유 없음'이었습니다. 노사 대표가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 의견이 대부분 수렴된 만큼 재심의 필요성이 없다는 게 정부 설명입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노사 어느 한 쪽이 이의를 제기하는 데에는 심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런 점을 고려해 법에 이의제기 절차를 둔 것입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재심의는 1988년 제도 도입 이래 단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결정시한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근로자가 받을 최소한의 임금일 뿐만 아니라 실업급여, 육아휴직급여 등도 오르게 됩니다. 심지어 탈북자 국내 정착지원금, 형사보상금 등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정해집니다. 줄잡아 30개가 넘는 정책·재정 운영의 기준점이 바로 최저임금입니다. 즉 최저임금이 제때 정해지지 않으면 30개가 넘는 관계법령·정책도 잇따라 지장을 받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최저임금법이 차기연도 적용 최저임금의 결정시한을 명시한 까닭입니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위원회는 고용부 장관에게 심의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심의를 완료해야 합니다. 고용부 장관이 매년 3월말까지 심의 요청을 하도록 돼있는 점을 감안하면 법정 최저임금 결정시한은 매년 6월29일이 됩니다. 통상 7월에 발표되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앞두고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돼야 보다 정밀하고, 예측가능한 살림규모가 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하지만 법정 결정시한 내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은 1988년 제도 도입 이래 손에 꼽을 정도로 몇 차례 되지 않습니다. 올해 심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6월29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6차 회의에서는 최저임금 결정은커녕 노사 양측이 각각 1만800원(23.9% 인상), 8720원(동결)이라는 최초 요구안을 내놓는데 그쳤습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위원회는 물론 소관부처인 고용부도 결정시한 경과에 대해 당연하다는듯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매번 달라지는 결정기준
고용부는 지난 5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하면서 인상률을 5.05%라고 설명했습니다. 시급 8720원에서 9160원으로 오르니 인상률은 5.05%가 맞습니다. 정확히는 5.045%인데, 소수점 세 자리를 반올림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설명이 나오자 노동계에서는 5.05%가 아닌 5.1%로 바로잡으라는 요구가 나왔습니다.
노동계가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5.05%가 아닌 5.1%로 표기하라고 요구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사회적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사항이라는 것입니다. 한 꺼풀 벗겨서 보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한 근거로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3개 기관의 평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4.0%)와 물가상승률 전망치(1.8%)를 더한 뒤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0.7%)를 빼 5.1%를 산출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 결과 5.1%에 가장 가까운 금액으로 9160원이 도출됐으므로 인상률은 5.1%가 맞다는 주장입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소동이 벌어지는 것은 매년 인상률 결정의 근거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최저임금법 제4조는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으로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인상률 산정 근거는 매년 달라지는 게 현실입니다.
○있으나마나한 구분적용 조항
최저임금법 제4조는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과 함께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해 업종별 구분적용도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88년 제도 도입 첫 해를 제외하고는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한 적은 없습니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사용자단체에서는 업종별 구분적용 필요성을 매년 주장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진 적은 없습니다. 사실상 결정권을 쥐고 있는 공익위원들의 반대 때문인데, 이들은 모두 정부가 추천한 인사들입니다.
정부는 최저임금 구분적용이 어려운 이유로 임금이 적은 업종에 대한 낙인효과와 함께 구분적용을 위한 충분한 실태조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분적용을 위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는 지금까지 한번도 진행된 적이 없습니다. 법에서는 구분적용을 할 수 있다고 돼있지만, 사실상 사문화한 규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8년입니다. 근로자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최저임금법 제1조)이었습니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과 결정 시한, 효력 범위, 구분 적용, 이의제기 절차 등을 법에 명시해놓았습니다.
하지만 제도가 도입된 이래 33년간의 결정 과정을 보면 최저임금제도는 '무법지대' 또는 '치외법권 영역'에 가까울 정도로 법과는 관계없이 운영돼왔습니다. 사실상 사문화된 이의제기 절차(제9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결정시한(제8조), 매번 달라지는 결정기준(제4조), 있으나마나한 구분적용 조항(제4조) 등이 대표적입니다.
○사실상 사문화된 이의제기 절차
최저임금법 제9조는 노사 대표는 정부가 고시한 최저임금안에 대해 이의가 있으면 고시일로부터 10일 이내에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의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 자체가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이기에 거의 매년 이의제기는 있어왔습니다.
올해 심의 이후에도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사용자단체 3곳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사용자단체 대표격인 경총의 이의제기는 2018년 이후 3년 만이었습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취약계층 근로자들의 고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답변은 '재심의 이유 없음'이었습니다. 노사 대표가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 의견이 대부분 수렴된 만큼 재심의 필요성이 없다는 게 정부 설명입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노사 어느 한 쪽이 이의를 제기하는 데에는 심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런 점을 고려해 법에 이의제기 절차를 둔 것입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재심의는 1988년 제도 도입 이래 단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결정시한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근로자가 받을 최소한의 임금일 뿐만 아니라 실업급여, 육아휴직급여 등도 오르게 됩니다. 심지어 탈북자 국내 정착지원금, 형사보상금 등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정해집니다. 줄잡아 30개가 넘는 정책·재정 운영의 기준점이 바로 최저임금입니다. 즉 최저임금이 제때 정해지지 않으면 30개가 넘는 관계법령·정책도 잇따라 지장을 받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최저임금법이 차기연도 적용 최저임금의 결정시한을 명시한 까닭입니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위원회는 고용부 장관에게 심의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심의를 완료해야 합니다. 고용부 장관이 매년 3월말까지 심의 요청을 하도록 돼있는 점을 감안하면 법정 최저임금 결정시한은 매년 6월29일이 됩니다. 통상 7월에 발표되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앞두고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돼야 보다 정밀하고, 예측가능한 살림규모가 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하지만 법정 결정시한 내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은 1988년 제도 도입 이래 손에 꼽을 정도로 몇 차례 되지 않습니다. 올해 심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6월29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6차 회의에서는 최저임금 결정은커녕 노사 양측이 각각 1만800원(23.9% 인상), 8720원(동결)이라는 최초 요구안을 내놓는데 그쳤습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위원회는 물론 소관부처인 고용부도 결정시한 경과에 대해 당연하다는듯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매번 달라지는 결정기준
고용부는 지난 5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하면서 인상률을 5.05%라고 설명했습니다. 시급 8720원에서 9160원으로 오르니 인상률은 5.05%가 맞습니다. 정확히는 5.045%인데, 소수점 세 자리를 반올림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설명이 나오자 노동계에서는 5.05%가 아닌 5.1%로 바로잡으라는 요구가 나왔습니다.
노동계가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5.05%가 아닌 5.1%로 표기하라고 요구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사회적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사항이라는 것입니다. 한 꺼풀 벗겨서 보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한 근거로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3개 기관의 평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4.0%)와 물가상승률 전망치(1.8%)를 더한 뒤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0.7%)를 빼 5.1%를 산출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 결과 5.1%에 가장 가까운 금액으로 9160원이 도출됐으므로 인상률은 5.1%가 맞다는 주장입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소동이 벌어지는 것은 매년 인상률 결정의 근거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최저임금법 제4조는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으로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인상률 산정 근거는 매년 달라지는 게 현실입니다.
○있으나마나한 구분적용 조항
최저임금법 제4조는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과 함께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해 업종별 구분적용도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88년 제도 도입 첫 해를 제외하고는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한 적은 없습니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사용자단체에서는 업종별 구분적용 필요성을 매년 주장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진 적은 없습니다. 사실상 결정권을 쥐고 있는 공익위원들의 반대 때문인데, 이들은 모두 정부가 추천한 인사들입니다.
정부는 최저임금 구분적용이 어려운 이유로 임금이 적은 업종에 대한 낙인효과와 함께 구분적용을 위한 충분한 실태조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분적용을 위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는 지금까지 한번도 진행된 적이 없습니다. 법에서는 구분적용을 할 수 있다고 돼있지만, 사실상 사문화한 규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