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문마다 태양광 패널 > 소규모 태양광 발전을 통한 전력 수급량이 그동안 정부의 최대 전력 수요 예측에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가 에너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10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단지 곳곳에 자가(自家) 발전용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김범준 기자
< 창문마다 태양광 패널 > 소규모 태양광 발전을 통한 전력 수급량이 그동안 정부의 최대 전력 수요 예측에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가 에너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10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단지 곳곳에 자가(自家) 발전용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김범준 기자
정부의 올여름 전력 수요 예측이 실제 전력 수요에 비해 7% 이상 낮게 잡힌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전력 수요를 예측할 때 정확한 발전 현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소규모 태양광 발전을 집계 대상에서 제외한 탓이다. 태양광 발전은 갈수록 늘고 있지만 자가(自家) 태양광 발전 등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정확한 전력 수요 예측에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올여름 최대 전력 수요(피크 전력)는 90GW로 예측됐다. 하지만 올여름 전력 수요가 가장 컸던 지난달 27일 오후 5시 기준 실제 전력 수요는 96.4GW에 달했다. 96.4GW 규모의 실제 수요는 정부가 그동안 전력 수요를 예측할 때 집계하지 않았던 전력시장 외에서의 태양광 발전을 모두 취합한 것이다. 가정·농업용과 일반 기업에서 사용하는 소형 태양광 발전 시스템 등이 전력시장 외 발전에 속한다.

불과 1년 전에 정부가 예측한 올여름 최대 전력 수요와 실제 전력 수요 간 차이가 6.4GW(7.1%)에 달한 셈이다. 원자력 발전소 한 기의 발전용량이 통상 1~1.4GW인 점을 감안하면 원전 5~6기 용량의 수급 오차가 발생했다.

태양광 발전을 포함한 전력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전력의 안정적 수급이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건물 지붕 등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은 날씨가 흐리거나 일조량이 적은 겨울철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원자력 등 다른 에너지원으로 수요를 대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양광 홍보하다 '엉터리 예측' 들통…정부가 '블랙아웃 공포' 스위치 켜

정부가 8개월 전에 발표한 올여름 전력 수요 예측이 실제와 원자력 발전소 5~6기 용량의 오차를 보인 이유는 태양광 발전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태양광 발전은 크게 △공식 전력시장 내 태양광 △한국전력과 직거래하는 방식의 전력구매계약(PPA) △개인 자가(自家)발전 등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세 종류의 태양광 발전 가운데 정부의 공식 집계에 포함된 태양광은 전력시장 내 태양광 한 가지뿐이다. 정부는 PPA와 자가발전 태양광의 수급량이 얼마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양광 홍보하려다 드러난 민낯

정확한 태양광 발전 비율이 ‘깜깜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PPA, 자가발전 등 전력시장 외 태양광 발전량을 정확히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만인 이달 4일 전력시장 밖에서의 발전을 포함해 태양광 발전이 국내 전체 생산 전력 중 실제 차지하는 비율을 추산해 발표했다. 지난달 기준 햇빛이 강한 오후 2~3시엔 태양광 발전이 전체 전력 수요의 11.1%를 담당하고, 오후 4~5시엔 6.8%를 차지한다는 내용이다.

산업부가 발표한 태양광의 발전 비율은 그동안 숨어있던 전체 전력 수요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공식 전력시장 안에서 집계된 전력 수요에 11.1%와 6.8%를 역산한 결과 올해 최대 전력피크를 기록한 지난달 27일 오후 5시 전력 수요는 약 96.4GW로 집계됐다. 정부가 지난해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밝힌 올해 최대 전력 수요 예측치에 비해 7.1%(6.4GW) 높은 수준이다.
7%나 빗나간 정부의 엉터리 전력수요 예측

한겨울 블랙아웃 현실화하나

문제는 이처럼 감춰진 태양광 발전이 날씨가 흐린 날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올여름처럼 장마가 짧고 햇빛이 강한 날씨에선 태양광의 발전효율이 높아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산업부가 “기온이 높은 전력 피크시간대 태양광 발전비율은 11.1%로, (전력시장 밖의) 태양광 발전이 전력시장 안에서의 전력 수요를 ‘상쇄’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 이유다.

하지만 구름이 많이 끼면서 고온다습하거나 한겨울 햇빛 없이 난방 수요가 많은 날에는 전력 수요는 비슷한데도 태양광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없다. 날씨가 태양광 발전에 적합하지 않으면 그동안 태양광이 전력 수요를 상쇄해온 만큼 전력시장 안에서 원전, 화력발전을 통한 대체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애초 예측이 잘못 이뤄졌으니 전력 수급대책에 구멍이 뚫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그동안 태양광 발전 뒤에 가려져 있던 숨은 수요가 문제다. 일부 전력 수요를 태양광 발전으로 조달하던 가구들이 어떤 이유로든 갑자기 이를 이용할 수 없게 되면 그 급증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햇빛 없이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한겨울이 진짜 문제”라며 “정부가 안정적 에너지원인 원자력을 줄이면서 태양광 발전을 급격히 늘리면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위험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정부 “10차 계획 땐 오차 해소할 것”

전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선 전력시장 외 태양광을 포함한 실제 전력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확한 수요 예측이 선행돼야 날씨가 좋지 않을 때 원자력 등 다른 에너지원을 동원한 발전이 얼마나 필요하고, 장기적으로 발전소를 얼마나 더 지을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에 산업부 관계자는 “전력이 부족할 때 단기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추가 예비 전력이 8.8GW 있기 때문에 당장 블랙아웃이 발생할 가능성은 미미하다”면서도 “국민 혼란을 막기 위해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할 때는 전력시장 외 태양광 발전까지 포함해서 전력 수요를 정확히 발표하겠다”고 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