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화가도 메달을 따고 싶다
88 서울올림픽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으로 도쿄올림픽이 아쉽게 끝났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서운함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운동에만 전념하도록 도와줄 후원기업이 점차 줄고, 종주국인 태권도에서 단 한 개의 금메달도 없는 것 때문이다. 태권도가 국제화되고 있다는 징조라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말도 나온다. 메달을 따는 선수에게 빙의돼 온 국민이 환호하고 하나로 뭉쳐지게 하는 스포츠의 힘을 아는지라, 올림픽은 ‘참가에 의의를 둔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사실 쉽지 않다. 하지만 보름 동안 코로나19 시국의 힘겨움을 잠시 잊게 해준 것에 대해서는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선수 여러분 수고 많이 했습니다.”

이렇듯 온 국민의 관심을 끈다는 의미에서 스포츠 선수들에 대해 한편으론 부러운 마음이 항상 있다. 그리고 음악 하는 ‘뮤지션’도 마찬가지다. 클래식 쪽으로는 수많은 국제적인 ‘콩쿠르’가 있어 이름을 날린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활약과 명성을 간간이 들을 수 있고, 대중음악 쪽도 K팝으로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는 등 그야말로 ‘글로벌’해지는데, 같은 예체능 중 화가들은 왜 그런 일이 없을까? 한때 미술잡지에서 화가들의 세계 순위를 다룬 적이 있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잠시 보이다가 사라졌다. 공신력 문제인지 예술에 등급을 나누는 것이 불편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미국 국적이지만 ‘백남준’ 화백이 꽤 높은 순위에 올라서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사회적인 대우가 좀 나아지긴 했으나 아직도 화가를 수도승처럼 대하는 것에는 여전히 갑갑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금메달, 1등 같은 순위와 숫자에 민감하다. 그 노고에 박수도 보내고 부러워도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화가들도 일반 사람의 관심을 끌 공신력 있는 순위 같은 걸 만들면 왜 안 되는 걸까? 순위를 매기는 것이 정녕 예술에 대한 불경스러운 일이기만 할까?라는 의문을 늘 품게 되는 것이다.

차가 없는 우리 부부에게 말복 전에 몸보신 한번 하자며, 미술계에 종사하는 친한 동생이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의, 경기도 유명 초계탕 집으로 데리고 갔다. 식사 후 잘 꾸며 놓은 한 카페에 들러 여유롭게 커피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앞에서 언급한 화가들의 순위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그 동생이 아내를 의식해서 “형님은 우리나라 100등 안엔 들 걸요?”라고 했다. 아내는 나를 한번 쓱 쳐다봤다. 대단하다는 건지 그것밖에 안 되냐는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 친구 발을 한번 툭 치니 이내 “아! 50등 안엔 들 겁니다”라고 정정해 10초 사이 무려 50등이나 올려줘 고맙다며 한바탕 웃었다. 이렇듯 재미로 말한 순위였지만 아내도 관심을 보였던 만큼 일반 사람도 미술에 더 흥미를 느낄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동생의 유머 덕에 나는 허공에 뜬 순위지만 실제인 양 마음을 다잡고, 100·99·98… 마음속 순위를 한 단계 한 단계 줄여 언젠가는 메달을 목에 거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