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성추행 의혹을 받아온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주지사(63)가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오랜 친구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등을 돌린 데 이어 같은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탄핵을 추진하면서다.

쿠오모 주지사는 1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뉴욕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며 모든 업무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사퇴 시점은 2주일 후인 오는 24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발표는 쿠오모 주지사가 전·현직 여성 보좌관 11명을 성추행 및 희롱했다는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의 보고서가 나온 지 1주일 만에 이뤄진 것이다. 그는 여성들에게 키스를 강요하고 신체를 만졌으며 성적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발언과 협박을 일삼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동안 “부적절한 신체 접촉은 없었다”고 주장해온 쿠오모 주지사는 이날도 “개인적인 문제로 행정이 마비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것일 뿐 고의로 여성에게 무례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2세 정치인으로 꼽힌다. 부친은 1983년부터 12년간 뉴욕주지사를 지냈다. 쿠오모가 20대부터 정계에 입문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1990년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의 딸인 케리 케네디와 결혼해 정치 명문가의 사위가 됐으나 2005년 이혼했다.

2010년 첫 임기를 시작으로 내리 3선을 지내고 있는 쿠오모 주지사는 전직 보좌관 린지 보일런의 폭로가 나온 작년 12월 이후 8개월 만에 정치 경력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됐다.

특히 뉴욕주 하원은 물론 탄핵 심판이 열릴 상원에서도 쿠오모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기에 충분한 표가 확보된 상태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뉴욕주 의회는 쿠오모의 ‘친정’인 민주당의 텃밭이다. 계속 버티기로 일관하다간 1913년 윌리엄 설저 이후 100여 년 만에 두 번째로 탄핵당하는 뉴욕주지사가 될 것이란 관측이 쏟아졌다. 다만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검찰 기소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내년 말까지인 쿠오모 주지사의 잔여 임기는 캐시 호컬 부지사(62)가 맡는다. 사상 첫 여성 뉴욕주지사다.

뉴욕주에선 두 명의 주지사가 연속으로 ‘성 스캔들’에 휘말려 중도 하차하는 진기록도 쓰게 됐다. 2008년 엘리엇 스피처 당시 주지사는 고급 매춘조직 고객이란 사실이 드러나자 데이비드 패터슨 부지사에게 자리를 넘겼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