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지속…안전자산 매력 떨어져
코로나 이후 물가 뛰었지만 美테이퍼링 가능성에 힘 못써
글로벌 '큰손'은 여전히 신뢰…비트코인 버리고 금 매입
올해 들어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금(金) 가격과 미국 S&P500지수 변동폭이다. 하락세인 금과 비교하면 주식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위험에서 벗어난 미국 경기가 반등하며 기업들이 잇따라 어닝서프라이즈를 발표한 게 주가 상승 동력으로 꼽힌다. 경기가 살아나면서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타당한 흐름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의 금 가격 하락은 예사롭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세계 각국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지만 중앙은행들이 경기 부양을 위해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물가가 뛰고 금리가 낮아지면 안전자산 수요는 늘어난다. 금의 이런 역할마저 희미해졌다. 암호화폐 등 다양한 가치저장용 투자 수단이 등장해 금의 지위를 흔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물가 상승에도 떨어지는 금값
코로나19 유행으로 움츠렸던 세계 경제가 회복하면서 각국의 물가상승률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올 6월 생산자물가(P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 올라 2010년 11월 통계를 작성한 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중국의 지난달 PPI도 전년 동기 대비 9% 뛰었다. 올해 중국 PPI는 5월 9%로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6월 8.8%로 하락했다가 다시 반등한 것이다.‘고물가·저금리’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금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조만간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금리가 올라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 통상 금 가치는 떨어진다. 각국 정부가 긴축에 들어갈 게 뻔하기 때문에 금 가격 상승 여력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금은 장기 수익률도 초라하다. 최근 10년간 S&P500이 295%, 집값이 80%, 10년 만기 미 국채 지수가 21% 오르는 동안 금 가격은 0.02% 하락했다.
‘금=안전자산’ 공식 깨졌다
물가와 금 가격의 상관관계가 무너진 데 대해 금이 이미 안전자산 지위를 잃어버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전자산 가치를 지키려면 변동성을 낮게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50년간 소비자물가지수 대비 금 가격은 1~8.4로 널뛰기를 했다. 금을 대체투자수단으로 활용하기엔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평가도 있다. 캠벨 하비 듀크대 교수는 “지난 50년간 소비자물가지수 대비 금 가격은 평균 3.6 정도였지만 최근의 금 가격은 이보다 두 배에 달하는 6.5”라며 “물가 상승 위험을 분산하기엔 금이 너무 비싸다”고 했다.금 투자를 위험 분산 포트폴리오로 활용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한지 의문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주가가 내려가면 금값이 오르는 이른바 ‘음’의 상관관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2~3월 S&P500지수가 34% 폭락하던 때 금 투자 상품 가격은 39% 떨어졌다. 코로나19로 전례없이 불확실성이 커지자 모든 투자 수요가 얼어붙은 탓이다. 지난해 말 각국에 돈이 넘쳐나자 금과 주가는 함께 고공행진을 했다. 넘치는 유동성에 다양한 투자처로 돈이 몰린 것이다.
그래도 금은 지위 지킬 것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등장하면서 금이 가치저장 수단 지위를 독점하던 시대가 지났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금의 아성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세계 중앙은행과 ‘큰손’ 투자자가 여전히 금에 신뢰를 보내고 있어서다. 금 시장 조사기관인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각국 중앙은행은 지난해보다 63% 많은 333t의 금을 사들였다.‘디지털 금’으로 불리는 경쟁자 암호화폐가 극심한 가격 변동성으로 신뢰를 잃어가는 것도 금의 지위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JP모간은 지난 5월 보고서에서 자산가들이 비트코인을 버리고 금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