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정점 지났지만 높게 지속될 것이란 경고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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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는 S&P 500 지수와 다우 지수가 각각 0.62%와 0.25% 상승, 또다시 사상 최고치 기록을 세웠습니다. 특히 S&P 500 지수의 경우 4447.30까지 올라 올 들어 46번째 사상 최고치 기록을 세우면서 작년 팬데믹 최저점(3월23일 2237.40)보다 두 배 오른 수준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반면 나스닥은 0.18% 떨어지면서 이틀째 하락했습니다.
아침 8시 반에 발표된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이런 장세를 촉발했습니다. 인플레이션도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물가 때문에 미 중앙은행(Fed)이 급하게 긴축 페달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낮아진 덕분입니다. 7월 CPI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4% 올라 전달과 같으며 월가 예상 5.3%보다 살짝 높았습니다. 하지만 전월 대비 수치는 0.5%(예상 0.5%) 오르는 데 그쳐 6월의 0.9%보다 확연히 낮아졌습니다.
특히 음식물과 에너지를 뺀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3% 상승(전년 대비 4.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상치(0.4%, 4.4%)를 0.1%포인트 밑돌았습니다. 지난 6월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9%나 폭등해 투자자를 놀라게 했었는데 상승률이 절반 수준으로 둔화한 것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그동안 물가 급등의 주역이었던 중고차 가격, 비행기 운임 등 일시적 요인들이 꺾이면서 CPI가 6월에 정점을 찍을 것이란 예상이 맞아떨어졌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고차 가격은 전달보다 0.2%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지난 4월 10.0%, 5월 7.3%, 6월 10.5% 급등해 투자자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중고차 값이 정상화되고 있는 겁니다. 전달에 2.0% 올랐던 신차 가격도 7월엔 1.7% 상승으로 상승률이 줄었습니다. 전달 0.7% 올랐던 옷값은 0%로 변화가 없었습니다.
특히 6월 전달보다 5.2% 상승했던 렌터카 가격은 -4.6% 떨어졌고, 비행기 운임도 2.7% 상승에서 -0.1% 내림세로 돌아서면서 전체 운송서비스 가격을 전월 대비 1.1% 하락시켰습니다. 호텔 등 숙박비는 6.0% 상승했지만, 전월 7.0% 상승에 비해선 소폭 줄었습니다.
그 외 에너지값은 전월(1.5%)보다 높은 1.6% 상승했고, 음식료 가격은 전월(0.8%)보다 약간 낮은 0.7% 올랐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여러 요인이 좀 섞여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물가가 예상보다는 낮았다. 호텔 및 항공료 가격이 대략 팬데믹 이전 추세로 돌아왔다. 이는 여행 관련 서비스 가격 반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상승의 대부분이 이제 우리 뒤에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우려할 요인들이 꽤 있습니다. 제프리스는 투자 메모에서 "현재로서는 대규모 인플레이션 서프라이즈 행진이 끝났다. 그러나 물가상승 압력의 시대가 진정으로 끝난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근원 인플레이션은 미 중앙은행(Fed)이 희망하는 것처럼 빨리 떨어질 것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① 물가 압력의 확산
일시적 요인들은 꺾이고 있지만, 물가 상승세는 레스토랑 외식비(0.8%) 교육비(0.14%) 기타 개인 서비스(1.18%) 등으로 다양한 분야로 퍼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물가 압력이 미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 일시적이지 않은 요인들 상승
또 주거비(0.4% 상승) 등 중장기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는 요인의 상승률이 여전히 높게 유지되었습니다. 주거비 중 임대료 지수는 0.2%, 소유자 등가 임대료(OER) 지수는 0.3% 올랐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주거비는 CPI 구성 요소의 30% 가량을 차지하는 중요한 요소인데다,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꾸준히 오르는 성질이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직 CPI에서 렌트 상승률은 높게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통계에선 상승세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 글로벌 자문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CNBC 인터뷰에서 "향후 몇 달 안에 렌트가 올라가면서 (현실을) 따라잡게 될 것이다. 렌트 상승세는 가속화될 것이며 이건 일시적인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③ 기본적으로 5%는 너무 높다
헤드라인 물가 5.4%는 2008년 8월 이래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특히 이런 수치가 두 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현재 최악의 구인란 속에 임금이 계속 오르고 있고, 집값과 렌트도 치솟는 상황이어서 사람들이 조금씩 불안해하고 있다. 2%를 넘는 인플레이션이 적어도 1~2년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인플레를 초래한 Fed가 완화적 통화정책을 빨리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의 크리스 자일스 칼럼니스트는 "중앙은행들이 시장을 달래는 물가 예상을 내놓고 있지만, 조만간 치솟는 물가에 대해 걱정하게 될 것이라는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물가에 대한 걱정은 백악관으로도 번진 것 같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CPI와 관련, "소비자물가는 인플레이션에 좋은 뉴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백악관은 이번 주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에 원유 증산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OPEC+가 8월부터 내년까지 매달 하루 40만 배럴씩 감산을 완화하기로 한 데 대해 “세계 경기 회복의 결정적인 순간에 정말로 충분하지 않다”라는 겁니다. 백악관은 또 국내적으로 연방거래위원회(FTC)에 미국 시장을 감시해 가격 인상에 영향을 미치는 반독점 등 불법 행위를 바로잡을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는 유가가 치솟으면서 물가와 경제 회복에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CPI 기준으로 에너지 가격은 1월부터 3월까지 매달 3~5% 올랐고 7월에도 1.63% 올랐습니다. 특히 휘발유값은 지난 6월에 비해 2.4% 올랐고, 전년 동월 대비해선 41.8% 오른 상태입니다.
만약 이런 유가 상승이 이어진다면 물가 상승이 지속하면서 돈을 풀기가 부담스러워집니다. 특히 Fed가 긴축에라도 들어가게 된다면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경제가 타격을 받는다면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이길 수가 없겠지요.
월가 관계자는 "유가 상승은 바이든 행정부가 사우디 등을 등한시하고, 친환경 정책을 밀어붙여 초래한 측면도 있다"라면서 "일부에선 인플레이션이 치솟으면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 관세 협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인 2018~2019년 중국산 수입품 수천억 달러 규모에 대해 새로운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이를 되돌리면 일부 물가 압력을 낮출 수 있겠지요.
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아직 인프라 법안과 미국혁신경쟁법(USICA) 등을 통해 미국의 인프라와 산업을 혁신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므로 금세 이런 합의가 나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이날 CPI는 기본적으로 월가 예상보다는 낮았고, 인플레이션도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물가가 걱정하던 것보다는 괜찮았다는 겁니다.
여기에 민주당이 이날 상원에서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자체 인프라 법안을 예산조정 절차를 통해 처리하기 위한 결의안을 발의해 가결한 것도 뉴욕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줬습니다. (민주당의 중도파인 조 맨친 상원의원은 성명을 통해 "인프라 법안의 예산조정 절차 시작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지만, 만약 의회가 또다시 3조5000억 달러를 쓰고자 결정한다면 미국민들에게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소재(1.42%)와 산업(1.30%), 금융(1.17%) 등 경기민감주들이 상승하면서 다우와 S&P 500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습니다.
이날 10년물 국채 금리는 특이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CPI 발표 전인 이날 새벽 불안감 속에 연 1.37%대까지 꾸준히 올랐지만, 발표 직후엔 전날 종가 수준인 1.35%대로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주거비 등으로 인해 높은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 등에 다시 1.37%대에서 거래됐습니다. 그러다 오후 1시 갑자기 급락해 1.30%까지 떨어졌습니다. 다시 1.2%대로 내려갈 뻔했습니다. 이는 오후 1시 실시된 재무부의 미 국채 10년물 입찰(410억 달러 규모)에서 굉장한 수요가 몰리면서 당시 시장금리인 1.372%보다 훨씬 낮은 1.34%에 발행금리가 정해진 영향입니다.
응찰률은 2.65배에 달해 지난달(2.39배)과 지난 여섯 번 평균(2.42배)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특히 해외 수요를 나타내는 간접 수요가 77.2%에 달해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돈이 너무 많다. 조금만 금리가 올라도 여전히 미 국채를 사고자 하는 수요가 넘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Fed가 앞으로 기준금리를 올려봐야 몇 번 올리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이 정도 수준에서 계속 수요가 몰리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금리는 이날 1.33% 수준에서 마감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