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사회의 역사적 상호작용
그러나 역사적으로 과학은 사회·정치 구조와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며 발전해왔다. 16~17세기 과학혁명은 계몽주의 사조와 공명하며 근대시민사회를 여는 동력이 됐다. 시민계급이 과학을 이론적 무기 삼아 신 중심의 중세 질서를 무너뜨리고 권력 장악에 성공한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한 생산력 발전을 이룬 산업혁명도 과학의 성과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과학은 자본주의 국민국가 체제로 편입되었고, 국가도 과학을 제도화하여 육성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부국강병의 국가적 요구에 따라 많은 연구소들이 탄생한다. 이들은 오늘날에도 과학의 최전선을 이끄는 세계적 두뇌집단으로 군림하고 있다.
독일 카이저빌헬름연구회(KWG)가 대표적인 예다. 연구회가 만들어진 1911년은 온 유럽이 제국주의 경쟁에 뛰어들던 시기다.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의 꿈도 조국을 대영제국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영국은 오랜 시간 축적된 과학의 힘으로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영국 왕실이 과학 진흥을 위해 왕립학회(Royal Society)를 만든 것이 무려 1660년이다. 이곳에서 아이작 뉴턴, 마이클 패러데이, 찰스 다윈 등 근대과학의 비조들이 배출된 것이다.
영국의 과학을 동경한 황제에게 구체적인 연구소 설립 계획을 내민 것은 과학자들이었다. 당시 공학의 급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과학자들이 국가 지원을 바탕으로 응용 목적을 배제한 기초연구에 특화된 연구소를 만들자고 나선 것이다. 이를 수용한 황제는 칙령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KWG 설립을 천명했다. 그리고 1948년 막스플랑크연구회(MPG)로 개명한 이들은 자연과 우주의 수많은 원리를 밝혀 노벨상 수상자만 35명을 배출했다.
20세기 초 설립된 연구소들이 성공한 이유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립됐다. 20세기 초 일본은 몇 번의 제국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해외 수입에 의존하던 화학공업이 1차 세계대전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이때 생산기술 국산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는 록펠러연구소(1901년), 카네기연구소(1902년), KWG(1911년) 등이 설립되고 있었다.
서양을 충실히 벤치마킹해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이런 흐름을 놓칠 리 없었다. 이에 미국에서 소화제와 아드레날린 결정 기술을 개발해 큰돈을 번 다카미네 조키치가 국민과학연구소 설립 제안을 했다. 그는 산업이 발전하려면 기초학문이 강해야 한다며 물리학과 화학 분야의 연구소 설립을 주장했다. 사업가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이에 공감해 정·재계 인사들을 모아 연구소 설립 여론을 확산시켰고, 1917년 제국의회 의결을 거쳐 RIKEN이 출범하게 됐다. 이후 RIKEN은 중화학공업화와 고도성장의 한 축이 되었다.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는 아예 전쟁이 연구소의 모태가 된 경우다. 2차 세계대전 중 추진된 맨해튼 프로젝트는 군사계획인 동시에 현대물리학의 첨단연구이기도 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리처드 파인만, 존 폰 노이만 등 당대의 천재들이 모두 참여했다. 그중에는 세계 최초로 사이클로트론을 개발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로렌스도 있었다. 그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이자 방사선연구소장으로서 사이클로트론을 활용해 원자폭탄의 원료인 우라늄-235의 분리에 성공했다. 이로써 미국은 승전국이자 세계 초강대국으로 올라서게 됐다.
종전 후 원자력위원회(현 에너지부)는 프로젝트에 투입된 전국의 대형 시설들을 재편해 국립연구소 네트워크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버클리의 방사선연구소도 국립연구소로 확대되었고, 어니스트 로렌스의 이름을 따 LBNL로 개명했다. 핵무기를 개발한 과거와 달리, 지금은 에너지·환경·건강 분야 기초연구를 수행 중이다. 이곳에서도 노벨상 수상자 14명이 배출됐으며, 공동연구 및 시설사용을 위해 연구소를 찾은 과학자의 수는 2020년에만 1만5000명이 넘는다.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연구소도 결국 사회 변동 및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20세기 초반 잇달아 설립된 대형 연구소들은 대부분 부국강병의 시대정신을 담지했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설파했듯 이때는 ‘제국의 시대’였고, 제국이 되려면 국방과 산업의 혁신을 이끌 과학 엘리트의 존재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정신과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7월 1일 기초과학연구원(IBS) 산하에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가 설립됐다. 우리나라에 이미 수십 개가 넘는 정부출연연구소가 있으나, 갓 출범한 이 연구소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현재의 시대정신을 체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부국강병이 시대가 과학에 기대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바이러스, 기후변화 등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자연의 위협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됐다.
그러려면 자연의 원리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필수다. 1년 반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초반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태를 종식시킬 백신을 만들어 낸 것은 미국, 영국과 같은 과학 강국이었다. 반면 우리는 방역은 잘 해냈지만 백신을 개발하지는 못했다. 백신 개발의 토대가 되는 과학적 지식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던 탓이다.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는 이를 위한 중장기 기초연구 역량을 갖추고자 한다.
IBS가 이 국가전략연구를 맡은 데에는 우선 석학 중심 중장기 기초연구에 대한 강점 때문이다. IBS는 우수과학자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자율성 부여에 있어서 국내 최고 수준을 보장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바이러스 연구처럼 연구자 역량과 장기적 자원 투입이 중요한 분야에 특히 적합하다. 기초과학 분야에 축적된 역량도 충분하다. 물론 기존 IBS 연구단장 중에 바이러스 전공자는 없지만, 생명과학 전반에서 꾸준히 역량을 쌓아온 김빛내리, 고규영, 천진우, 이창준 단장 등은 팬데믹 상황을 고려해 연구방향을 일부 조정했고, 코로나19 실체 규명에 세계가 주목한 성과들을 냈다.
출범은 했지만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가 가야 할 길은 험난하다. 엄밀히 말해 아직 연구소의 실체조차 뚜렷하지 않다. 연구계획 수립은 물론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연구소 건물도 지어야 한다. 현재 2개인 센터의 수도 더 늘려야 한다.
그러나 과거 MPG, RIKEN, LBNL 등이 그랬듯,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도 올바른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지도에 없는 목표를 향해 행군할 때는 현재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연구소의 시작이 곧 반이라고 믿는 이유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8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