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에스파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에스파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돌풍을 넘어 롱런이다. 그룹 에스파(aespa)가 무서운 속도로 인지도를 키워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내놓는 새 팀으로 주목 받았던 팀은 어느덧 '괴물 신인'에서 '대세 걸그룹'으로 향하고 있다.

에스파(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의 '넥스트 레벨(Next Level)'은 가온차트가 최근 발표한 7월 월간 디지털 차트에서 1억2900만 이상의 가온지수를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지난 5월 17일 발표된 음원은 가온 주간차트 9위로 진입해 무려 11주째 톱5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 MSG워너비, 헤이즈 등 쟁쟁한 음원 강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멜론, 지니뮤직 등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첫 인상은 상당히 낯설었다. 멤버별로 '아이(ae)'라 명명한 아바타를 두고 이를 활동에 접목하는, K팝 아이돌 신에서는 경험해본 적 없는 시도를 겸한 팀이었다. 시작에는 물음표가 붙었다. 가상의 아바타가 현실의 멤버들과 어떤 유기성을 갖고 세계관을 쌓아갈 수 있을지, 무엇보다 이러한 콘셉트가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따랐다.

데뷔곡 '블랙맘바(Black Mamba)'부터 과감하게 세계관을 전개했다. 아바타와 멤버들의 연결을 방해하는 존재를 '블랙맘바'로 설정하며 서사를 시작해나갔다. 강렬한 베이스가 인상적인 댄스곡 '블랙맘바'는 에스파와 만나 단순한 걸크러쉬 이상의 한층 강인하고 세련된 퍼포먼스로 표현됐다.

에스파는 '블랙맘바'로 갓 데뷔한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들을 냈다. 미국 빌보드 글로벌 차트(미국 제외)에 100위로 진입해 3주 연속 이름을 올렸다.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에서도 2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에스파라는 그룹보다는 K팝의 뉴 제너레이션을 여는 SM의 시도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듯 했다. 현실과 가상을 결합한 메타버스 기술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음악, 그리고 그 안의 세계관을 통해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바로 에스파였기 때문이다. SM의 독창적인 기획력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는 호성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룹 에스파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에스파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이후 '넥스트 레벨'을 통해 탄탄한 기획력은 멤버 개개인의 대중성으로도 이어지기 시작했다. 독보적인 세계관에 대중성이 더해지니 팀이 갖는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SM 팬들이 좋아하는 SMP(SM 뮤직 퍼포먼스)가 한껏 가미됐고, SMCU(SM 컬쳐 유니버스)의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도 녹여낸 에스파는 한 마디로 SM의 과거와 미래가 전부 투영된 그룹이었다.

SM 팬들에게는 특히 반가운 포인트가 많았다. SM 프로듀서 유영진은 메탈릭한 멜로디, 웅장한 비트, 사회 비판적 내용의 묵직한 가사, 강렬하고 파워풀한 안무까지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며 'SMP 아버지'라 불려왔다. H.O.T., S.E.S.를 시작으로 보아, 동방신기, 엑소, NCT 등 대부분의 SM 소속 가수들이 SMP를 선보였다. K팝의 역사와 함께 오래 유지되어 온 SMP의 정수를 이번 에스파를 통해 제대로 느껴볼 수 있었다.

거친 보컬과 퍼포먼스, 추상적인 듯 직설적인 화법의 가사까지 '넥스트 레벨' 곳곳에서 SMP의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SMCU가 구현되는 모든 공간을 '광야'라 칭한다는 청사진을 그린 SM의 세계관이 접목되니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다는 말이 적격이다. 화려한 비주얼을 기반으로 대중성을 노리는 전형에서 벗어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넥스트 레벨'은 뮤직비디오 공개 32일 만에 유튜브 1억뷰를 돌파했다. 또 미국 빌보드의 '빌보드 글로벌 200', '빌보드 글로벌 차트',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에 입성, '블랙맘바' 때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보였다. 멜론 차트가 개편되기 전, 24시간 누적 단위 이용량을 집계하는 '24Hits'에서도 1위를 찍었다.
에스파 '넥스트 레벨'을 커버하고 있는 가수 영탁, 바다, 브라질 댄스팀 B2 Dance group /사진=SNS 및 유튜브
에스파 '넥스트 레벨'을 커버하고 있는 가수 영탁, 바다, 브라질 댄스팀 B2 Dance group /사진=SNS 및 유튜브
다소 실험적일 수 있는 SM의 세계관이 일반 대중에게도 호소력을 가졌다는 점은 특히 의미있는 성과다. 리스너들은 에스파에게 '유영진의 딸'이라는 애칭을 붙여주는가 하면, 각자 생각하는 킬링포인트를 꼽으며 '넥스트 레벨'로 일종의 놀이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SMP의 원조 격인 S.E.S. 출신 가수 바다의 커버 영상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처럼 SNS를 통해 커버 및 챌린지가 꾸준히 이어지며 콘텐츠가 재생산된 점이 롱런의 비결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데뷔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니, 앞으로의 활동이 더 기대되는 에스파다. 음원 파워가 지속되며 지난주까지도 음악방송 1위 후보에 올랐던 에스파가 앨범을 발매하면 어떤 성과를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로벌 활동 또한 기대 포인트다. SM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할리우드에서 에스파의 세계관을 영화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에스파는 미국 최대 에이전시 Creative Artists Agency(CAA)와 계약을 체결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