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의 '정보기술(IT) 기업 옥죄기'가 속도를 더하고 있다. 재일교포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로 중국 IT 기업에 대한 투자 중단을 선언했다. 중국 최대 게임 기업 텐센트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크래프톤은 기업공개(IPO) 대박을 노렸지만 흥행에 참패했다. 중국의 이같은 방침은 더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여서 IT 업계의 '차이나리스크'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손정의 "中 당국 규제 너무 쏟아져, 투자 위험"

14일 IT 업계에 따르면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중국 당국의 규제 강화를 이유로 중국 IT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손 회장은 최근 도쿄에서 열린 실적 발표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규제가 너무 종잡을 수 없어 상황이 좀 더 명확해질 때까지 중국 기업에 대한 추가 투자를 보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투자자 관점에서 봤을 때 중국은 기술 혁신과 인공지능(AI)의 허브로 손색이 없지만 최근 전에 없던 새로운 규제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규제가 어떤 종류인지, 얼마나 확대될지, 또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파악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소프트뱅크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와 중국판 우버 서비스인 디디추싱,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 등 중국 IT 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최근 시장 독과점과 데이터 보안 등을 이유로 알리바바를 비롯한 자국 IT 기업에 전방위적인 규제에 나서면서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기업들 주가도 크게 하락했다. 실제로 알리바바 주가는 지난 2월과 비교해 현재 30%나 곤두박질쳤고,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가 지분을 보유한 디디추싱 주가는 지난 6월 상장 이후 약 3분의 1 가량 빠졌다.

미국 씨티그룹이 최근 소프트뱅크의 투자 지분 비율을 조사한 결과 알리바바 등 중국 기업 비중이 무려 44%에 달했다. 소프트뱅크의 2분기(4~6월) 순이익은 69억달러(한화 약 7조9619억)로 전년 동기 대비 40% 가량 감소했다. 전분기 580억달러(66조8000억)에 달했던 비전펀드와 비전펀드2의 2분기 투자수익도 26억달러(3조3760억원)로 쪼그라들었다. 손 회장이 중국의 IT 기업 규제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SCMP "크래프톤 IPO 흥행 참패는 중국의 게임 탄압 때문"

크래프톤, 코스피 상장 [사진=연합뉴스]
크래프톤, 코스피 상장 [사진=연합뉴스]
중국의 IT 기업 규제는 국내 게임업계로도 불똥이 튀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크래프톤이 상장 이후 공모가를 밑돌 정도로 부진했던 이유는 중국의 게임 산업 탄압 영향이 크다"고 보도했다.

지난 10일 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크래프톤은 장중 내내 약세를 보이다가 막판 반등하며 45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초가 대비로 1.23% 상승한 것이지만 공모가(49만8000원) 대비로는 8.84% 하락했다. 대부분의 공모주들이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 것과 비교해 '상장 굴욕'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SCMP는 중국 당국의 게임 산업 탄압이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에서 게임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에 가깝다. 최근 중국 관영매체 '경제참고보'가 "게임은 정신적 아편"이라고 보도한 뒤 중국의 게임 관련 주식은 일제히 급락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라이트스트림 리서치의 설립자인 가토 미오는 "중국이 게임 산업에 대한 단속을 본격화하면 게임 주식은 더 하락할 것"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더 큰 문제는 크래프톤이 중국 최대 게임업체인 텐센트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텐센트는 중국의 게임 산업 규제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기업이다. 이 같은 흐름 탓에 텐센트는 올 들어 주가가 37% 급락했다. 마화텅 텐센트 회장의 재산도 140억달러(약 16조원)나 증발했다.

텐센트는 자회사인 '이미지 프레임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2017년 크래프톤의 지분 13.6%를 인수했다. 이는 창업자 장병규 의장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것으로, 중국의 게임 규제가 계속되는 한 크래프톤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SCMP는 전망했다.

"당분간 규제 강도 약화될 가능성 크지 않아"

텐센트 본사 [사진=연합뉴스]
텐센트 본사 [사진=연합뉴스]
정정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는 올해 경제 목표 중 하나로 반독점 강화 및 무분별한 자본 확장 방지 등 플랫폼 기업 규제를 제시했다"며 "연말에 진행될 경제공작회의나 내년 양회에서의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분간 규제 강도가 약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어 "자국 기업에 대한 규제에 '국가안보' 개념을 적용했다는 점은 이미 규제 강도가 국가급 레벨까지 다다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면서 "미국과의 1단계 무역합의 이행 점검을 앞두고 내부 소음을 줄여야 한다는 점,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불안정 요소를 부각시킬 필요가 없다는 점은 변수"라고 여러 가능성을 언급했다.

업계 관계자는 "IT 기업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가진 손 회장이 그동안 중국 기업들을 높이 평가하고, 또 재미도 봤지만 그가 '차이나 리스크'를 실적 발표 자리에서 직접 언급했다는 것만으로도 글로벌 투자자들의 중국 투자 위축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는 IT 기업들이 자본과 플랫폼을 무기로 과도하게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중국 당국에 쓴소리를 했다가 추락한 마윈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제는 IT 기업들이 중국 정부를 어떻게 달래는지, 이 요소가 투자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고 부연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