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빚 갚을 능력을 평가하는 신용점수가 ‘뻥튀기’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1000점 만점에 900점을 넘는 고신용자가 1920만 명을 넘어서 전체의 40%에 이를 정도다.

신용평가회사들이 매긴 신용점수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되면서 금융회사들은 대출 심사 때 신평사 신용점수보다 내부 신용등급에 더 큰 가중치를 두고 있다. 대출 소비자로서는 신용점수가 같은데도 대출 금리와 한도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금리 인상기가 되면 이자 부담이 불어난 차주들의 연체가 늘면서 ‘한때 고신용자’들의 신용점수가 대거 급락하는 연쇄 부작용이 벌어질 수도 있다.

13일 신용평가회사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신용점수가 900점 이상인 사람은 1921만454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개인신용평가 대상자(4712만2339명)의 40.8%다. KCB에서도 2019년 말 기준 신용점수가 900점 이상인 사람은 1722만2200명으로 전체의 36.3%에 달했다. 2016년 1434만 명(31.9%)에서 해마다 100만 명씩 늘어난 결과다.

개인 40%가 '최상위'…신용점수 거품 심하다
신용점수는 개인의 채무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체계다. 과거 1~10등급 체계의 등급제에서 올해부터 점수제로 전환됐다. 등급제의 단점인 ‘절벽 효과’를 없애고 더 정교하게 리스크 평가를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등급제에서 지적돼온 ‘신용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심해지는 추세다. 배경에는 초저금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금리가 인하되면서 이자 부담이 줄어든 차주들의 연체율이 낮아진 게 신용점수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고신용자 중심의 신용대출 급증으로도 연결된다.

한국은행은 최근 펴낸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저금리 지속 등으로 차입 여건이 개선되면서 고신용자 수가 늘었다”며 “가계대출을 이용하는 차주 중 2016년 말 기준 저신용자의 5%, 중신용자의 22.8%가 올해 3월 말까지 고신용자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나이스평가정보 관계자는 “대부분의 차주가 연체를 거의 안 하기 때문에 상위 점수에 많이 몰려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신용 인플레’로 신용점수의 변별력과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미 대부분 은행은 외부 신평사의 신용점수를 대출 가부를 결정하는 컷오프 기준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세부적인 대출 금리·한도 등은 자체 신용평가 시스템을 통해 산정한 내부 등급에 따라 결정한다.

대출 소비자들이 높은 점수에 비해 은행에서 받는 금리가 높다고 느끼거나, 신용점수가 같은데도 실제 대출 조건에서는 격차를 겪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직장인 김모씨(33)는 “신용점수가 KCB 기준 949점인데도 신용대출 금리가 연 3% 후반대로 나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지인은 신용점수 1000점을 달성했는데도 ‘상위 3%’밖에 안 된다고 했다. 신용점수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상향 평준화됐던 개인 신용점수가 한꺼번에 무너져내릴 위험이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향후 금리 인상기에 연체가 늘어나면 금융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점수가 높은 구간의 차주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신용도 버블이 생기면 터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