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증권시장에서 13일 외국인이 2조7000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코스피지수가 1.16% 내린 3171.29로 마감했다. 이날 외국인은 피크아웃(고점 통과) 우려가 나오는 삼성전자를 2조3565억원어치 팔아치웠다. 코스닥시장도 영향을 받으며 1.26% 하락했다.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유가증권시장에서 13일 외국인이 2조7000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코스피지수가 1.16% 내린 3171.29로 마감했다. 이날 외국인은 피크아웃(고점 통과) 우려가 나오는 삼성전자를 2조3565억원어치 팔아치웠다. 코스닥시장도 영향을 받으며 1.26% 하락했다.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반도체 투자심리가 순식간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정점론’ 때문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13일 7만4400원까지 급락했다. SK하이닉스도 장중 심리적 저항선인 10만원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론이 직격탄을 맞고 6% 넘게 빠졌다. 지난주까지 시장을 지배했던 메모리 반도체 낙관론이 비관 모드로 전환된 이유를 정리했다.

(1) 왜 갑자기 고점 논란이 불거졌나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는 고정거래가격이다. 대형 거래처에 대규모로 반도체를 공급할 때 매기는 가격이다. D램익스체인지가 발표하는 DDR4 8Gb(기가비트) 기준 PC용 D램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말 2.85달러로 저점을 찍었다. 이후 줄곧 상승해 올 7월 말 4.1달러까지 올랐다. 재택근무로 PC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는 주춤했다. 하반기 코로나19 확산세가 잡히며 PC 수요가 꺾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실제 통상 고정거래가격보다 높게 거래되는 현물가격은 이번주 고정거래가격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발표한 전망이 방아쇠가 됐다. 지난 11일 올해 4분기 PC용 D램 고정거래가격이 전 분기 대비 0~5%가량 하락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PC용 D램은 전체 D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에 불과하다. 모바일(40%)과 서버(35%) 비중이 훨씬 더 크다. 트렌드포스는 4분기 모바일과 서버용 D램 고정거래가격은 직전 분기와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PC용 D램 가격 하락세가 모바일, 서버용 제품 가격 하락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해석했다.

(2) 외국인은 왜 이렇게 파나

이어 대형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이 목표주가를 끌어내렸다. 모건스탠리는 ‘메모리, 겨울이 오고 있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반도체 사이클이 정점에서 벗어났다”는 내용이었다. 모건스탠리는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종전 9만8000원에서 8만9000원으로, SK하이닉스는 15만6000원에서 8만원으로 낮췄다.

IB가 목표주가를 끌어내리자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외국인은 이번주 삼성전자를 5조6000억원, SK하이닉스를 2조원어치 순매도했다. 외환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외국인이 한국 반도체 투매에 나서면서 자금을 해외로 송금하자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공포가 더 커지는 ‘왝더독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3) 업황은 정말 고점을 찍었나

올초부터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대한 전망이 잇따라 나오다가 갑자기 고점 논란이 불거지자 투자자들은 당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D램 사이클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분석한다. 과거 상승과 하락 사이클은 각각 여섯 분기 정도였다. 이 사이클 기간이 짧아졌다. 지난해 상반기 상승했던 D램 가격이 하반기 하락세로 돌아섰다가 올해 상반기 다시 올랐다. 두 분기마다 사이클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클은 짧아지고, 공급 증가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SK하이닉스가 계획했던 투자를 예정대로 집행하겠다고 밝힌 것도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쳤다.

(4) 저가 매수 타이밍인가

주가가 급락하자 “지금이 반도체 매수 타이밍”이란 말이 증권가에서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D램 업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분석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서버와 모바일 D램 수요는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고, 차세대 규격인 DDR5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하면 공급 감소 효과로 내년 2분기에는 D램 수급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저가 매수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사이클을 막기 위해서는 공급 속도 조절이 필수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버 업체들의 주문 시점과 주문량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급사의 경쟁만 치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보유 순현금이 96조원에 달하는 만큼 더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