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수도 인근 도시서 경계 서는 탈레반 대원들. /사진=AP, 연합뉴스
아프간 수도 인근 도시서 경계 서는 탈레반 대원들. /사진=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군한 뒤 이슬람 수니파 무장정파 탈레반이 공세를 펼치며 수도 카불까지 위협하고 있다. 아프간 정부는 계속 항전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탈레반이 아프간 정규군보다 우세하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20년간 아프간 지역에 100조원 가량을 쏟아부은 미국도 체면을 구기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5월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시켜왔다. 9·11 테러 20주기인 올해 9월11일 전까지 아프간 철군을 완료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미군 철수가 시작되자 탈레반은 공세를 시작했다. 전날엔 아프가니스탄의 제2도시이자 탈레반이 결성된 곳인 남부 칸다하르를, 이날은 남부 헬만드주의 주도인 라슈카르를 각각 점령했다. 아프간 서부 최대 도시인 헤라트를 비롯해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주도 34곳 중 18곳이 탈레반에 장악됐다.

사실상 영토의 상당 부분을 탈레반에 빼앗긴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정부 정책의 완전한 실패에서 비롯됐다며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흐마드 지아 마소우드 전 아프간 부통령은 "책임이 있는 이들이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을 도입하는 이런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전 파키스탄 주재 아프간 대사인 오마르 자힐왈도 전날 트위터를 통해 "가니 대통령은 지난 7년 동안 아프간을 개인 영지처럼 통치했다"며 "가니는 평화를 위한 기회 소진과 국력의 빠른 위축의 주원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숫자 상으로는 아프간 정규군이 탈레반에 비해 우위를 점하지만, 오히려 탈레반이 우세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프간군 규모는 30만명 수준으로 집계돼 있지만, 숫자가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더해 정부 부패로 인해 사기도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탈레반의 병력 규모는 핵심 전투대원 6만명, 지역 부장단채 대원 9만명 등 모두 20만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미국 민간싱크탱크 CNA의 조너선 슈로든 박사는 지난 1월 미 육군사관학교 반테러리즘센터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탈레반이 아프간군보다 근소하게 우위에 있다고 평가하면서 특히 '결속력'에 주목했다.

지난 20년동안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도왔다는 미국도 체면을 구기게 됐다. 미국이 2005년 이후 올해 6월까지 ‘아프간군 기금(ASFF)’를 통해 지원한 자금은 750억2000만달러(약 87조6983억원)이며, 무기·장비 구입비와 훈련비까지 합치면 830억달러(약 97조270억원)가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3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분쟁은 매일 더 많은 민간인을 희생시킨다. 모든 당사자에게 민간인 수호라는 의무를 상기시키고자 한다”며 “탈레반은 즉각 공세를 멈추고 평화의 테이블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아프가니스탄은 통제 불능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여성과 아동의 희생을 우려하며 “아프간의 여성과 소녀들이 힘겹게 얻은 권리를 박탈당하는 건 소름 끼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엔은 모든 아프간 사람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고 생명을 구하는 인도주의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