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무리한 사세 확장으로 사라진 회사의 마지막 임원회의 얘기다. 오너가 말했다. “너희는 도대체 뭐 했냐? 회사가 이 꼴이 되도록 임원들은 밥만 축낸 거 아니냐? 내 확장 전략을 말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자 용감한(?) 임원이 이렇게 답했다. “회장님! 그런 충언을 한 사람을 회장님이 모두 퇴임시키지 않았습니까?”

또 다른 장면을 보자! 춘추전국시대는 영웅호걸이 권력을 다투는 동시에 다양한 학문과 철학이 경쟁한 시대이기도 하다. 당시 우리가 아는 현인들과 학파를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한다. 제자백가는 자기 사상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서로 경쟁했다. 이런 모습을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고 한다. 그 결과 많은 꽃이 한꺼번에 피는 모습과 같이 갖가지 학문과 예술, 사상이 함께 융성하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이 나타났고, 중화문명의 토대를 마련했다.

부도가 난 그 기업의 오너는 오직 자신만의 신념으로 조직을 이끌어서 자신뿐 아니라 종업원과 사회 전체에도 큰 손실을 입혔다.

상반된 두 사례지만 공통점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수용하는 마음과 사회적 분위기가 역사를 바꾼다는 것이다. 부도난 기업 임직원은 ‘이런 일을 해도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 사장이 싫어하겠지!’ 하고 스스로 자기 검열(self-censorship)을 했을 것이다. 자기 검열이 일상화되면 개인이나 조직은 점점 수축될 수밖에 없다. 생각의 폭이 좁아지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불투명해진다.

선진국의 사회적 특성으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를 많이 얘기한다.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는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과 다른 가치를 존중한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보장된다. 한국도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서면서 다양성에 대한 욕구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지속될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는 창의성이 핵심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창의성은 다양성이라는 기반 위에서 자란다. 개인 간 관계이건, 리더의 문제이건 다양성 기반의 창의적 문화로 미래와 싸워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집단지성이라는 말은 이런 문화가 기반이 된 열린 조직에서나 가능하다. 자기 검열이 상시화된 사회에서 창의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제자백가는 국민 모두이고, 백가쟁명은 다양성이 보장되는 자유로운 사회문화가 돼야 한다. 백화제방은 창조적 결과물이 돼야 한다. 행복한 미래는 사람들 각자 마음을 바꿀 때 다가온다. 그래서 미래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