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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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주52시간 근무제도' 도입 이후 일본인들의 일하는 시간이 116시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때문에 한때 서구 국가들로부터 '일개미'라는 조롱을 듣기도 했던 일본인들이 한국인보다 1년에 100시간 가량 적게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일본 총무성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2020년 근로자 1인당 평균 연간 근로시간은 1811시간으로 1년전보다 58시간 줄었다. 2017년 1925시간(전년비 -5시간), 2018년 1901시간(-26시간), 2019년 1869시간(-32시간)으로 매년 근로시간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 사업체 노동력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상용직 1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1인당 노동시간은 2020년 1917시간이었다. 2017년 1996시간에서 3년간 79시간 줄었다. 한국인의 일하는 시간도 2018년 1967시간, 2019년은 1957시간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일본인에 비해서는 점점 더 오래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주요 7개국(G7)의 근로시간도 지난해에는 모두 줄었다. 특히 도시봉쇄(록다운)가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170시간, 109시간씩 감소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을 포함해 3년 연속으로 노동시간이 두자릿수씩 감소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했다.

일본인들의 일하는 시간이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드는 건 일본 정부가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대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일하는 방식 개혁'의 효과라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과로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근로자가 끊이지 않자 2018년 잔업 시간을 규제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법을 제정하고 2019년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했다. 과로를 막기 위해 근로자의 잔업시간을 월 45시간, 연간 360시간 이내로 규제했다.

주 40시간인 기본 근무시간과 합하면 대략 주간 근무시간을 50~55시간으로 제한한 것이어서 일본판 주52시간 근무제로도 불린다. 다만 일본은 전문직 고소득자의 경우 노사가 합의하면 제한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이 가능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활동이 정체되고 재택근무가 확산하는 등 일하는 방식이 크게 변한 것도 지난해 근무시간이 크게 줄어든 원인으로 분석된다.

총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주 60시간 일한 근로자는 360만명으로 2017년보다 157만명 줄었다. 40~44세 근로자 층에서 30만명, 35~39세가 24만명, 45~49세는 21만명씩 주 60시간 이상 근로에서 해방됐다. 주 60시간 일한 남성 근로자는 297만명, 여성 근로자는 63만명으로 각각 137만명과 20만명이 줄었다.

올해는 경제활동이 일부 정상화하면서 근로시간이 소폭 늘어났다. 1~6월 월간 평균 근로시간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시간 늘었다. 현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근로시간은 지난해보다 13시간 늘어난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일본의 근로자의 보수는 3년간 3.8% 늘었다. 근로시간이 큰 폭으로 줄었지만 급여는 줄지 않았다는 의미다.

근로시간이 줄었지만 일하는 방식 개혁의 성공 여부는 이제부터라는 평가가 많다. 일본의 1인당 생산성이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일본 총리 직속 성장전략회의에 따르면 2019년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7만6000달러(약 8884만원)로 G7 꼴찌다. 1위 미국(13만3000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일본의 시간당 노동생산성도 44.6달러로 G7 꼴찌다. 미국은 76.8달러에 달했다.

2012~2019년 8년간 근로자 1인당 근무시간 감소와 생산성 향상을 종합한 노동생산성이 일본은 0.2% 늘어나는데 그쳤다. -0.2%의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역시 G7 최하위다. 미국은 1.0%, 프랑스와 캐나다는 0.9%에 달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