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서 전통음악의 길을 묻다…다큐 '상자루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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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전통과 창작 사이의 고민 담았죠"…제천국제음악영화제 초청작
전통은 지키는 것일까 발전시켜나가는 것일까.
전통음악을 전공한 젊은 음악가 3명의 고민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상자루의 길'이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한국 집시'를 표방하는 밴드 상자루. 상자루는 어떤 물건을 넣어도 네모반듯한 모양을 유지하는 전통이라는 '상자'와 내용물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창작이라는 '자루'를 합성해 만든 이름이다.
2018년 스물넷, 상자루의 멤버 권효창, 남성훈, 조성윤과 제4의 멤버인 박철우 감독이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함께 다니며 인연을 맺은 이들은 창작자이자 앞으로 먹고사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한 청년들이기도 했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박 감독은 "지금은 아니지만, 순례길을 떠날 당시에는 나도 상자루 멤버나 다름없었다.
홍보 영상을 촬영해 유튜브에도 올리고, 곡을 선정할 때도 의견을 냈었다"며 "서로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작업하던 시기여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당연히 넷이 함께 떠난다고 생각했다"고 여정에 동행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아쟁, 장구, 기타를 둘러매고 떠난 순례길에서 상자루는 스스로 묻는다.
전통 선율은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건가.
전통 음악도 당시에는 창작 음악이지 않았을까.
예전에 만들어진 음악을 정석처럼 그대로 연주해야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국악계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걸(전통이라는 틀을) 깨려고 시도를 해보려고 하는데, 그 틀에 갇혀서 잘 못 나오겠다 싶은 부분도 있고, 어디까지가 전통이고 어디까지를 창작으로 봐야 하는지…", "듣기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건데 억지로 12음계에 맞춰서 음을 내는 선율은 과연 즐겁다고 할 수 있나" 등 상자루는 산티아고 길목에서 '상자루 타령', '경북 스윙'의 곡을 쓰며 치열하게 논쟁한다.
박 감독은 "상자루는 밴드 이름에서부터 전통과 창작을 잘 융합해보자는 의도가 담겨있으니 이 부분을 좀 더 명확히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다"며 "사실 고민하지 않아도 음악은 만들 수는 있는데, 단순히 전통악기를 사용하는 음악으로 남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여 간 순례길을 걸으면서 상자루는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었을까.
영화 후반부 "상자라고 생각했던 전통의 모양은 유연하게 흩어지고, 우리가 생각하는 모양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라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박 감독은 상자루는 현재 전통의 형태를 규정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잡고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자루의 음악이 전통의 틀에 맞는지 아닌지 구분하기보다는 '한국 음악'으로서 인정받았으면 해요.
국악계에서 상자루처럼 음악을 하는 팀은 별로 없어요.
새로운 시도들이 무시당하기도 하죠. 전통을 그대로 잘 유지하고 이어가는 건 기술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상자루는 음악가잖아요.
그러면서 전통도 존중하고 싶어하고요.
"
실제 순례길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상자루의 음악을 전통음악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들어줬다.
비현실적인 자연 풍광 속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상자루에게 어떤 이는 음악이 재즈 같다고 했고, 어떤 이는 처음 보는 악기를 신기해하며 그림을 그려가기도 했다.
마을에 도착해 버스킹을 할 때면 멤버들에게 와인을 한 잔씩 돌리는 이도 있었고, 꽃다발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박 감독은 "순례자들은 음악이 어떤지 평가한다기보다는 '오늘 하루 중에 음악을 들을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귀를 열었다.
온전히 음악으로 봐준 게 좋았다"며 "순례자 중에 연주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마을에 도착하면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숙소도 레스토랑도 생겨났다.
걷는 데 많은 힘이 됐다"고 말했다.
악기와 카메라를 짊어지고 800㎞를 걷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짐은 대략 15∼18㎏ 정도였지만, 사람 키만큼 큰 아쟁이나 등에 닿는 부분까지도 둥근 장구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일은 고됐다.
잔뜩 물집이 잡힌 발을 숙소에서 우연히 만난 의사인 순례자가 치료해주기도 했다.
곡 작업을 하며 똑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쳐대는 꽹과리 소리에 박 감독과 권효창은 결국 싸우고 하루 동안 각기 걸었다고 했다.
그렇게 힘들게 순례길을 정복한 이들은 포르투갈에서 한 달간 버스킹으로 생계를 꾸리기도 했다.
예상보다 순례길 여정이 일찍 끝났는데 비행기 티켓 날짜가 바꾸기에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버스킹 수입은 적은 날은 2만원, 잘 버는 날은 5만∼6만원. 생계 수단이 된 버스킹은 순례길에서 즐기던 것과는 달랐다.
포르투갈 생활이 비참했다는 박 감독은 "하루를 살기 위해 나가서 공연하면 동전을 받는데, 음악이 돈으로 환산되는 게 정말 이상했다.
다들 영혼 없이 공연하고, 영혼 없는 돈을 받았다"며 "영화를 통해 더 먼 곳까지도 보고 싶었다.
순례길에서 겪는 어려움도 큰 문제였지만, 우리가 앞으로도 작업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지를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를 영화 후반부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현재 상자루는 남양주에 함께 살면서 음악을 계속하고 있다.
국악을 재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공연 스케줄도 점차 늘고 있다.
'상자루의 길'이 한국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린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도 공연한다.
"모두가 길을 걷잖아요.
산다는 건 길을 걷는 것 같아요.
그 길에서 누군가랑 같이 걷고 싶기도 하고, 내가 걷고 싶지 길인지 모를 때도 있고요.
어려움의 연속인데, 그 길에 용기가 되고, 위로되는 작품이 됐으면 해요.
"
영화는 오는 17일까지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기간에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웨이브에서 관람할 수 있다.
16일에는 메가박스 제천에서도 한차례 상영된다.
/연합뉴스
전통은 지키는 것일까 발전시켜나가는 것일까.
전통음악을 전공한 젊은 음악가 3명의 고민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상자루의 길'이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한국 집시'를 표방하는 밴드 상자루. 상자루는 어떤 물건을 넣어도 네모반듯한 모양을 유지하는 전통이라는 '상자'와 내용물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창작이라는 '자루'를 합성해 만든 이름이다.
2018년 스물넷, 상자루의 멤버 권효창, 남성훈, 조성윤과 제4의 멤버인 박철우 감독이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함께 다니며 인연을 맺은 이들은 창작자이자 앞으로 먹고사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한 청년들이기도 했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박 감독은 "지금은 아니지만, 순례길을 떠날 당시에는 나도 상자루 멤버나 다름없었다.
홍보 영상을 촬영해 유튜브에도 올리고, 곡을 선정할 때도 의견을 냈었다"며 "서로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작업하던 시기여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당연히 넷이 함께 떠난다고 생각했다"고 여정에 동행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아쟁, 장구, 기타를 둘러매고 떠난 순례길에서 상자루는 스스로 묻는다.
전통 선율은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건가.
전통 음악도 당시에는 창작 음악이지 않았을까.
예전에 만들어진 음악을 정석처럼 그대로 연주해야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국악계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걸(전통이라는 틀을) 깨려고 시도를 해보려고 하는데, 그 틀에 갇혀서 잘 못 나오겠다 싶은 부분도 있고, 어디까지가 전통이고 어디까지를 창작으로 봐야 하는지…", "듣기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건데 억지로 12음계에 맞춰서 음을 내는 선율은 과연 즐겁다고 할 수 있나" 등 상자루는 산티아고 길목에서 '상자루 타령', '경북 스윙'의 곡을 쓰며 치열하게 논쟁한다.
박 감독은 "상자루는 밴드 이름에서부터 전통과 창작을 잘 융합해보자는 의도가 담겨있으니 이 부분을 좀 더 명확히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다"며 "사실 고민하지 않아도 음악은 만들 수는 있는데, 단순히 전통악기를 사용하는 음악으로 남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여 간 순례길을 걸으면서 상자루는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었을까.
영화 후반부 "상자라고 생각했던 전통의 모양은 유연하게 흩어지고, 우리가 생각하는 모양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라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박 감독은 상자루는 현재 전통의 형태를 규정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잡고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자루의 음악이 전통의 틀에 맞는지 아닌지 구분하기보다는 '한국 음악'으로서 인정받았으면 해요.
국악계에서 상자루처럼 음악을 하는 팀은 별로 없어요.
새로운 시도들이 무시당하기도 하죠. 전통을 그대로 잘 유지하고 이어가는 건 기술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상자루는 음악가잖아요.
그러면서 전통도 존중하고 싶어하고요.
"
실제 순례길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상자루의 음악을 전통음악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들어줬다.
비현실적인 자연 풍광 속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상자루에게 어떤 이는 음악이 재즈 같다고 했고, 어떤 이는 처음 보는 악기를 신기해하며 그림을 그려가기도 했다.
마을에 도착해 버스킹을 할 때면 멤버들에게 와인을 한 잔씩 돌리는 이도 있었고, 꽃다발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박 감독은 "순례자들은 음악이 어떤지 평가한다기보다는 '오늘 하루 중에 음악을 들을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귀를 열었다.
온전히 음악으로 봐준 게 좋았다"며 "순례자 중에 연주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마을에 도착하면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숙소도 레스토랑도 생겨났다.
걷는 데 많은 힘이 됐다"고 말했다.
악기와 카메라를 짊어지고 800㎞를 걷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짐은 대략 15∼18㎏ 정도였지만, 사람 키만큼 큰 아쟁이나 등에 닿는 부분까지도 둥근 장구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일은 고됐다.
잔뜩 물집이 잡힌 발을 숙소에서 우연히 만난 의사인 순례자가 치료해주기도 했다.
곡 작업을 하며 똑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쳐대는 꽹과리 소리에 박 감독과 권효창은 결국 싸우고 하루 동안 각기 걸었다고 했다.
그렇게 힘들게 순례길을 정복한 이들은 포르투갈에서 한 달간 버스킹으로 생계를 꾸리기도 했다.
예상보다 순례길 여정이 일찍 끝났는데 비행기 티켓 날짜가 바꾸기에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버스킹 수입은 적은 날은 2만원, 잘 버는 날은 5만∼6만원. 생계 수단이 된 버스킹은 순례길에서 즐기던 것과는 달랐다.
포르투갈 생활이 비참했다는 박 감독은 "하루를 살기 위해 나가서 공연하면 동전을 받는데, 음악이 돈으로 환산되는 게 정말 이상했다.
다들 영혼 없이 공연하고, 영혼 없는 돈을 받았다"며 "영화를 통해 더 먼 곳까지도 보고 싶었다.
순례길에서 겪는 어려움도 큰 문제였지만, 우리가 앞으로도 작업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지를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를 영화 후반부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현재 상자루는 남양주에 함께 살면서 음악을 계속하고 있다.
국악을 재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공연 스케줄도 점차 늘고 있다.
'상자루의 길'이 한국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린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도 공연한다.
"모두가 길을 걷잖아요.
산다는 건 길을 걷는 것 같아요.
그 길에서 누군가랑 같이 걷고 싶기도 하고, 내가 걷고 싶지 길인지 모를 때도 있고요.
어려움의 연속인데, 그 길에 용기가 되고, 위로되는 작품이 됐으면 해요.
"
영화는 오는 17일까지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기간에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웨이브에서 관람할 수 있다.
16일에는 메가박스 제천에서도 한차례 상영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