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의 제자백가] 중원(中原)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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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침입과 수마에 시달려온 하남성
현대에도 지역혐오·차별 굴레 못벗어
고난 상징 아닌 선망의 땅 될 수 있을까
임건순 < 동양철학자·‘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저자 >
현대에도 지역혐오·차별 굴레 못벗어
고난 상징 아닌 선망의 땅 될 수 있을까
임건순 < 동양철학자·‘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저자 >
“영원히 강한 나라도 영원히 약한 나라도 없다(國無常, 無常弱).”
중원이 난리다. 홍수로 숱한 사람이 죽고 다쳤다. 하남성 정주에서 수마(水魔)로 인한 대형 인명사고도 있었는데 낙양과 개봉, 허창과 정주 등 이런 고도를 품은 하남성은 본래 중원이라고 불리는 땅이었다. 그 중원이 낳은 사상가 중 하나가 위와 같은 말을 한 것이었는데, 그 중원은 본래 중원이라는 이름답게 문명이 시작된 곳이고 노른자위 땅이었다. 그랬기에 중국 100년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에 가고, 500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에, 3000년 역사를 보려면 시안에 가야 한다. 그러나 5000년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하남에 가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문명이 시작돼 꽃핀 지역, 은으로 대표되는 중국 역사가 시작된 땅, 늘 천하의 중심이었기에 강자들이 선망하던 땅이었다. 그래서 이 선망의 땅은 고난의 땅이 됐다. 사방의 힘들이 맞부딪치는 각축장(角逐場)이 되고 말았다. 춘추(春秋)시대 때 정(鄭)의 사정이 늘 그러했고 전국시대 한(韓)의 운명이 그러했다. 정의 정치가이자 사상가 자산은 “정나라는 앞으로 나가도 뒤로 물러나도 죄가 된다”고 한탄했는데 그는 두 가지를 국정 노선의 대원칙으로 천명했다. 먼저 폐기외(閉其外). 밖에 있는 강대국들에 맞서 자신을 지키자는 것으로 국방과 외교 모두 단단히 하자는 것이다. 둘째 수기내(守其內). 안으로 질서를 잡자는 것이다. 법으로 명확히 질서를 잡아 내부의 힘을 어떻게든 철저히 조직하자는 것이다.
폐기외와 수기내는 주체적 선택이 아니라 험악한 환경이 강요하다시피 한 생존의 노선인데 자산의 대원칙을 보면 어찌하여 이 땅에서 유세의 달인들이 나왔고 법가 사상가들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합종연횡의 소진과 장의도 중원이 고향이고 상앙, 오기, 한비자와 같은 법가 모두 중원이 낳은 인물이다. 법가들은 법으로 국가의 힘을 유기적으로 조직해내 강국의 길을 가보자고 했는데 고난 속에서도 그들은 웅비하는 꿈을 꾼 것이다. 특히 한비자는 “영원히 강한 나라도 영원히 약한 나라도 없다”고 말했는데 지금 한이 외세에 의해서 치이며 고통을 겪고 있지만 법치를 통해 내실을 다지면 언제든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동포들에게 당부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한은 진(秦)에 의해서 가장 먼저 합병당하고 말았는데 이렇게 중원은 늘 고난의 땅이었다.
법가 사상의 대표자인 상앙과 한비자의 텍스트를 보면 유난히 ‘반드시 필(必)’이라는 글자가 많이 등장한다. 상앙의 텍스트 《상군서(商君書)》에는 176번, 한비자의 텍스트 《한비자》에는 555번이나 나온다. ‘반드시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정치의 방법’ ‘반드시 나라가 부유해지게 하는 국가행정’ 등을 늘 고민할 수밖에 없다 보니 그들의 글에 자연히 ‘반드시(必)’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대외적 압력과 침략 못지않게 이 땅은 늘 수마가 괴롭힌 땅이기도 하다. 중원을 가로지르는 황하의 범람이 주기적으로 있었다. 그리고 외적의 침입 때 극단적 자위 수단으로 일부러 둑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이번에도 대홍수가 있었는데 수마로 인한 해는 중원 사람들의 운명인 것일까?
외부의 힘, 수마만이 아니라 지독한 지역혐오와 차별의 대상이기도 한 게 하남성인들의 굴레이기도 하다. 문명이 시작됐다지만 현대 중국에서는 지독히 가난하고 인구가 매우 많은 곳이 하남성이다. 가난한 하남인들은 외지로 나가 밑바닥에서 험한 일을 하면서 늘 부대낀 채 살아야 했는데 하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 제한을 당하는 일도 많다. 그들의 운명은 예전부터 참 모질다 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일로 한국인들에게 반중 감정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 문화유산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일을 비롯해 사드 사태부터 이어진 경제보복과 우리 주권적 영역에 대한 간섭과 침범 등 갈수록 중국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심해져 간다. 하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공산당과 중국을 분리해 볼 수 있어야 하고, 공산당과 중국공민 역시 분리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중국에 거리를 두고 냉정한 자세로 마주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반중의식이 인종차별적 혐오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고.
중원이 난리다. 홍수로 숱한 사람이 죽고 다쳤다. 하남성 정주에서 수마(水魔)로 인한 대형 인명사고도 있었는데 낙양과 개봉, 허창과 정주 등 이런 고도를 품은 하남성은 본래 중원이라고 불리는 땅이었다. 그 중원이 낳은 사상가 중 하나가 위와 같은 말을 한 것이었는데, 그 중원은 본래 중원이라는 이름답게 문명이 시작된 곳이고 노른자위 땅이었다. 그랬기에 중국 100년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에 가고, 500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에, 3000년 역사를 보려면 시안에 가야 한다. 그러나 5000년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하남에 가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문명이 시작돼 꽃핀 지역, 은으로 대표되는 중국 역사가 시작된 땅, 늘 천하의 중심이었기에 강자들이 선망하던 땅이었다. 그래서 이 선망의 땅은 고난의 땅이 됐다. 사방의 힘들이 맞부딪치는 각축장(角逐場)이 되고 말았다. 춘추(春秋)시대 때 정(鄭)의 사정이 늘 그러했고 전국시대 한(韓)의 운명이 그러했다. 정의 정치가이자 사상가 자산은 “정나라는 앞으로 나가도 뒤로 물러나도 죄가 된다”고 한탄했는데 그는 두 가지를 국정 노선의 대원칙으로 천명했다. 먼저 폐기외(閉其外). 밖에 있는 강대국들에 맞서 자신을 지키자는 것으로 국방과 외교 모두 단단히 하자는 것이다. 둘째 수기내(守其內). 안으로 질서를 잡자는 것이다. 법으로 명확히 질서를 잡아 내부의 힘을 어떻게든 철저히 조직하자는 것이다.
폐기외와 수기내는 주체적 선택이 아니라 험악한 환경이 강요하다시피 한 생존의 노선인데 자산의 대원칙을 보면 어찌하여 이 땅에서 유세의 달인들이 나왔고 법가 사상가들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합종연횡의 소진과 장의도 중원이 고향이고 상앙, 오기, 한비자와 같은 법가 모두 중원이 낳은 인물이다. 법가들은 법으로 국가의 힘을 유기적으로 조직해내 강국의 길을 가보자고 했는데 고난 속에서도 그들은 웅비하는 꿈을 꾼 것이다. 특히 한비자는 “영원히 강한 나라도 영원히 약한 나라도 없다”고 말했는데 지금 한이 외세에 의해서 치이며 고통을 겪고 있지만 법치를 통해 내실을 다지면 언제든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동포들에게 당부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한은 진(秦)에 의해서 가장 먼저 합병당하고 말았는데 이렇게 중원은 늘 고난의 땅이었다.
법가 사상의 대표자인 상앙과 한비자의 텍스트를 보면 유난히 ‘반드시 필(必)’이라는 글자가 많이 등장한다. 상앙의 텍스트 《상군서(商君書)》에는 176번, 한비자의 텍스트 《한비자》에는 555번이나 나온다. ‘반드시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정치의 방법’ ‘반드시 나라가 부유해지게 하는 국가행정’ 등을 늘 고민할 수밖에 없다 보니 그들의 글에 자연히 ‘반드시(必)’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대외적 압력과 침략 못지않게 이 땅은 늘 수마가 괴롭힌 땅이기도 하다. 중원을 가로지르는 황하의 범람이 주기적으로 있었다. 그리고 외적의 침입 때 극단적 자위 수단으로 일부러 둑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이번에도 대홍수가 있었는데 수마로 인한 해는 중원 사람들의 운명인 것일까?
외부의 힘, 수마만이 아니라 지독한 지역혐오와 차별의 대상이기도 한 게 하남성인들의 굴레이기도 하다. 문명이 시작됐다지만 현대 중국에서는 지독히 가난하고 인구가 매우 많은 곳이 하남성이다. 가난한 하남인들은 외지로 나가 밑바닥에서 험한 일을 하면서 늘 부대낀 채 살아야 했는데 하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 제한을 당하는 일도 많다. 그들의 운명은 예전부터 참 모질다 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일로 한국인들에게 반중 감정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 문화유산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일을 비롯해 사드 사태부터 이어진 경제보복과 우리 주권적 영역에 대한 간섭과 침범 등 갈수록 중국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심해져 간다. 하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공산당과 중국을 분리해 볼 수 있어야 하고, 공산당과 중국공민 역시 분리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중국에 거리를 두고 냉정한 자세로 마주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반중의식이 인종차별적 혐오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