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테크(tech) 기업들이 재택근무 중인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 시점'을 오는 10월에서 내년 1월 이후로 연기하고 있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코로나19 '델타 변이'가 확산하고 있는 영향이 큽니다. 대다수 테크기업 직원들은 "재택근무의 업무 효율성이 훨씬 높다"며 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리자급 사이에선 "재택근무를 하면 직원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아마존과 페이스북, 사무실 복귀 '내년 1월'로 연기

이달 초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사무실 출근 재개 시점을 당초 계획(9월)보다 4개월 늦춘 내년 1월로 연기했는데요. 페이스북도 오는 10월로 예정했던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 시기를 내년 1월로 늦췄습니다. 페이스북은 코로나19 델타변이 확산 상황을 고려해 미국 내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를 미루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차량공유업체 리프트도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를 내년 2월로 정했습니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10월로 예정된 사무실 복귀 시점을 내년초로 연기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11월 넷째주 목요일부터 시작되는 추수감사절 연휴 영향이 크다고 합니다. 미국 직장인들은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수감사절 연휴에 맞춰 고향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복귀하는데, 이 때 코로나19가 사무실에서 빠르게 확산될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재택근무 업무 효율 높아...직장맘 만족도 높아

테크 기업들이 사무실 복귀 시점을 연기하자 직원들 사이에선 '잘됐다'란 반응이 나옵니다. 한 유명 실리콘밸리 테크기업의 직원 A씨는 "재택근무의 업무 효율성이 사무실 근무보다 훨씬 높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사무실에 출근해 동료들을 마주치다보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등 업무와 무관하게 써야하는 시간들이 생긴다"며 "재택근무를 하면 온전히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집에선 쉴 때 확실히 쉴 수 있다는 것도 재택근무의 장점으로 들었습니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보통 책상 앞에 앉아서 쉬는데 집에선 '30분', '한 시간' 정해놓고 침대에 누워 확실하게 체력을 보충하고, 이후에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겁니다.

현지 테크기업 직원 B씨는 "재택근무가 시행된 이후 직원들 사이에서 '월요병'을 이야기를 한 번도 못 들어봤다"고 합니다. 과거엔 예를 들어 일주일 5~6일 일하고 주말에 하루나 이틀 정도 쉬면 '월요일 출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출근 자체가 없어지니 월요일이 딱히 힘들지 않다는 겁니다. B씨는 "코로나19 이전엔 업무 100을 5로 나눠 하고 이틀은 쉬었다면 지금은 100을 7로 분배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 받는 부담감이 작다"며 "출퇴근 때문에 매일 한 시간 길에서 허비했던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특히 재택근무에 대한 만족감이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빅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한 여성 직원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게 가능하다"며 "근무 시간 중에 아이들을 돌보는 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만 부부가 나눠서 함께 하기 때문에 큰 부담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관리자급은 "재택근무 이후 일 많아졌다" 불만

이렇게 직원들은 '재택근무의 장점'을 이야기하는데, 왜 기업들은 '사무실 복귀'를 계속 주장할까요. 팀장급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복귀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장 큰 게 '직원 관리'의 어려움입니다. 한 빅테크기업 직원의 이야기입니다. "수십명의 직원들을 관리하는 매니저급 직원들은 오히려 재택근무가 시행되면서 일이 더 늘었어요.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업무는 변한 게 없는데 직원들 한 명 한 명을 개별적으로 케어해야하거든요. 직원들이 사무실에 나오면 함께 회의를 하면서 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죠. 주변 매니저급은 '차라리 사무실 근무가 이른 시점에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요."

주요 기업의 대표(CEO) 등 'C레벨'들도 '사무실 복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던 올 상반기부터 지속적으로 비슷한 의견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대표는 지난 3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재택근무의 장점을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며 "대면 접촉 없는 근무는 우리에게 부정적"이라고 말했고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대표도 비슷한 시기 "직접 만나 회의를 하면 만남 전후 다양한 대화를 통해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고 오랜 재택근무는 직원들의 정신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사무실 복귀를 은근하게 종용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당연히 C레벨 들의 발언을 들은 직원들의 반발이 거세졌죠. 이 때문에 당분간 미국 기업들은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통해 직원들의 반발을 차단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하이브리드 근무제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사무실로 나오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리모트(원격) 근무가 대세 될 것"

하지만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사그라든 건 아닙니다. 애플의 사례를 보면요, 팀 쿡 애플 CEO는 지난 6월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하이브리드 근무제 도입을 알렸는데요, 오는 9월부터 주 5일 가운데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은 회사에 출근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날로 지정하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위에서 말씀드린대로 델타변이 확산 영향으로 사무실 복귀 시점은 미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대해 직원들이 "출근 요일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보다는 부서별 사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자"는 대안을 냈지만 회사는 "애플의 문화와 애플의 미래를 위해 대면 근무는 필수라고 믿는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완전 재택근무'를 원하는 직원들의 목소리도 여전히 강합니다. 재택근무가 1년 이상 지속되면서 일부 임직원들이 렌트비나 집 값이 비싼 실리콘밸리를 떠나 근교 도시 등으로 많이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한 자동차 기업 직원은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직장에서 차로 한 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도시에 집을 아예 사버렸다"며 "회사가 사무실 근무를 강요한다면 적지 않은 직원들이 회사를 옮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의 실리콘밸리·한국 신산업 관련 뉴스레터 한경 엣지(EDGE)를 만나보세요!
▶무료 구독하기 hankyung.com/newsletter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