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럭만큼도 병통(病痛)이 들지 않은 곳이 없는 바 지금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1817년 유배지 전남 강진에서 쓴 《경세유표(經世遺表)》 서문의 일부다. 다산은 조선이 국제사회 변화의 격랑 속에 대응하지 못하고 소모적 당쟁에만 매몰돼 서서히 무너져가는 것을 한탄하고 정치·사회·경제 제도 개혁을 통한 부국강병책을 임금에게 올렸다. 책은 문생들에게 전달됐으나 집권 노론의 방해로 임금 손에 닿지 못했다. 조선은 그 후로도 망국의 길을 피하지 못한 채 1910년 변변한 전투 한 번 없이 허망하게 일본에 합병됐다.

한번도 경험 못한 총체적 난국

갑자기 다산을 언급한 게 다소 뜬금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주위에 다산을 언급하는 분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이 ‘병통이 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는 아닐지라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총체적 난국의 길로 가고 있다는 우려다. 사실 지난 4년 반 동안 오른 건 집값과 세금·실업률·빚뿐이요 곤두박질친 것은 성장률과 출산율이었다. 또 공정과 상식·정의, 군(軍) 기강이 망가졌고 세대 간·진영 간 소통과 주변 4강과의 외교는 단절된 지 오래다. 경제·외교·안보·사회 등 나라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잘한 게 있으면 반박하기도 좋으련만, 현 정부는 그러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자랑해 온 K방역은 좁쌀만 한 성과에 취해 백신 확보 시기를 놓침으로써 국민적 원성과 국제적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얼마 전 ‘전 세계의 본보기’라고 자랑한 문재인 케어도 실상은 득달같이 오른 건강보험료와 매년 누적돼 온 건보 재정적자를 숨기고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국가경쟁력이 그사이 29위에서 23위로 올랐다고는 하나, 정부 효율성 부문에서 까먹은 점수(27위→34위)가 아니었다면 아마 훨씬 더 올랐을 것이다.

진작 염치와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민심이 이 지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끝없는 내로남불·패거리 정치와 부동산 실정(失政)에 지지 기반이던 참여연대와 경실련까지 등을 돌렸고, 현 정권에 몸담았던 검찰총장, 감사원장도 ‘정권 교체’를 외치며 대선판에 뛰어든 터다. 아직도 할 말이 있을까 싶은데 이럴 때 내세우는 게 대통령 지지율 40%다. 그러나 “여론 조작에 능하고, 결집력이 강한 대통령 강성 지지층이 여론 조사에 개입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는 걸 현 정권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미래 책임질 리더십 선택해야

이제 급선무는 망가지고 훼손된 성장과 안보의 기틀, 사회적 유대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년 대선을 반년여 앞두고 걱정부터 앞서는 게 현실이다. 집권 여당 후보들 사이에선 ‘퍼주기 시즌2’식 현금살포 공약 경쟁이 한창이다. 개인의 택지소유 한도 지정 등의 초(超)헌법·반(反)시장적 부동산 규제 공약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를 견제해야 할 야당에서조차 ‘공정소득’ 등 그럴듯한 이름으로 현금살포 공약을 슬그머니 내놓는 상황이다. 공약다운 공약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렵다.

오는 22일로 한·일 합방 조약 체결 111년이 된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는 역저 《한국의 시간: 제2차 대분기 경제패권의 대이동》에서 “우리는 현재 ‘지배할 것인가’ 아니면 ‘또 지배당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에 와 있다”고 역설했다. 해방 후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 헤아릴 수 없는 피와 땀, 노력이 투입됐으나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일 것이라는 경고다. 어렵더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나라에 도움이 될 리더십을 꼼꼼하게 골라내는 게 유권자들의 의무이자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