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公이 카타르 LNG 1조 싸게 계약한 결정적 이유는
한국가스공사는 최근 카타르 국영 석유회사인 카타르페트롤리엄과 2025년부터 2044년까지 200만t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장기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카타르와 맺은 490만t 규모 LNG 장기 도입 계약이 2024년 종료되는 데 따른 조치다.

이 계약은 가스공사가 향후 20년간 LNG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발판 역할을 할 전망이다. 특히 기존 LNG 장기 도입 계약보다 도입 단가를 약 34% 낮춘 파격적인 계약 결과를 이끌어내 국내외 가스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비용 절감 액수는 20년간 총 10억달러(17일 기준 약 1조17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가스공사가 무려 1조원이 넘는 비용을 줄인 배경에는 카타르와 장기간 맺어온 긴밀한 파트너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카타르는 연간 1억t이 넘는 LNG를 생산하고 있고, 가스공사는 연간 3300만t 이상 LNG를 수입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구매자다. 가스공사는 1995년 카타르와 첫 LNG 장기 도입 계약을 맺은 뒤 현재 연간 900만t의 LNG를 카타르에서 사들이고 있다.

가스공사와 카타르의 협업 관계는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도 빛을 발했다. 작년 3월 셰리다 알카비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 겸 카타르페트롤리엄 사장은 친분이 있는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사진)에게 전화를 걸어 “코로나19 진단키트를 구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문의했다. 한국의 코로나19 진단키트 생산능력과 한국산 진단키트의 우수한 성능을 고려한 긴급 협조 요청이었다. 당시 카타르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에도 진단키트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채 사장은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진단키트 확보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바이오협회에 협조를 구하고 관련 업체를 수소문했다. 그는 직접 국내 진단키트 제조업체인 바이오니아 대전 본사를 방문해 공급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카타르는 50억원 규모의 국산 진단키트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알카비 장관은 채 사장에게 “어려울 때 도울 수 있는 든든한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감사 인사를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회는 곧 찾아왔다. 가스공사와 카타르는 2019년 맺은 LNG 장기 도입 가격을 조정하는 협상을 올초부터 진행하면서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카타르 협상 실무팀은 “가격을 깎아줄 이유가 없다”며 강하게 맞섰다.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때 채 사장이 알카비 장관과 직접 담판에 나섰다. LNG 가격 상승이 한국 에너지 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고, 앞으로 카타르와 진행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도 냈다. 이에 알카비 장관은 LNG 수출 가격을 대폭 인하하는 가격 재협상을 전격 승인했다. 가스공사는 이번 가격 재협상을 기준 삼아 주요 LNG 수출국과 약 1300만t 물량의 가격 재협상도 추진하고 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카타르와의 우호적 관계가 다른 국가와의 가격 협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