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무대에서 우승하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브린 터펠이 배출됐던 경연이었으니까요. 한국인 최초 우승자라는 점도 의미가 깊죠."

지난 6월 영국 BBC 카디프 성악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아리아 부문)한 바리톤 김기훈(30)은 우승 소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마리아칼라스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리에서였다. 1983년 시작한 카디프 콩쿠르는 브린 터펠, 드미트리 흐보로스톱키 등 세계적인 바리톤을 우승자로 내놓은 대회로 명성이 높다.

감회가 새로울만 했다. 김기훈에겐 '만년 2위'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어서다. 그는 카디프 콩쿠르에 나서기 전인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다. 같은해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한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도 2위에 올랐다.

약이 오를만 했다. 그가 지닌 실력에 비해 결과가 아쉽게 나와서다. 그는 "아쉽긴 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때는 주최측에서 '왜 김기훈이 우승자가 아니냐'고 항변할 정도였다. 관객들이 야유를 보내는 민망한 상황도 연출됐다"라며 "2등이란 이미지가 굳혀질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카디프 콩쿠르에서 우승해보자는 마음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김기훈은 콩쿠르를 또 나가지 않아도 될만큼 실력을 입증한 상태였다. 지휘계의 '차르(황제)'라 불리는 발레리 게르기에프는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끝난 후 김기훈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마린스키 극장의 전속 성악가가 되어달라는 요청이었다. 고민 끝에 김기훈은 거절했다.

"게르기에프가 저를 세계적인 소프라노 안나 넵트레코처럼 키워주겠다고 했지만 당시엔 해외 공연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있었어요. 글라인드본 페스티벌, 워싱턴극장 공연 등이요.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죠. 코로나19로 모두 취소됐지만, 카디프 콩쿠르 우승으로 다시 기회를 얻게 됐죠."

하지만 무대에 선 그는 심사위원들의 표정을 보고선 위축됐다. 그가 바라본 심사위원들은 뚱한 표정에 턱을 괴고 있었다. 어두운 표정을 본 김기훈은 자신이 탈락한 줄만 알고 있었다. 우승자 발표 순간 호명된 이름은 '사우스 코리아, 기훈 김'이었다.

"콩쿠르가 끝난 후 호텔에서 심사위원이 제 노래를 듣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믿기지 않았죠. 객관성에도 어긋나고, 편파적이란 비판이 나올 수 있으니깐요."

눈물을 지은 주인공은 소프라노 로버타 알렉산더였다. 그를 포함해 영국 클래식계에서 김기훈에 대해 호평이 쏟아졌다. 그의 목소리를 두고 '현상(Phenomenon)'이라고 극찬을 한 비평가도 있었다.

다음달 4일 세계가 감동한 그의 목소리가 서울 예술의전당을 채운다. 그는 우승 기념 리사이틀열고 에리히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를 비롯해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요 아리아 등을 들려준다. 소프라노 서선영과 테너 강요셉이 찬조 출연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