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인 시세조작에 가짜 명품몰까지 운영
역대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 다단계 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암호화폐거래소 브이글로벌 운영진이 쇼핑몰, 명품 매장 등을 가짜로 만들어 피해자를 모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자체 발행 코인인 ‘브이캐시’를 쇼핑몰과 명품매장 등에서 쓸 수 있다”고 홍보하며 피해자 9만여 명에게 3조6000억원가량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다단계 사기 수법이 총 동원된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섯 명 역할 나눠 사기 판매

[단독]  코인 시세조작에 가짜 명품몰까지 운영
18일 한국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브이글로벌 대표 이모씨(31) 등 임직원 여섯 명은 각자 역할을 나눠 암호화폐 다단계 사기 판매에 가담했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법, 방문판매업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과거 암호화폐거래소 운영사인 A사에서 일하던 동료였다. 그러다 지난해 5월 다단계 판매업자인 백모씨를 만나 이번 범죄를 모의했다.

이번 범죄를 총괄한 인물은 브이글로벌 대표인 이씨다. 그는 지난해 7월 암호화폐거래소 브이글로벌을 개설한 뒤 이번 범죄를 주도했다. “암호화폐거래소에 최소 600만원을 넣고 계좌를 개설하면 단기간에 투자금의 세 배인 1800만원을 되돌려준다”며 투자자를 모았다.

이들은 브이캐시가 정상적인 코인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시세 조작 및 허위 정보를 유포했다. 이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임직원 허모씨는 브이캐시로 물품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속이기 위해 ‘V4U’란 쇼핑몰을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브이글로벌 자회사인 ‘브이에이치’를 설립해 브이캐시를 발행·운영했다. 이들은 또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 명품 매장을 개설해 “브이캐시로 명품을 살 수 있다”며 피해자를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브이글로벌 거래소가 정상 운영되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시세 조작에 가담한 정황도 드러났다. 임직원 이모씨는 피해자에게 받은 돈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을 매수한 뒤 매수와 매도를 반복해 다른 거래소와 비슷한 시세를 유지하도록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이 업무를 전담하기 위해 암호화폐 거래를 주관하는 주식회사 ‘브이앤엘’을 직접 설립해 운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임직원 최모씨는 브이캐시 한 개가 1원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매수와 매도를 반복했다. 그는 브이글로벌 관련 홍보자료를 작성하고 법인계좌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과 함께 공모한 백모씨는 유튜브와 세미나 등을 통해 다단계 판매망을 넓힌 것으로 드러났다.

거짓 광고·다단계 유인 “사기 종합세트”

공소장에 적시된 사기 혐의는 다양했다. 이들은 “브이글로벌이 국내 거래소 실적 4위다” “신한은행과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을 발급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에 블록체인 지갑을 개발 납품하고 SK텔레콤과 지갑 구축사업을 진행했다”며 피해자를 속였다.

영업은 ‘다단계 피라미드’식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8단계로 나눠 다단계 판매를 했다. 신규 투자자를 모집하면 투자금 20%에 해당하는 120만 브이캐시를 추천수당으로 주고, 실적 7%를 후원 수당으로 지급하는 식이다. 최상위 3개 직급은 총 매출 1%를 수당으로 받았다. 각 단계 승급 시에는 등급별로 50만~1억 브이캐시를 성취금으로 주며 피해자를 모았다. 이들은 이런 방식을 통해 신규 회원의 돈을 ‘돌려막기식’으로 초기 투자자에게 지급했다. 그러다 일부 투자자가 약속된 수당과 환불을 받지 못하면서 피해가 발생했다.

경찰은 이들이 각각 5만2000여 명에게 2조2116억원, 4만여 명에게 1조4171억원 등 총 3조6000억원을 법인계좌로 입금받은 것으로 조사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전국 각지에서 설명회를 열고 투자자를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올해 초 브이글로벌의 위법 정황을 포착하고 이들을 수사해왔다. 이들은 이번 재판을 위해 대형 법무법인을 변호인단으로 꾸렸다. 변호인은 30여 명으로 검찰과 경찰 출신이 대거 포함됐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