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20분 거리까지 왔단 소식 들어…가방 하나만 챙겨 교민과 군용기로 탈출"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에 마지막까지 남아 교민 1명의 탈출을 도운 최태호 주(駐)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사진)가 “탈주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모여들고 총소리가 계속되는 전쟁 같은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카타르 도하의 임시 공관에 머물고 있는 최 대사는 18일 화상 브리핑에서 “(카불이 함락된) 지난 15일 군공항에는 다른 국가 대사관 직원들이 탑승 수속을 하고 떠나는 상황이 계속돼 (우리 공관) 직원 대부분을 국외로 철수시키고 나를 비롯해 3명이 남아 마지막 남은 교민의 철수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날 화면 너머 평상복 차림의 최 대사는 “미처 카불에서 양복을 가져오지 못했다”며 “(군공항으로 가는) 헬기에 타려면 가방 크기가 제한돼 필수 물품만 챙겼다”고 덧붙였다.

최 대사가 전한 아프가니스탄 탈출기는 지난 15일 오전(현지시간)부터다. 최 대사는 당일 외교부 본부와 화상회의를 하던 중 대사관 경비업체로부터 탈레반이 대사관에서 차량으로 20분 떨어진 곳까지 진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방국 대사들과의 전화 통화로 상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최 대사는 “철수 결정이 난 뒤 모든 직원이 매뉴얼에 따라 보안 문서 등을 파기하고 차량으로 5분 거리의 우방국 대사관으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군공항까지 헬기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대사관 직원들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현지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교민 A씨의 탈출을 설득했다. 최 대사는 “1차 설득 때 (A씨가) 사업을 정리해야 하니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해 총 3명만 남아 A씨를 설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통제가 가능했던 군공항의 상황조차 갈수록 악화됐다. 최 대사는 “15일 오후 5시께 남은 직원들이 (A씨를) 설득하려고 이동하던 중 공습 경보가 울려 긴급히 옆 건물로 대피했고, 항공기에 이미 탑승해있던 직원들도 대합실로 다시 돌아와 한 시간 정도 대기했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부터는 민간 공항에 몰려든 아프간 시민들이 군공항으로까지 넘어오기 시작했다. 최 대사는 “군중 일부는 총기를 소지하고 있어 저녁부터 총소리도 들렸고 우방국 헬기가 공항 위를 맴돌면서 주변을 경계했다”고 전했다.

최 대사를 비롯한 우리 외교관 3명은 결국 17일이 돼서야 A씨와 함께 현지를 탈출했다. 당초 최 대사 등은 세 차례에 걸친 주요국들과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6일 A씨가 떠난 뒤 탈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6일 오전부터 군공항 활주로에 몰려든 군중 탓에 A씨가 탑승한 군용기 운항이 취소됐다. 최 대사는 “(A씨와) 같이 출국하는 게 좋겠다 싶어 본부의 허가 승인을 받고 새벽 3시께 함께 군용기를 탔다”며 “큰 수송기 바닥에 오밀조밀 몰려 앉아 빠져나왔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군용기 탑승자 중에는 아프간인도 일부 포함됐는데 이들은 대부분 공항에서 일하거나 외국 대사관과 친분이 있는 등 현지 상황을 빨리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