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못 한 정당한 사유 인정…'내국인 진료 제한' 판단은 아직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 취소가 부당하다고 판결한 항소심 재판부는 병원 측이 기한 내 개원을 하지 못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인정, 1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제주 녹지병원 허가 취소 부당" 뒤집힌 2심 판결 근거는
광주고법 제주 행정1부(재판장 왕정옥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낸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처분 취소소송'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녹지제주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녹지제주가 의료법에 명시된 대로 개설 허가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병원을 열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업무를 시작하지 않은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녹지제주가 조건부 허가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더라도 개설 허가에 공정력이 있는 이상 일단 허가 후 3개월 이내에 의료기관을 개설해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며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는 녹지제주의 사정이 참작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녹지제주가 예상치 못한 조건부 허가와 허가 지연으로 인해 개원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3개월 이내에 병원을 개원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 장관 승인을 받은 사업계획서 등을 보면 녹지병원이 진료 대상자를 제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설립 추진됐던 것으로 보임에도 제주도는 허가 신청 15개월이 지나서야 진료 대상을 외국인으로 한정하는 조건을 달아 허가했다"며 녹지 측이 이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며, 허가 지연도 녹지 측 귀책 사유 때문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허가 지연 과정에서 채용 인력 과반이 이탈하고, 조건부 허가가 이뤄져 사업 계획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에도 제주도는 계획을 다시 수립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녹지 측은 허가조건에 맞춰 다시 계획을 수립할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며 기한 내 개원 못 할 사유가 있었음에도 허가를 취소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제주 녹지병원 허가 취소 부당" 뒤집힌 2심 판결 근거는
앞서 녹지제주는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지하 1층, 지상 3층, 전체면적 1만7천679㎡ 규모의 녹지병원을 짓고 2017년 8월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신청을 했다.

이를 두고 논란이 거세지자 제주도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로 했고, 공론화위원회에서는 '불허'가 권고됐다.

그러나 제주도는 대내외적 파장 등을 고려해 2018년 12월 5일 진료대상을 외국인 의료 관광객으로 한정, 내국인 진료는 제한하는 조건을 달아 허가를 했다.

녹지제주는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달아 개원을 허가한 것은 부당하다며 개원 대신 2019년 2월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녹지제주가 개설 허가 후 3개월이 지나도록 병원 문을 열지 않자 제주도는 청문절차를 거쳐 2019년 4월 녹지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녹지제주는 이에 대해서도 반발하며 같은 해 5월 개설 허가 취소를 취소해달라는 소송까지 제기했다.

개설 허가 취소와 관련해서는 이미 2심까지 진행됐지만,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부 허가에 대한 법적 판단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녹지병원 개설 허가 취소가 적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하면서 '개설 허가 조건 취소 소송'에 대해서는 허가 취소 관련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선고를 연기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