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을 얼려 보관하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빙수는 누군가의 ‘로망’이었다. 고대 로마 황제는 마차에 실어 급송한 알프스 빙하를 갈아서 꿀과 레몬즙을 뿌려 먹었다. 중국 송나라 황제는 복날이면 꿀과 팥을 버무린 얼음을 대신들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로마 황제 '알프스 빙수' 즐겨…한국은 1890년대 팥빙수 등장
빙수의 역사는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게 음식문화연구가들의 얘기다. 기원전 3000년 중국에서 눈이나 얼음에 꿀, 과일즙을 섞어 먹기 시작한 게 빙수의 유래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즐겨 먹던 빙수 제조법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전했다는 내용이 있다. 조선 시대엔 복날 얼음을 관원들에게 나눠주고, 관원들은 얼음을 잘게 부숴 화채 등을 만들어 먹었다. 조선 초기 문인 서거정은 ‘얼음 쟁반에 여름 과일을 띄워라. 오얏 살구의 달고 신맛이 섞여 있다’라는 시를 읊기도 했다.

빙수가 대중화된 것은 1876년 독일의 카를 린데가 암모니아를 냉각제로 사용하는 압축냉장장치를 발명하고 나서다. 1913년 최초의 가정용 전기냉장고가 미국에서 출시되며 얼음을 이용한 음식이 발달했다. 1880년대엔 얼음을 곱게 갈아주는 빙삭기가 개발됐다.

한국에서 빙수의 대명사인 팥빙수가 등장한 것은 1890년대다. 잘게 부순 얼음 위에 차게 식힌 단팥을 얹어 먹는 일본의 ‘얼음팥’이 일제강점기 때 전해지면서다. 1915년 서울에 442명의 빙수 장수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920년대 소파 방정환 선생이 빙수를 좋아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후 한국 빙수는 팥뿐 아니라 연유, 떡, 아이스크림, 과일 등 다양한 재료를 더하면서 진화했다. 요즘은 초콜릿이나 케이크, 마카롱 등 디저트를 얹어 푸짐하게 차린 빙수도 많다.

빙수를 즐기는 방식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일본은 얼음 가루에 시럽을 뿌려 먹는 ‘가키코리’, 이탈리아는 과일 시럽을 얼려 젤라토를 얹어 먹는 ‘그라니타’ 등을 선호한다. 필리핀은 얼음 위에 열대 과일, 팥, 연유 등을 뿌려 먹는 ‘할로할로’가 유명하다. 이란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면을 얼려 젤리, 과일 등을 얹은 ‘팔루데’라는 국수빙수를 즐겨 먹는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