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상상과 현실의 공존 그리고 미래
오늘은 지난주 매입한 대지에 건물을 세우기로 했다. 눈여겨보던 신도시 오피스 지역이다. 벤처기업과 금융회사가 들어오고 있는데, 번화가도 멀지 않아 젊은이들의 성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학교도 들어온다니 금상첨화, 기회의 땅이다. 건물 설계도는 만들어놨고, 건물을 세우는 데 3일이면 된다.

일단 화면에서 주거래 은행을 클릭해 상담한다. 서류 제출과 서명을 마치고 대출 실행까지 10분이면 된다. 실제 대지가 아닌 가상공간의 땅을 대출받아 사는 세상이다. 가상 입주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가상 부동산에 건물을 등록한다. D은행에서는 젊은이들을 위한 커피숍, 화장품·소품 가게, 게임업체를 추천한다. 건물이 들어서면 가상의 아바타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고 물건을 구입하고 외모를 치장할 것이다.

출근 전 L증권 화면을 클릭하니 박 부장이 나를 반긴다. 처음엔 인공지능(AI) 상담이 어색했지만 이젠 사람과 대화하듯 자연스럽다. 박 부장의 아바타는 나의 투자 이력과 성향을 잘 알기에 미국의 A항공 주식 처분과 영국의 B해운 매입을 권한다. 잠시 고민하다가 박 부장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 대화 버튼을 클릭하니 바로 연결된다. 한국의 본사와 미국의 실제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설명을 듣는 데 30분 남짓, 최종 투자까지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제 일할 시간이다. 자리에 앉으니 오늘의 업무 목록과 공지사항이 펼쳐진다. 나의 아바타는 이미 두 곳의 협력업체와 상담 중이다. 상담 내용과 계약서 등이 한쪽 화면에서 계속 움직이며 결재서류가 완성되고, 나는 혹시라도 AI가 놓치는 게 없는지 검토한다. 확인이 필요한 사안은 당사 드론을 띄워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CCTV 화면으로 내용을 점검한다.

이것은 메타버스 시대의 일상이다. 나의 지식과 상상력에 한계가 있기에 미래를 제대로 설명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은행 지점에서 줄을 서고 번호표를 뽑는 시대를 지나 모바일뱅킹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나, 우리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상상의 세계가 현실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기존에는 현실의 플랫폼을 만드는 기업이 세계를 주도했다면, 이제는 가상의 플랫폼을 만드는 기업이 미래를 주도할 것이다. 3차원의 세계가 4차원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상상을 하는 사람이, 엉뚱함으로 가득 찬 기업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 자명하다.

오늘 저녁은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로 변신해 볼까, 아니면 박지성과 함께 유로파리그에 참가해 볼까. 나의 아바타는 오늘 밤 아이언맨과 함께 지구를 지킬 것이고, 박지성의 골을 어시스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