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된 계절, 그리고 비발디[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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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자락,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빗줄기가 쏟아지는가 하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계절이 오가는 변화의 시기가 되면 유독 감성적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음악도 더 자주 찾아듣게 됩니다. 그럴 때면 다들 어떤 음악이 떠오르시나요.
다양한 곡이 있겠지만, 가장 직관적으로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은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의 '사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계절을 담은 음악 중 이토록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 또 있을까요.
이 곡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지만 세련된 느낌도 주죠. 그래서인지 '007' 시리즈와 '슈퍼맨 리턴즈'부터 지난해 개봉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까지 영화 음악으로도 자주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계'라는 작품의 영향력이 너무 크고 강해서일까요. 비발디는 헨델, 바흐와 함께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꼽히지만 정작 그에 대해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계'만의 차별화된 매력을 비롯해, 이 명곡을 탄생시킨 비발디의 음악 세계와 삶을 함께 살펴보실까요.
먼저 '사계'를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가장 유명한 '봄'은 갓 피어나는 새싹들, 산들바람을 연상하게 하는 싱그럽고 상큼한 선율이 인상적입니다.
이어지는 '여름'에선 휘몰아치는 폭풍우 등을 음악으로 표현했는데요. 영상을 통해 여름 3악장을 함께 들어보실까요. 실제 눈앞에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사계'의 각 악장에 적힌 소네트(짧은 시)까지 살펴보면 그 그림이 더욱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여름에 대해선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번개와 격렬한 천둥소리, 달려드는 파리 떼의 공격으로 목동은 피로한 몸을 쉴 수가 없다. 아아, 목동의 두려움은 그럴 만하다. 하늘은 천둥을 울리고 우박을 내리게 하여 익은 열매와 곡식들을 떨어뜨린다." 이 소네트의 작가가 누군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비발디가 직접 썼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음악과 시로 사계절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 보이다니 감탄이 나오네요.
게다가 단순히 이미지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목동의 이야기를 더해 스토리텔링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계'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 생생하게 와닿았던 비결이 아닐까요.
여름 3악장은 최신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엘로이즈(아델 에넬 분)가 여름 3악장 연주를 들으며 그리운 사람에 대한 마음을 눈물과 함께 한껏 쏟아내죠. 격정적인 선율과 폭풍처럼 쏟아지는 감정이 한데 섞여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가을'에선 풍요롭고도 여유로운 느낌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가을 소네트에도 이 부분이 실감 나게 표현돼 있습니다.
"농부들은 춤과 노래로 수확의 즐거움을 기뻐하고 축하했다. 바커스의 술 덕택에 사람들은 흥겨움에 빠진다." 동네 사람들과 유쾌하게 술 한잔 나누며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겨울'에선 차가운 겨울바람과 눈보라 등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여기에도 스토리텔링이 잘 가미돼 있습니다.
겨울 1악장은 추위로 벌벌 떠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2악장에선 그가 난롯가에서 몸을 녹이며 집 밖 풍경을 평화롭게 바라보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2악장이 겨울을 그렸지만 봄을 묘사한 것처럼 감미롭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유죠. 겨울 2악장은 가수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이란 곡에 샘플링 돼 국내서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비발디는 어떤 인물이었길래 계절의 흐름을 이토록 정교하고 섬세하게 담아냈을까요. '사계'를 상세히 살펴보고 나니 그의 삶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비발디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태어났을 당시 큰 지진이 일어난 탓에, 열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세상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비발디의 부모님은 아픈 그를 더욱 아끼고 보살폈죠.
그의 아버지는 비발디가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을 가르쳐 줬습니다. 아버지는 이발사인 동시에 성당의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비발디는 바이올린을 쉽게 배울 수 있었고, 비범한 솜씨를 뽐냈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 가게 된 길은 음악가가 아닌 사제의 길이었습니다. 당시 계급 사회에서 사제는 신분 상승을 위한 통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비발디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제가 됐고, 뛰어난 연주 실력 덕분에 10살 때부터 성당의 후원금까지 받으며 성직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25살엔 사제 서품을 받았고, 빨간 곱슬머리 때문에 '빨간 머리의 사제'로 통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제로서의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원래는 수도원에만 머물러야 했지만 몸이 약한 것을 이유로 집으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천식 때문에 종종 미사도 빠졌습니다.
이런 비발디의 행보를 두고 온갖 소문이 돌았습니다. 몸이 약한 것은 핑계라는 이야기, 많은 여성들과 열애를 한다는 이야기 등이 파다했습니다.
비발디는 집에 와서 한 일은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 등이 여는 음악회를 함께 즐긴 것입니다. 아버지 대신 성당 바이올린 연주를 하기도 했죠. 그가 음악가로서 명성을 알릴 수 있었던 건 이런 과감한 이탈 덕분인 것 같습니다.
비발디는 피에타 병원에서 운영하는 음악원 교사로도 활동했습니다. 이 음악원은 고아와 사생아 등이 모여있는 고아원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쳤고, 참신하고 재밌는 음악적 시도도 함께 했습니다. 아이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급기야 입소문까지 났습니다. 비발디와 아이들이 선보이는 연주회는 베네치아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됐을 정도입니다. 뛰어난 음악 교육가로서 음악으로 아이들을 치유하고, 지역 사회에 공헌까지 한 셈이죠.
1975년 시작된 '엘 시스테마'가 떠오르는데요.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빈민층 아이들에게 악기를 쥐여주며 함께 만든 음악 프로그램이죠. 비발디의 교육은 바로크 시대에 엘 시스테마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당시엔 종교 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요. 비발디는 사제였음에도 종교 음악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를 포함해 450여 곡에 달하는 협주곡을 썼습니다. 그중 '조화의 영감' 6번 곡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비발디는 오늘날 협주곡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협주곡의 틀을 최초로 정립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빠른 1악장-느린 2악장-빠른 3악장으로 구성한 것인데요. 완급 조절을 통해 지루하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죠.
독주와 오케스트라 합주가 번갈아가며 주고받듯 연주하는 '리토르넬로' 형식도 고안했습니다. 대비 효과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이 형식에 대해 바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접목했습니다.
그는 당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오페라 음악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1713년 '이관의 오토 대제'를 시작으로 매년 오페라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작품이 유실되긴 했지만 50여 편에 달하는 오페라를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오페라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비발디에게도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1737년 이탈리아 페라라에서 오페라를 제작하고 있던 그에게 추기경이 추방 명령을 내린 것이죠. 추기경은 정확한 이유를 밝히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프라노 안나지로와 스캔들에 휩싸인 것이 문제가 됐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나지로는 비발디와 20살 넘게 차이가 나는 그의 제자였는데요. 사제인 비발디가 그를 만난다는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소문만으로도 문제가 됐습니다.
결국 그는 오페라를 급히 중단하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했지만, 그를 후원해 줄 카를 6세가 세상을 떠나며 재기는 물거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비발디는 끝내 타향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거장의 음악은 거장이 알아보는 법이죠. 바흐는 비발디의 음악을 연구하고 여러 번 편곡했는데요. 이로 인해 비발디의 작품들은 재발견되고 많은 사랑을 받게 됐습니다.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고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던 비발디. 거장의 명곡은 그렇게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며 모든 계절마다 우리의 곁에 흐르고 있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