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가는 돈 잔치" 美 통화정책 정상화 속 투자전략은…[한경우의 케이스 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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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준, 연내 테이퍼링 가능성 시사
2013년 선언 때는 ‘긴축발작’…시행 후엔 美증시 장기랠리
부채 많은 ‘약한 고리’ 위험할 수도
2013년 선언 때는 ‘긴축발작’…시행 후엔 美증시 장기랠리
부채 많은 ‘약한 고리’ 위험할 수도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Fed)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논의한 게 공식화됐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미 연준이 시장에 공급하던 돈의 규모를 줄이는, ‘긴축’이 가시화된 겁니다.
현재 연준은 매달 금융시장에서 1200억달러 어치의 미 국채(800억달러)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금융회사에게 현금(달러)을 주고 국채·MBS를 받아오니,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연준이 달러를 찍어 시장에 공급한다’고 평가합니다. 공식적인 명칭은 ‘자산매입 프로그램(양적완화)’이라고 합니다.
벌써부터 어려워지기 시작하는군요. 우선 ‘연준이 시장에 유동성(돈)을 공급한다’는 정도로만 양적완화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집에서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월세, 식비처럼 꼭 나가는 돈이 있잖아요. 기업도 임대료, 인건비, 이자비용과 같은 고정비가 나가죠. 많은 돈을 쌓아두고 있으면 괜찮겠지만, 그런 사람이나 기업은 드뭅니다. 돈을 더 빌려보려 은행을 찾아도, 감염병 사태로 세상이 끝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시중은행들은 쉽사리 추가 대출을 해주지 않습니다. 잘못 빌려줬다가 부실이 생기면 은행도 망할 수 있으니까요.
시중은행이 갖고 있는 불안함을 해소해 원활하게 자금을 융통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양적완화입니다. 중앙은행이 충분한 현금을 공급해줄 테니, 불안해하지 말고 경제주체들에게 대출을 해주라는 겁니다.
효과는 있었습니다. 작년 3월에는 당장이라도 망할 것 같았던 기업들이 살아남았고, 올해 들어서는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을 내놓지 못한 기업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경기가 가파르게 회복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주가지수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올해 들어 미국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 기록을 50번 가깝게 갈아치웠습니다. 현재 사상 최고치는 지난 16일의 35231.87입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세상이 끝날 것만 같았던 작년 3월23일의 저점 18591.93과 비교하면 1년 5개월만에 89.50% 상승한 수준입니다. 한국의 코스피는 작년 3월의 저점 대비 2배 이상으로 올랐죠.
이에 연준 안팎에서는 올해 상반기부터 자산매입 프로그램 규모 축소(테이퍼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처음에는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공식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습니다. 일부 통화 긴축적 성향(매파)의 연준 위원들이 테이퍼링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긴장감을 주는 정도였죠. 테이퍼링이 처음 거론된 건 6월 FOMC에서 “테이퍼링을 논의하는 데 대해 논의했다”는 다소 말장난 같은 언급이었습니다. 주던 돈을 안 주겠다고 하면 시장이 충격을 받을 걸 우려해 연준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테이퍼링이라는 이슈를 다뤘던 겁니다.
드디어 지난 18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의 7월 FOMC 의사록에는 대부분의 참석자는 “올해 자산 매입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당연히 시장은 움찔했습니다. 7월 FOMC 의사록이 공개된 날부터 이틀동안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27%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95%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0.78%가 각각 하락했습니다. 그래도 금요일인 20일에는 반등해 나스닥지수는 7월 FOMC 의사록이 공개되기 전인 17일 종가 이상으로 회복했습니다.
오히려 한국증시는 격하게 반응했습니다. 지난 19~20일(한국시간) 코스피는 3.12%가 하락해 3100선이 무너졌습니다. 코스닥도 5.21% 폭락해 1000선이 깨졌습니다. 한국증시도 20일 장 초반 반등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내놓을 줄 알았던 중국 인민은행이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를 동결했다는 소식에 한 차례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테이퍼링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문구가 ‘통화정책 정상화’입니다. 양적완화를 하고 있는 지금이 ‘비정상’이라는 뜻이죠.
앞서 양적완화를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는 행위’라고 설명했습니다. 국채를 사들이는 행위 자체는 비정상이 아닙니다. 경제 좀 봐왔다는 사람이 가장 기본적으로 보는 지표인 기준금리가 중앙은행의 국채 매매를 통해 현실화되거든요.
미 연준은 FOMC를 통해,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통해 각각 기준금리를 결정하고 발표합니다. 이 때의 발표는 국채 유통 시장에서의 가격(금리)를 결정한 기준금리 수준으로 묶어 놓겠다는, 일종의 ‘선언’에 불과해요. 이후 중앙은행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채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높으면 국채를 매입해 금리 하락(국채 가격 상승)을, 기준금리보다 낮으면 국채를 매도해 금리 상승(국채 가격 하락)을 각각 유도하는 방식으로 선언을 지키는 겁니다.
“연준에 맞서지 마라(Don't fight Fed)”라는 말이 있습니다. 채권 시장에서 중앙은행의 힘은 워낙 막강해서 생긴 말이죠. 중앙은행의 힘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국채 가격(금리)과 기준금리 사이에 차이가 커지면 시장 참여자들이 미리 움직여 두 금리를 비슷한 수준으로 만듭니다. 이러면 “양적완화의 뭐가 비정상이냐”며 불만을 터뜨릴 법합니다. 양적완화의 대상인 국채와 기준금리의 대상인 국채가 다른데, 이를 구분하는 ‘장기’와 ‘단기’라는 단어를 뺐기 때문에 생긴 혼선입니다.
기준금리의 대상이 되는 건 단기국채입니다. 즉 중앙은행은 단기 금리에 개입해왔던 거죠. 단기금리는 금융기관들끼리의 거래에 사용됩니다. 경제위기가 없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은행들끼리 거래할 때 사용하는 단기금리만 낮춰줘도, 시중은행은 편안함을 느낍니다. 자연스레 대출심사도 덜 까다롭게 하면서 기업이나 가계에 장기로 돈을 빌려주는 금리도 내려오게 되죠.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투자에 나서면 경기가 활성화되겠죠.
반면 위기가 발생하면 중앙은행이 아무리 단기금리(기준금리)를 낮춰줘도 불안감을 느끼는 시중은행들이 대출을 늘리지 않습니다. 망할까봐 무서우니까요. 꼭 돈을 빌릴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금리를 더 쳐줄 테니 제발 돈 좀 빌려 달라”고 사정하게 될 겁니다. 장기금리가 튀어 오르겠죠.
은행은 역할이라는 게 경제 전체에 원활하게 돈을 돌게 해주는 건데, 그 역할을 안 하고 저만 살겠다고 돈을 꽉 쥐고만 있으니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명칭에도 있는 것처럼 ‘시중은행의 위기’였습니다. 부동산 대출 관련 파생상품을 잘못 다뤘다가 시중은행이 망할 위기에 처한 거죠. 실제 당시 월가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베어스턴스와 세계 4위권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망했습니다. 이를 본 다른 시중은행들은 ‘저렇게 큰 은행도 망하는데,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금을 확보해 쥐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에 멀쩡한 기업들에 대해서도 대출 연장을 해주지 않고 회수를 시도하죠. 이자 한 번 안 밀리고 열심히 사업한 기업도 파산 위기에 내몰립니다. 금융이 만들어 낸 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된 겁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장기 국채를 매입해 가격을 상승시켜 장기금리를 누르는 한편, 시중은행들이 원활하게 돈을 공급하도록 돕는 통화정책인 겁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조정할 때보다 더 직접적으로 실물경제에 개입한다는 게 양적완화의 문제입니다. “연준이 달러를 찍어 시장에 공급한다”는 비아냥 섞인 평가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죠.
국가(중앙은행)가 과도하게 화폐 찍어내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는 걸 두고 ‘화폐가 타락한다’고 말합니다. 화폐는 해당 국가의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를 지니는데, 국가가 마구잡이로 화폐를 찍어내면 화폐의 가치가 유지될 것이란 사람들이 신뢰가 약화될 수밖에 없죠.
연준이 양적완화를 처음 시행한 2009년에 비트코인이 개발됐다는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역시 첫 번째 양적완화 사례였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보시죠.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2013년 5월22일 미 상원 청문회에서 갑작스럽게 ‘테이퍼링’이라는 단어를 언급했고, 한달여가 지난 같은해 6월 FOMC에서 테이퍼링 가능성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글로벌 증시는 ‘긴축 발작(테이퍼링 탠트럼)’ 증세를 보입니다. 2013년 6월 FOMC가 종료된 6월19일부터 4거래일동안 미국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4.30%와 4.64%가 하락했습니다. 이 영향을 받은 코스피도 2013년 6월 20~25일(한국시간)에 5.70%가 빠졌죠. 당장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한다는 것도 아니고, 6개월 뒤부터 시행할 수 있다는 발표만으로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를 두고 ‘버냉키 쇼크’라고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시장의 충격이 2013년보다는 덜 한 듯합니다. 연준이 갑작스럽게 테이퍼링을 선언하지 않고 꾸준히 시장에 긴축 가능성을 경고해둔 덕으로 보입니다.
이에 더해 테이퍼링으로 인해 은행이 힘들어질 때를 대비한 완충판도 마련해뒀습니다. 지난달 29일 FOMC가 종료된 뒤 연준은 '스탠딩 레포(SRF)' 도입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스탠딩 레포는 상설 환매조건부채권(Repo·레포) 운영기구로 은행이 국채와 정부기관채 등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릴 수 있는 창구입니다. 테이퍼링으로 장기 국채를 사주는 규모는 줄이겠지만, 혹시 은행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연준에 팔던 국채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겁니다.
이후 미국 증시는 2015~2016년의 중국 부채 위기와 2018~2019년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출렁거리긴 했지만,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의 장기 랠리를 펼칩니다.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가속도가 붙은 4차 산업혁명을 미국 기업들이 주도했고, 이게 미국 경제의 독보적인 성장으로 이어진 결과입니다.
문제는 경제 체력이 좋지 못한 나라들이었죠.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두 번째 양적완화가 끝나갈 무렵인 2011년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PIIGS)의 정부 부채로 인해 유럽재정위기가 일어났습니다.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나라들이 빚으로 살림을 꾸려 나가다가 한계에 다다랐던 거죠. 유럽재정위기는 미국의 3차 양적완화로 이어졌습니다. 이후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2015~2016년 중국이 고도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쌓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그로기 상태로 몰렸었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은 나은 편이었지만, 역시 만족스럽지는 못했습니다. 코스피는 2014년 미 연준의 테이퍼링이 시작된 뒤 2017년 1분기까지 1800~2200의 박스권에 갇혔습니다. 2017~2018년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힘입어 2600선을 넘보기도 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로 1900선이 무너졌습니다. 이후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터지기 직전의 고점은 작년 1월22일의 2267.25입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미 연준이 풀었던 돈을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한국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2014년 이후와 비교하면 한국 가계가 짊어지고 있는 부채가 많다는 비관론과 미래 성장 산업 분야에서 약진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많다는 낙관론이 맞서고 있죠.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의 호황,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랠리 등 한국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경험이 많습니다. 한국은 코로나19 확산 사태 속에서도 세계적인 의약품 생산 거점으로 부각됐고, 전기차 시장의 개화 속에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반복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현재 연준은 매달 금융시장에서 1200억달러 어치의 미 국채(800억달러)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금융회사에게 현금(달러)을 주고 국채·MBS를 받아오니,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연준이 달러를 찍어 시장에 공급한다’고 평가합니다. 공식적인 명칭은 ‘자산매입 프로그램(양적완화)’이라고 합니다.
벌써부터 어려워지기 시작하는군요. 우선 ‘연준이 시장에 유동성(돈)을 공급한다’는 정도로만 양적완화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양적완화, 코로나19發 경기침체 회복의 핵심 동력
작년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갑작스럽게 전 세계의 경제가 멈추게 됐습니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이동을 막는 봉쇄조치가 잇따르면서죠.집에서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월세, 식비처럼 꼭 나가는 돈이 있잖아요. 기업도 임대료, 인건비, 이자비용과 같은 고정비가 나가죠. 많은 돈을 쌓아두고 있으면 괜찮겠지만, 그런 사람이나 기업은 드뭅니다. 돈을 더 빌려보려 은행을 찾아도, 감염병 사태로 세상이 끝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시중은행들은 쉽사리 추가 대출을 해주지 않습니다. 잘못 빌려줬다가 부실이 생기면 은행도 망할 수 있으니까요.
시중은행이 갖고 있는 불안함을 해소해 원활하게 자금을 융통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양적완화입니다. 중앙은행이 충분한 현금을 공급해줄 테니, 불안해하지 말고 경제주체들에게 대출을 해주라는 겁니다.
효과는 있었습니다. 작년 3월에는 당장이라도 망할 것 같았던 기업들이 살아남았고, 올해 들어서는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을 내놓지 못한 기업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경기가 가파르게 회복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주가지수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올해 들어 미국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 기록을 50번 가깝게 갈아치웠습니다. 현재 사상 최고치는 지난 16일의 35231.87입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세상이 끝날 것만 같았던 작년 3월23일의 저점 18591.93과 비교하면 1년 5개월만에 89.50% 상승한 수준입니다. 한국의 코스피는 작년 3월의 저점 대비 2배 이상으로 올랐죠.
이에 연준 안팎에서는 올해 상반기부터 자산매입 프로그램 규모 축소(테이퍼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처음에는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공식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습니다. 일부 통화 긴축적 성향(매파)의 연준 위원들이 테이퍼링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긴장감을 주는 정도였죠. 테이퍼링이 처음 거론된 건 6월 FOMC에서 “테이퍼링을 논의하는 데 대해 논의했다”는 다소 말장난 같은 언급이었습니다. 주던 돈을 안 주겠다고 하면 시장이 충격을 받을 걸 우려해 연준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테이퍼링이라는 이슈를 다뤘던 겁니다.
드디어 지난 18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의 7월 FOMC 의사록에는 대부분의 참석자는 “올해 자산 매입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당연히 시장은 움찔했습니다. 7월 FOMC 의사록이 공개된 날부터 이틀동안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27%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95%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0.78%가 각각 하락했습니다. 그래도 금요일인 20일에는 반등해 나스닥지수는 7월 FOMC 의사록이 공개되기 전인 17일 종가 이상으로 회복했습니다.
오히려 한국증시는 격하게 반응했습니다. 지난 19~20일(한국시간) 코스피는 3.12%가 하락해 3100선이 무너졌습니다. 코스닥도 5.21% 폭락해 1000선이 깨졌습니다. 한국증시도 20일 장 초반 반등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내놓을 줄 알았던 중국 인민은행이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를 동결했다는 소식에 한 차례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중앙은행의 직접적 실물경제 개입…화폐 타락 부를수도
당장 주가가 충격을 받으니 테이퍼링을 꼭 해야 하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양적완화를 지속하면 증시의 사상최고치 행진이 계속될 것이란 기대도 있겠죠. 왜 테이퍼링을 해야 하는지 양적완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죠.테이퍼링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문구가 ‘통화정책 정상화’입니다. 양적완화를 하고 있는 지금이 ‘비정상’이라는 뜻이죠.
앞서 양적완화를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는 행위’라고 설명했습니다. 국채를 사들이는 행위 자체는 비정상이 아닙니다. 경제 좀 봐왔다는 사람이 가장 기본적으로 보는 지표인 기준금리가 중앙은행의 국채 매매를 통해 현실화되거든요.
미 연준은 FOMC를 통해,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통해 각각 기준금리를 결정하고 발표합니다. 이 때의 발표는 국채 유통 시장에서의 가격(금리)를 결정한 기준금리 수준으로 묶어 놓겠다는, 일종의 ‘선언’에 불과해요. 이후 중앙은행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채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높으면 국채를 매입해 금리 하락(국채 가격 상승)을, 기준금리보다 낮으면 국채를 매도해 금리 상승(국채 가격 하락)을 각각 유도하는 방식으로 선언을 지키는 겁니다.
“연준에 맞서지 마라(Don't fight Fed)”라는 말이 있습니다. 채권 시장에서 중앙은행의 힘은 워낙 막강해서 생긴 말이죠. 중앙은행의 힘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국채 가격(금리)과 기준금리 사이에 차이가 커지면 시장 참여자들이 미리 움직여 두 금리를 비슷한 수준으로 만듭니다. 이러면 “양적완화의 뭐가 비정상이냐”며 불만을 터뜨릴 법합니다. 양적완화의 대상인 국채와 기준금리의 대상인 국채가 다른데, 이를 구분하는 ‘장기’와 ‘단기’라는 단어를 뺐기 때문에 생긴 혼선입니다.
기준금리의 대상이 되는 건 단기국채입니다. 즉 중앙은행은 단기 금리에 개입해왔던 거죠. 단기금리는 금융기관들끼리의 거래에 사용됩니다. 경제위기가 없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은행들끼리 거래할 때 사용하는 단기금리만 낮춰줘도, 시중은행은 편안함을 느낍니다. 자연스레 대출심사도 덜 까다롭게 하면서 기업이나 가계에 장기로 돈을 빌려주는 금리도 내려오게 되죠.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투자에 나서면 경기가 활성화되겠죠.
반면 위기가 발생하면 중앙은행이 아무리 단기금리(기준금리)를 낮춰줘도 불안감을 느끼는 시중은행들이 대출을 늘리지 않습니다. 망할까봐 무서우니까요. 꼭 돈을 빌릴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금리를 더 쳐줄 테니 제발 돈 좀 빌려 달라”고 사정하게 될 겁니다. 장기금리가 튀어 오르겠죠.
은행은 역할이라는 게 경제 전체에 원활하게 돈을 돌게 해주는 건데, 그 역할을 안 하고 저만 살겠다고 돈을 꽉 쥐고만 있으니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명칭에도 있는 것처럼 ‘시중은행의 위기’였습니다. 부동산 대출 관련 파생상품을 잘못 다뤘다가 시중은행이 망할 위기에 처한 거죠. 실제 당시 월가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베어스턴스와 세계 4위권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망했습니다. 이를 본 다른 시중은행들은 ‘저렇게 큰 은행도 망하는데,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금을 확보해 쥐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에 멀쩡한 기업들에 대해서도 대출 연장을 해주지 않고 회수를 시도하죠. 이자 한 번 안 밀리고 열심히 사업한 기업도 파산 위기에 내몰립니다. 금융이 만들어 낸 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된 겁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장기 국채를 매입해 가격을 상승시켜 장기금리를 누르는 한편, 시중은행들이 원활하게 돈을 공급하도록 돕는 통화정책인 겁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조정할 때보다 더 직접적으로 실물경제에 개입한다는 게 양적완화의 문제입니다. “연준이 달러를 찍어 시장에 공급한다”는 비아냥 섞인 평가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죠.
국가(중앙은행)가 과도하게 화폐 찍어내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는 걸 두고 ‘화폐가 타락한다’고 말합니다. 화폐는 해당 국가의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를 지니는데, 국가가 마구잡이로 화폐를 찍어내면 화폐의 가치가 유지될 것이란 사람들이 신뢰가 약화될 수밖에 없죠.
연준이 양적완화를 처음 시행한 2009년에 비트코인이 개발됐다는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첫 경험 아니다” 테이퍼링 앞서 완충판 만드는 연준
금융기업들은 국가 경제보다는 이익에 더 집중합니다. 중앙은행이 계속해서 현금을 공급해줘 편안하게 이익을 낼 수 있는 양적완화가 계속되는 게 좋겠죠. 그래서 테이퍼링이 거론되면 증시가 출렁거리는 겁니다.역시 첫 번째 양적완화 사례였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보시죠.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2013년 5월22일 미 상원 청문회에서 갑작스럽게 ‘테이퍼링’이라는 단어를 언급했고, 한달여가 지난 같은해 6월 FOMC에서 테이퍼링 가능성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글로벌 증시는 ‘긴축 발작(테이퍼링 탠트럼)’ 증세를 보입니다. 2013년 6월 FOMC가 종료된 6월19일부터 4거래일동안 미국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4.30%와 4.64%가 하락했습니다. 이 영향을 받은 코스피도 2013년 6월 20~25일(한국시간)에 5.70%가 빠졌죠. 당장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한다는 것도 아니고, 6개월 뒤부터 시행할 수 있다는 발표만으로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를 두고 ‘버냉키 쇼크’라고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시장의 충격이 2013년보다는 덜 한 듯합니다. 연준이 갑작스럽게 테이퍼링을 선언하지 않고 꾸준히 시장에 긴축 가능성을 경고해둔 덕으로 보입니다.
이에 더해 테이퍼링으로 인해 은행이 힘들어질 때를 대비한 완충판도 마련해뒀습니다. 지난달 29일 FOMC가 종료된 뒤 연준은 '스탠딩 레포(SRF)' 도입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스탠딩 레포는 상설 환매조건부채권(Repo·레포) 운영기구로 은행이 국채와 정부기관채 등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릴 수 있는 창구입니다. 테이퍼링으로 장기 국채를 사주는 규모는 줄이겠지만, 혹시 은행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연준에 팔던 국채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겁니다.
성장 확고한 미국…문제는 ‘약한 고리’에서 생긴다
아마 테이퍼링이 시행된 뒤가 더 걱정일 겁니다. 우선 미국 증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2014년 1월29일 테이퍼링이 시작된 직후의 충격이 뉴욕증시가 테이퍼링 때문에 겪은 마지막 출렁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연준은 테이퍼링을 시작한 뒤 FOMC가 열릴 때마다 자산매입 규모를 더 줄여나갔지만, 2014년 연간으로 보면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7.52%와 13.40% 상승했습니다.이후 미국 증시는 2015~2016년의 중국 부채 위기와 2018~2019년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출렁거리긴 했지만,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의 장기 랠리를 펼칩니다.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가속도가 붙은 4차 산업혁명을 미국 기업들이 주도했고, 이게 미국 경제의 독보적인 성장으로 이어진 결과입니다.
문제는 경제 체력이 좋지 못한 나라들이었죠.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두 번째 양적완화가 끝나갈 무렵인 2011년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PIIGS)의 정부 부채로 인해 유럽재정위기가 일어났습니다.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나라들이 빚으로 살림을 꾸려 나가다가 한계에 다다랐던 거죠. 유럽재정위기는 미국의 3차 양적완화로 이어졌습니다. 이후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2015~2016년 중국이 고도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쌓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그로기 상태로 몰렸었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은 나은 편이었지만, 역시 만족스럽지는 못했습니다. 코스피는 2014년 미 연준의 테이퍼링이 시작된 뒤 2017년 1분기까지 1800~2200의 박스권에 갇혔습니다. 2017~2018년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힘입어 2600선을 넘보기도 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로 1900선이 무너졌습니다. 이후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터지기 직전의 고점은 작년 1월22일의 2267.25입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미 연준이 풀었던 돈을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한국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2014년 이후와 비교하면 한국 가계가 짊어지고 있는 부채가 많다는 비관론과 미래 성장 산업 분야에서 약진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많다는 낙관론이 맞서고 있죠.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의 호황,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랠리 등 한국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경험이 많습니다. 한국은 코로나19 확산 사태 속에서도 세계적인 의약품 생산 거점으로 부각됐고, 전기차 시장의 개화 속에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반복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