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도피 중 형사소송법 개정 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돼
경찰 "형사처벌 피하려는 도피로 볼 수 있는 실체적 증거를 확보"


2014년 11월 5일 0시.
이모(당시 45세) 변호사 피살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된 줄 알았다.
공소시효가 어쨌다고?…태완이법이 잡은 제주 변호사 살인교사범(종합)
이 변호사는 1999년 11월 5일 오전 6시 48분께 제주시 삼도2동 한 아파트 입구 인근에 주차된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인력을 총동원해 수사에 나섰지만 좀처럼 단서를 찾지 못했고 결국 이 사건은 범인을 찾지 못한 채 제주 대표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던 이 사건은 지난해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20여 년 만에 이 변호사 살인을 교사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김모(55) 씨는 자신을 조직폭력배인 전 유탁파 행동대원이라고 소개하면서, 1999년 10월 두목인 백모 씨로부터 범행 지시를 받고 동갑내기 손모 씨에게 이 변호사 살해를 교사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에서 김씨는 범행에 사용된 것과 비슷한 모양의 흉기를 직접 그려서 보여주고, 이 변호사의 이동 동선과 골목의 가로등이 꺼진 정황까지 설명했다.

그러나 김씨에게 범행을 지시했다는 두목 백씨와 직접 살인을 했다는 손씨는 이미 숨졌다.

경찰은 재수사를 시작했고, 지난 4월 살인 교사 혐의로 김씨에 대한 인터폴 적색수배 요청을 했다.

김씨는 지난 6월 불법체류 혐의로 캄보디아 현지에서 검거됐으며, 지난 18일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아울러 20년 넘게 특정하지 못했던 피의자가 제 발로 나타나면서 멈춘 줄만 알았던 공소시효 초침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찰이 출입국 기록을 분석한 결과 김씨는 공소시효 만료 전인 2014년 11월 5일 이전에 여러 차례 해외를 오간 것으로 나타났다.
공소시효가 어쨌다고?…태완이법이 잡은 제주 변호사 살인교사범(종합)
형사소송법 제253조에 따르면 범인이 형사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국외로 도피한 경우 그 기간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가 공소시효 만료 전 해외로 출국한 기간을 모두 합치면 만 8개월 이상이 된다.

경찰은 이 출국 기간을 김씨가 형사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도피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당시 사기 등의 혐의로 입건됐던 상태로, 경찰은 김씨가 해외로 출국했던 이유 중 하나가 처벌을 면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그 기간 해외를 오갔던 이유가 한 가지만은 아니었다"며 "수사 과정에서 그 이유 중 하나로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한 도피로 볼 수 있는 진술과 자료 등 실체적 증거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가 A 사건에 대한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해 해외로 출국했다 하더라도 그 기간 A 사건뿐 아니라 이 피의자와 관련된 모든 사건의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이로 인해 이 사건 공소시효 만료일은 2014년 11월 5일 0시가 아닌, 최소 만 8개월을 제외한 2015년 8월 이후가 된다.

주목할 점은 2015년 7월 24일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 일명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해 같은 달 31일부터 시행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태완이법은 법이 시행된 2015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법 적용이 가능(부진정소급)하게 됐다.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직접 살인범뿐만 아니라 살인교사범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결국 유력 용의자인 김씨가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 만 8개월간 해외로 출국하면서, 태완이법을 적용받게 된 것이다.

앞서 2007년 12월에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연장됐지만, 이 경우에는 법 시행 전 범죄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출입국 경력은 개인정보이자 수사 사항으로 자세히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19일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