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 거죠. 물론 주가가 예상보다 많이 올라갔기 때문에 사람 마음이란 게 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김앤장에 속아 싸게 팔았다"는둥 "매수측(한앤코)에만 베테랑 변호사를 붙여줬다"는둥 사실과 다른 발언, 명예훼손에 가까운 발언을 다른 로펌에 하고 다니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보입니다. 공식 입장으로 "한앤코와 조만간 계약 종결을 위해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홍 전 회장이 뒤로는 10여곳의 로펌을 찾아다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과연 이 딜은 어딜 향해 가는 걸까요?
이밖에도 방송인 유재석의 소속사인 안테나를 품에 안은 카카오엔터, 자동차 사업에서 완전히 손 뗀 삼성그룹 등 지난 2주 간의 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1. 누가 제일 억울할까? 홍원식 vs. 김앤장 vs. 한앤코
지난 5월 우유업계 2위 기업인 남양유업을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가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놀랐습니다. 여러 모로 시끄러웠던 남양유업 오너일가가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넘긴다는 측면에서도 그랬지만, 당시 주가 대비 2배이상 되는 값에 경영권을 넘긴 데 대해서도 말이 많았더랬죠. 누군가는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 지분 53.08%를 3100억원에 사는 건 싸다, 누군가는 주가 두 배는 비싸다고 했습니다. 지났으니 얘기지만, 당시 홍 전 회장은 한앤코측이 제시한 3100억원이라는 가격에 매우 흡족해하며 계약을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랬던 홍 전 회장이 변심해서 "김앤장에 속았다"며 계약파기 소송을 맡아줄 로펌을 찾아다녔고, 김앤장은 억울해했습니다. 홍 전 회장이 두 손 들고 반기며 지분을 넘겨 이대로 잘 마무리되나 싶었던 한앤코도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됐죠.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한앤코는 주로 대기업들 대상으로 딜을 해왔기 때문에 늘상 그랬듯 이번 남양유업 인수 계약서에도 계약파기에 관한 조항을 넣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계약이 잘 마무리될 것으로 믿었다는 얘기죠.
뒤통수를 친 건 홍 전 회장. 그런데 주가가 인수 당시 수준으로 우상향한 점 때문에 홍 전 회장도 "싸게 사서 억울하다"는 입장을 지인들에게 밝혔다고 합니다. "두 달 뒤 주가가 2배로 오를 줄 미처 모르고 싸게 계약서를 작성해 억울하다"는 홍 전 회장, 매각 자문시 가격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고 오히려 홍 전 회장으로부터 빨리 계약을 서둘러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김앤장에 속았다"는 말을 듣게 된 김앤장, 좋은 값에 회사를 사줘서 고마워하는 홍 전 회장을 굳게 믿고 계약을 진행 중이던 한앤코. 이 셋 중 과연 누가 제일 억울한 걸까요? 그리고 홍 전 회장이 소송 전문 로펌인 엘케이비를 변호인으로 선임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 김앤장(한앤코의 매수 자문사)과의 강제 주식매매계약(SPA) 이행에 관한 소송전 둘째, 한앤코와 가격 재협상을 통한 계약 이행 셋째, 계약 파기 및 제3자와의 재계약 추진 정도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네요. 현재 김앤장은 최악의 경우 소송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고, 한앤코는 어떻게든 계약 이행을 위해 물 밑에서 홍 전 회장과 협상을 추진 중이라고 하니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과연 이 딜의 끝에선 누구의 억울함이 제일 부각될지도 궁금해집니다.
2. 삼성 뗀 르노자동차
삼성그룹이 26년 만에 완성차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는 것도 중요한 뉴스였습니다. 삼성카드가 보유 중이 르노삼성자동차의 지분 19.9%를 모두 매각키로 한 겁니다. 이 뉴스를 단독 보도한 차준호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완성차에서 손을 떼기 위해 삼성증권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사모펀드(PEF), 재무적투자자(FI) 등에 투자설명서(티저레터)를 배포했다고 합니다.
사실 엄청난 경쟁시장인 자동차 업계에서 유독 삼성은 두각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반도체, 휴대폰, 가전 등 성공한 분야도 많지만 어찌 보면 자동차는 삼성그룹의 '아픈 손가락'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실제로 르노삼성은 변변찮은 실적을 보였고 지난해엔 796억원의 적자를 내기도 했죠. 이렇다할 신차도 없고 마케팅 비용, 원가 상승 등으로 추가 자금도 많이 필요한 상황에서 굳이 이 사업을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 SM3를 몰았던 제 경험을 비춰보자면, 자동차 정비소에서 "SM은 부품도 무겁고 성능도 그닥 뛰어나진 않다"고 했던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그리고 과연 삼성 이름을 완전히 떼버린 르노자동차는 앞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시장에서 잊혀지는 건지도 사뭇 궁금해집니다.
3. 두산그룹의 넥스트 스텝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법인인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가 완전히 두산인프라코어 품에 안기게 됐습니다. 재무적투자자(FI)들이 보유 중인 DICC 지분 20%를 두산인프라코어가 3050억원에 인수키로 한 겁니다. 김채연 기자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두산그룹의 재무구조 재편 차원이자 FI들과의 긴 소송전을 끝낸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두산그룹이 그동안 네오플럭스, 두산솔루스, 두산인프라코어 등의 분할 매각을 추진하면서 몸집을 줄여왔던 걸 감안할 때, 이번 DICC 인수를 계기로 기업 구조조정을 끝내고 '넥스트 스텝'을 밟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모든 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측면에서 보자면 두산그룹이 두산퓨얼셀, 두산밥캣 등을 통해 친환경에너지 등 신사업을 앞으로 어떤 그림으로 펼쳐보일지도 주목할 대목인 것 같습니다.
4. '유느님'의 안테나 행이 설명되는 순간
카카오엔터가 엔터테인먼트 회사 안테나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는 소식도 재미난 뉴스였습니다. 지난 5월 지분 약 19%를 인수한 지 석 달 만에 전체 지분을 사들였다는 게 눈길을 끌었죠. 무엇보다 안테나는 가수 겸 작곡가 유희열 대표와 방송인 유재석의 만남으로 최근 더 주목받고 있었습니다. '유느님'으로 불리는 유재석의 안테나 행은 가수 위주의 소속사에 들어갔다는 측면에서도 화제였지만, 대형 기획사들을 다 제치고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와 계약했다는 점에서도 궁금증을 자아냈죠. 그리고 그 이면에는 카카오엔터의 투자가 있었다는 게 이번 딜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광범위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카카오엔터가 방송인 유재석, 유희열과 안테나 소속 가수들을 앞세워 어떤 콘텐츠를 선보일지도 주목됩니다. 카카오엔터는 카카오TV라는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안테나, 스타쉽엔터 등 엔터테인먼트 회사까지 품에 안았기 때문에 다양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 가능하죠.
무엇보다 이번 딜 과정에서 카카오엔터측이 유재석에 스톡옵션 지급을 제의했지만 "회사와 지분 관계로 얽히는 것은 싫다"고 유느님이 완곡히 거절했다는 차준호 기자의 기사도 흥미로웠습니다.
5. 진흙탕 싸움 된 WCP CB 인수전
"산업은행이랑 진짜 소송까지 하겠다는 건가?" 라는 게 인수합병(M&A)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 전문업체 WCP의 CB 매각을 놓고 벌어진 KDB산업은행과 이베스트-BEV신기술조합(이베스트조합) 간의 공방 얘기입니다. 분명 팩트는 하나일진대, 이렇듯 양측 의견이 다르고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각자 할 말이 많은 상황이라면 소송은 불가피하다는 게 취재 결과 느낀 점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베스트조합의 행보를 놓고 "배짱이 두둑한 건지 그만큼 계약서 조항이 유리하다고 보는 건지 궁금하다"는 의견이 많은 상황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은이 주도하는 딜이 많고 도움도 많이 받아야 할 M&A업계에서 산은을 대상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CB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질 않나, 산은의 대응에 대해 한 줄 한 줄 격한 반응을 보이질 않나,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과격한 행보를 걷고 있습니다. 한 취재원의 제보에 따르면, 이베스트조합이 "소송까지 가도 유리하다고 볼 만한 계약서로 확신한다"고 하네요.
반면 산은은 이베스트조합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녹음한 녹취록부터 이메일이 오간 기록 등 모든 데이터를 축적하며 이미 소송전에 대비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 자세한 내용은 '점입가경'이라고 제목을 단 제 기사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제가 이번 취재로 확실하게 느낀 건 첫째, 돈의 세계는 치사(?)하고도 냉정하다 둘째, 미래 딜은 모르겠고(그건 그때 문제ㅋ) 지금 당장의 딜이 가장 중요하다 셋째, 우기면 장땡(?)처럼 보일 순 있다(팩트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는 겁니다. 공문을 보낸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다고 하질 않나, 공문을 보낸 날짜까지 대면서 꼬치꼬치 캐묻자 그제서야 "메일이 오긴 왔는데 내용이 두루뭉술해서 해석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하질 않나.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그 정도로 WCP가 '핫'한 건지, 그렇다면 내년에 WCP가 기업공개(IPO)를 할 때 저도 공모주에 청약해야 하는 건지(ㅋㅋㅋ),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암튼 이 진흙탕 싸움이 금방 끝날 것 같진 않으니 계속 소식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딜 리뷰 때까진 '소송'보다는 '성공적 매각' 같은 단어가 더 많이 뉴스에 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