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오른쪽)와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가 지난 6월 17일 경남 창원의 한 음식점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대화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이재명 경기지사(오른쪽)와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가 지난 6월 17일 경남 창원의 한 음식점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대화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6월 경기 이천 쿠팡물류센터에서의 대형 화재 당시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와 ‘먹방’(먹는 모습을 담는 방송) 유튜브를 찍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구조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의 실종으로 국민들이 안타까워하는 순간에 경기도 책임자인 이 지사는 먹방을 통한 홍보에 치중하고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황씨의 경기관광공사 사장 후보직 자진 사퇴로 ‘황교익 사태’에서 벗어나는 듯했던 이 지사가 다시 ‘황교익 늪’에 빠져든 모양새다.

물류센터 화재 당일 먹방 찍어

20일 경기도에 따르면 이 지사는 지난 6월 16~17일 경남 창원을 방문해 김경수 당시 경남지사와 상생협약을 체결하는 등 일정을 소화했다. 그런데 17일 오후부터 저녁 시간까지 창원 마산합포구 일대 음식점에서 황씨와 떡볶이를 먹는 등 먹방 유튜브를 촬영한 사실이 지역 언론의 보도로 뒤늦게 알려졌다. 이날 촬영한 영상은 황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황교익TV’를 통해 7월 11일 공개됐다.

6월 17일은 이천에 있는 쿠팡물류센터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날이었다. 17일 새벽부터 사흘간 계속된 불로 수천억원 규모 재산 피해가 났고 불을 끄던 소방관이 순직하는 등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경기도는 “이 지사가 화재 발생으로 남은 방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복귀했다”고 해명했다. 경기도가 공개한 시간대별 조치사항에 따르면 이 지사가 이천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18일 오전 1시32분으로 화재 발생 약 20시간 만이었다.

이 지사는 “화재 당시 창원에 가 있긴 했지만 실시간으로 다 보고받고 그에 맞게 지휘도 했다”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그는 “우리 국민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가 빠지고 있는 구조 현장에 왜 가지 않느냐를 문제삼지 않았다”며 “지휘를 했느냐 안 했느냐, 알고 있었느냐 보고를 받았느냐를 문제삼았다”고도 했다.

이어 “국민 생명과 안전을 갖고 정치적 희생물로 삼거나 공방의 대상으로 만들어 현장에서 애쓰는 사람이 자괴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컵라면 먹다 잘린 서남수와 비교”

국민의힘은 이 지사의 처신에 비난을 쏟아내며 총공세에 나섰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SNS에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현장에서 컵라면을 먹는 사진과 이 지사가 황교익TV에 출연한 장면을 함께 올렸다. 그러면서 “왼쪽(서남수)은 사고 현장에서 웅크리고 라면 먹다 잘리신 분, 오른쪽(이재명)은 천리 밖에서 먹방 찍으며 대선 홍보한 뒤 사고를 정쟁에 이용하지 말라는 분”이라고 일갈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이 지사가 도민에 대한 책임을 운운하는 것이 매우 가증스럽다”며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해당 사태에 대해 진솔한 사과를 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시는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의 실종에 온 국민이 가슴을 졸이고 걱정하던 시점”이라며 “그런 큰 화재가 났으면 도지사는 즉시 업무에 복귀하고 현장을 살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낙연 캠프의 배재정 대변인은 “사실이라면 경기도 재난재해 총책임자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무책임하고 무모한 행보”라고 언급했다.

‘지사 리스크’ 커지나

이날 오전 황씨는 SNS에 “더 이상 경기관광공사 직원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썼다. 황씨가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자 이재명 캠프에선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안도감을 드러냈다. 캠프 총괄특보단장을 맡고 있는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어제 자진 사퇴를 요구한 저의 진정성을 황씨가 이해해준 것”이라며 “마음고생했을 황 선배를 모시고 강원도 골짜기에 다녀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지사도 “황씨는 국민의힘 소속 서병수 전 부산시장도 인정하는 음식문화 전문가로 많은 업무 성과를 냈다”며 “명백한 전문성을 부인당하고, 친일파로 공격당하며, 친분에 의한 ‘내정’으로 매도당한 황 선생님의 억울한 심정을 이해한다”고 위로했다.

자진 사퇴로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던 ‘황교익 사태’가 이 지사의 화재 대응 논란으로 다시 번지자 이재명 캠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캠프 내에서는 “일련의 논란은 결국 이 지사가 지사직을 유지하는 데 따른 리스크가 현실화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황씨가 이낙연의 정치생명을 끊어놓으려다 뜻을 못 이루니, 이재명의 정치생명을 끊어놓는 쪽으로 노선을 바꾼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