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세계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한 주요 전략으로 인수합병(M&A)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텔이 대형 M&A에 성공하면 세계 반도체산업의 지형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겔싱어는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반도체산업에서 (M&A 등) 통합이 이뤄질 것”이라며 “이런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며 인텔이 통합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 "될 때까지 M&A"…반도체 패권 직진
인텔은 지난 3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 진출 계획을 담은 ‘종합반도체기업(IDM) 2.0’ 전략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미 애리조나주와 뉴멕시코주에 공장을 새로 짓고 있고 오리건주에선 증설을 했다. 하지만 지난 2분기 매출 기준으로 삼성전자에 세계 1위 자리를 빼앗기는 등 고전하고 있다. 인텔이 ‘퀀텀 점프(비약적 성장)’에 성공하려면 M&A가 필수라는 판단을 이번에 분명히 했다는 평가다.

최근 인텔이 세계 파운드리 4위인 글로벌파운드리 인수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세계의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성사되면 인텔이 단숨에 파운드리 시장 강자로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겔싱어는 인수설과 관련해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면서도 “인텔은 적극적인 인수자”라며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글로벌파운드리가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IPO)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인텔의 인수 시도가 무산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겔싱어는 M&A에 집중하는 이유로 세계 반도체산업의 변화를 꼽았다. 반도체산업이 자본·기술집약적 특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대형사들의 시장 과점이 필연적이라는 의미다. 그는 최첨단 반도체 칩 제조공장 건설에 100억달러 이상이 드는 등 제조 비용이 급증한 현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겔싱어는 “10~15년 전만 해도 최첨단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선도기업이 10여 곳 있었지만 이제는 세 곳으로 줄었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 그리고 인텔을 뜻한다. 그는 전 직장인 소프트웨어 개발사 VM웨어, EMC 등에서 약 100건의 인수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겔싱어는 지난 2월 인텔의 사령탑으로 취임한 뒤 6개월 동안 인텔의 영토 확장 야심을 공격적으로 드러내왔다. 3월에 IDM 2.0 전략을 공개했고 7월 기술 설명회에선 1.8㎚(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에서 2025년부터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선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 중 3㎚ 미만 공정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는 세계 최대 통신칩 설계 전문업체(팹리스)이자 대형 파운드리 고객사로 꼽히는 퀄컴을 거래처로 확보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인텔이 파운드리 경쟁력을 키울수록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TSMC 등에는 악재가 된다.

겔싱어는 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현상을 이용해 정치적인 행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아시아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설득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4월 화상회의에서 ‘반도체 자립’을 선언하자 지난달 바이든 행정부 관료들을 초청해 연회를 열며 로비를 벌였다. 또 4월에 티에리 브르통 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을 만나 EU 회원국 내에 공장을 건설할 의향을 내비쳤다. 그는 미국과 EU에 생산시설 건립의 대가로 보조금을 요구하고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